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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Jun 10. 2021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얼마 전 한 중국 기업의 KS 인증 심사 통역을 했다. 나름 해당 업계에서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굴지의 기업이었는데 국내에 판매하는 제품의 KS인증을 연장하기 위해 이틀간 진행한 정기 심사였다.


원래대로 라면 중국 본사에 직접 가서 공장 실사해야 하는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상으로 연결해서 진행하게 되었다. 의뢰를 받고 예상했던 대로 공장 실사를 화상으로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심사관들이 보고자 하는 부분을 바로바로 보여주기 어려웠다.


통역하던 날 점심


통역사로서 한 가지 다행이었다면 중국 본사 쪽에서 중국인 통역사를 섭외해 그쪽의 발화는 그 통역사가, 한국 쪽 발화는 내가 통역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부담이 좀 덜 했다. 사실 통역사가 한 명 더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부담되는 일(날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 느낌?)이지만 이날만큼은 부담을 덜어주는 존재였다.


아무튼 어찌어찌 공장 심사가 끝나고 이제 내부 규정 문건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졌다. KS 표준의 내용이 해당 기업 내부 표준 규범 문건에 반영이 되어 있는지를 주로 살피는 과정이었다.


이번주의 감성소비;;;;

이때 한 심사관이 어떤 어떤 내용이 내부 규정에 있냐고 물었다. 그쪽 본사 관계자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 还没反映到内部规范。(아직 내부 규정에 반영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쪽 통역사가 이를 통역하기를, “반영 못 하고 있습니다”라고 통역한 것.


듣자마자 뜨악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 심사관이 “반영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반영하지 않겠다는?”이라고 물었다. 본사 직원이 한 말을 같이 들은 나는 그런 뜻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한국어 통역만 들으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물론 인증 심사다 보니 심사관도 조금 더 집요하게 물은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얼른 설명을 하고 본사 쪽에도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아직’ 반영하지 못했다는 뜻이죠? 곧 반영할 거란 뜻이죠?”


그러자 본사 쪽 통역사가 그 말을 하려 했다고 서둘러 답했다. 그 순간 당황한 통역사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아직’이라는 부사 하나 넣지 않았을 뿐인데, 시제가 조금 틀렸을 뿐인데도 이런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지난주의 먹부림

내 실수는 아니었지만 그 통역사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 남 일 같지 않았다. 나라고 이런 실수 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공기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없어선 안 될 역할을 해야 하는 통역사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때, 당황스럽고 아찔하지만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여느 상황에서 보다 통역사의 입에서 나갈 때 더 큰 의미 차이가 느껴진다는 걸 이날 느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발화자의 발화 그대로, 의도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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