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Feb 23. 2024

파운데이션을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주세요

화장품 용기 62% '재활용 어려움', 번거로움과 죄책감은 소비자의 몫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거 진짜 인생템입니다.”


그놈의 인생템은 어찌 된 게 사람 머릿수만큼이나 많다. 그러니 이쯤 되면 인생템이 아니라 그냥 템이다. 하지만 어떤 제품은 누군가의 인생템이라는 이유로 나의 마음과 지갑 그리고 내 화장대를 흔들었다.


소비는 쉬웠다. 돈만 내면 됐으니까. 그런데 그다음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전자레인지, 펜치, 망치. 

총천연색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물건들은 놀랍게도 화장품을 버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다. 섀도 가루를 구석구석을 긁어내기 위한 얇은 철사, 공중에 날리는 분진을 피하기 위한 K94 마스크, 손에 찔리지 않도록 유리를 감쌀 만한 두꺼운 종이도 빠뜨리면 섭하다. 모두 화장품 분리배출 대작전에 총출동되는 주인공이다.


“파운데이션을 전자레인지에 30초 돌려주세요. 그리고… 립스틱은 냉동실에 밤새 넣어두면! 준비 끝입니다.” 화장품 분리배출 크리에이터로 유튜브에서 활발히 활동했다면 손가락으로 전자레인지 ‘시작’ 버튼을 누르며 위와 같은 멘트들을 쏟아냈을 것이다.


광고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커버력’과 ‘밀착력’의 위력을 체감했던 순간은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두들기던 순간이 아닌, 빨간색 고무장갑 돌기에 낀 누런색 파운데이션 찌꺼기를 박박 벗겨낼 때였다. 용기 입구는 좁은데 병 안쪽은 넓어, 그 안을 구석구석 닦아내려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꺾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기름이 둥둥 뜬 노란 물을 부어냈다. 개수대는 금방 엉망이 됐다.


‘재활용 어려움’. 이 놀랍도록 당당한 안내 문구는 화장품 용기의 62%에 해당하는 제품에 쓰여 있다.


뜻을 해석해 보면 말 그대로 정말 재활용이 어려우니 ‘가능한’ 분리할 수 있는 건 소비자가 알아서 분리해 보고, 안 되는 건 일반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리라는 뜻쯤 된다. 재활용품을 제대로 분리배출하지 않으면 과태료까지 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화장품 쓰레기를 처리하는 번거로움도, 그를 처리하지 못해 종량제 봉투에 버릴 때 떠맡는 죄책감도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457조 원에 달한다. 10대를 중심으로 전 연령의 화장품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어, 앞으로 매해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장품 소비 행렬은 종량제 봉투를 거쳐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향했다. 소각됐다면 유독 물질이 되어 공기 중을 떠돌았을 것이고, 매립됐다면 수백 년 동안 분해되지 않아 아직까지 지구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바다를 유영하던 어떤 해양동물의 목숨을 앗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때 누군가의 피부에 어여쁘게 발려 ‘생기’와 ‘활력’을 더 해주었던 바로 그 화장품 말이다.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