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an 28. 2024

어쩌지, 오늘도 인생샷을 찍어버렸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올릴 만한’ 순간이 됐다

“이 언니 인스타그램 주소 뭐예요?”

“인스타 아이디 좀 제발 알려주실 분.”

“제발 브이로그 시작해 주세요.”


춤을 잘 추는 학생의 영상에도, 일상 영어 표현을 가르쳐 주는 영상에도, 매체 인터뷰에서 우연히 찍힌 한 시민 인터뷰 영상에도 댓글 창에서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묻는 댓글이 보인다. 아이디를 용케 찾은 누군가가 댓글로 아이디를 달아두면, 연신 하트와 대댓글 ‘고맙습니다’가 이어지며 해당 계정으로 사람들이 유입된다.


타인의 일상과 불필요할 정도로 가깝게 연결돼 있다. 누가 누구와 어디서 멋진 저녁을 먹었는지, 축하할 일과 위로할 일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일거수일투족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아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도 안부를 물을 필요조차 없어졌다. 참, 네덜란드 다녀온 건 어땠어? 당신의 일상을 내가 관찰하고 있다는 그 당연한 전제는 어째서 지옥 같다고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잠시 쉽니다. 답이 늦어요. 인스타그램 프로필과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걸어둔 문구다. 무형의 세계에 접속해 있는 것이 오죽 당연하면, 그로부터 벗어나 있기 위해서는 호기로운 부재중 선언이 필요하다.


일상을 관찰하고 삶을 소비한다. 나의 순간으로 채워가기도 모자란 일상에서, 누군가를 팔로우할 때마다 한 사람의 슬라이스 된 인생이 내 앞에 대령 된다. 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는 듯이. 하늘 아래 같은 색상 없다며 끝없이 펼쳐진 옷과 화장품을 소비하고 또 소비하던 우리는 이제 타인의 삶을 소비하기에 이르렀다.


너무 일상이 되어버린 burst mode... 


인생의 모든 순간이 ‘올릴 만한’ 순간이 됐다. 서로가 서로를 가깝게 소비하는 사이, 우리는 저마다의 삶과 오히려 멀어졌다. 한참 몰두 중에 픽 꺼져 버려 갑작스레 마주한 텅 빈 검정색 화면처럼 삶은 공허하고 낯설어졌으며, 멋쩍은 마음에 괜히 스윽 쓸어 만지게 되는 밋밋하고 평평한 스마트폰 화면처럼 납작해졌다.


일상을 관찰하고 삶을 소비한다. 나의 순간으로 채워가기도 모자란 일상에서, 누군가를 팔로우할 때마다 한 사람의 슬라이스 된 인생이 내 앞에 대령 된다. 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는 듯이. 하늘 아래 같은 색상 없다며 끝없이 펼쳐진 옷과 화장품을 소비하고 또 소비하던 우리는 이제 타인의 삶을 소비하기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였을까. 영화관에서 보고 온 주인공의 삶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하며 영화 티켓을 사는 정도로 나의 소비가 그치지 않고, 퇴근한 옆자리 동료의 저녁 메뉴와 초등학교 이후 본 적 없는 동창생의 아기 사진을 초 단위를 소비하게 되어버린 것은. 삶을 살아가며 존재하는 대신, 경탄의 대상으로 삼게 되어버린 것은. 그리고 나 자신마저 누군가에 소비될 존재로 내어주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무색무취의 가스 같다. 일상의 소소한 연결과 행복, 받아본 적 없는 스포트라이트… 그 모든 게 이 안에서라면 가능하다고 유혹하는 피드들이, 아니 무수히 많은 삶의 절단면이 내게 미치는 영향력이.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란 염료의 해, 육갑 그리고 스타벅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