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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n 14. 2024

살림지옥 해방일지

살림지옥 해방일지 - 이나가키 에미코

                                   

제목은 중요하다. 표지도 중요하다. 책을 선택할때 제목과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니, 그 책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다면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부분이랄까.

'살림지옥 해방일지'

제목이 참 그럴듯하다. 하지만 260페이지의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생각했다. 제목이 다했네.     


나는 사실 살림지옥이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못된다. 오늘 닦지 않은 곳은 내일 닦으면 되고, 오늘 안닦인 때는 다음에 닦으면 되지, 라는 맘으로 살림에 임한다. 집안을 말끔하게 치우고, 쓸고 닦는 것을 기쁨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그건 주부라서, 여자라서 당연한 일이 아니고 취향의 문제이며, 능력의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는 도통 남에게 일을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일을 다 엄마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가사도우미를 쓰지 못했고, 파는 음식을 식탁에 올리지 못했다. 그래도 일손이 부족하면 언니에게 종종 일을 맡겼다. 언니는 제사때면 음식 만드는 일을 도왔고, 손님이 오시면 과일이며 커피를 내어갔다. 그리곤 왜 나에게만 시키느냐고 툴툴거렸다. 

“쟤는 사고를 치니까 일을 시킬 수가 없어. 안시키는게 아니라 못시키는 거야.” 

그때마다 엄마는 언니에게 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손끝이 야무진 언니를 믿었던 거였다.     


집안일은 시킬수가 없어 못시키는 수준이었던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지금의 남편을 데리고 와서 인사시키고, 양가집은 상견례를 했다. 상견례를 하고 집에 돌아온 아빠의 첫마디는 엄마를 향했다.

“쟤, 이제 밥하는거 가르쳐라.”

하지만 살림이라면 재주도, 배울 의지도 없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결혼을 했다. 마침 친정가까이 살게 되었으므로 이제 반찬이며 국을 매일 퍼다 날랐다. 신경쓰여서 챙겨주고, 못한다고 걱정되어 싸주고. 살림에 관한 한 나는 그렇게 결혼을 해서도 부모님의 애물단지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이런 불량 주부여도 주부는 맞는지, 책 제목에 이끌렸다. 그 발랄한 느낌이 좋기도 했고, 다 믿지 않으면서도 혹시나 엄청난 요령이 들어있을지도 몰라, 하는 맘이었다. 나같은 맘인 사람이 많았는지 도서관에서 내 차례가 오기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했다.

기대와 달리 막상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독신의 오십대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은퇴를 하게 된다. 고급맨션에서 소비를 즐거움으로 알고 살아온 그녀는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오래된 원룸으로 이사하며 '버리고 비우기'를 실천한다. 선택할수 있어서 선택한 길은 아니지만, 처한 현실에 맞게 적응 하다보니 결국 그것이 삶의 가치가 된, 그런 이야기.     


책속에서도 썼지만 많은 부분은 그녀가 독신이기에 가능했을 일들이었다. 대부분을 버리고, 간단하고 심플한 삶을 사는 그녀. 그녀가 버린 건 물건 뿐 아니라 생활습관, 식습관등도 모두 해당이 된다.

나 역시 버리기라면 어디가서 빠지지는 않는데, 살고있는 이 집을 원룸으로 바꾼다면 얼마나 더 버려야할까 잠시 생각했다. 고개를 젓다가, 지금처럼 세 식구가 아니라 나 혼자라면 딱히 못할 것도 없지 않나 싶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두분이 살던 집을 정리하며 대부분의 물건들은 다 버려졌다. 나는 짐작할수 없어도 두분께는 소중했을 추억이 담긴 많은 물건들.

엄마가 장만하고 그리도 뿌듯해하던 옥돌이 모자이크된 장롱과 문갑셋트. 돌 모자이크덕에 어찌나 무겁던지 이사할때마다 애물단지였지만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돌아가시기 얼마전 허리를 다친 엄마께 언니와 내가 사드린 돌침대. 뜨끈하게 불을 올리고 누우니 너무 좋다던 그 침대를 엄마는 오래쓰지 못했다. 먼저 떠난 아들의 책상만큼은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아빠는 그것을 안방에 두고 매일 거기 앉아 혈압을 쟀다.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쓰레기가 되거나, 먼 나라에 가져다 판다는 중고물품 업자의 차에 실려갔다. 누군가의 추억이 그렇게 떠나는 것을 보는 것은 ‘슬펐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두분이 돌아가신 이후, 가뜩이나 쓰지않는 물건이라면 잘 버리는 나는, 몇 달동안 내 집에서도 계속 뭔가를 버리고 정리했다. 버리고 버려도 자꾸 버릴 것은 나왔다. 우리가 살면서 ‘이것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살림지옥 해방일지’의 저자는 세탁기도, 전기밥솥도 쓰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해보니 할만했고, 적응하니 그것이 오히려 단순하고 좋아졌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는 아직 그 말에 다 동의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있으면 편해’라거나, ‘있으니 일이 줄었다’라고 말하는 많은 물건들이 정말 편하기만 하고, 일은 줄어든 것이 맞을까. 자신있게 대답하기는 쉽지않다.


책을 덮고 나선 집안을 돌아봤다. 쓸것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아니었다. 더 정리하고, 더 버릴 수 있는 것들이 여전히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아깝다’라는 마음과, 그 마음을 무시하고 실행에 옮기는 ‘용기’사이에서 갈등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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