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선 Mar 02. 2021

남자 마케터가 바라본 남자 화장품

구분과 규정의 미덕? 비주류를 죽이는 세상

본의 아니게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다. 남자가 적은 뷰티 업계에 몸을 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를 찾아보기 힘든 마케터로 살아가고 있다. 뷰티 업계 남자 마케터는 정말 드물다. 일례로 우리 팀은 14명이 4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남자는 나 혼자다. 다른 빅 브랜드 마케팅 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클럽하우스app 에서 남자 뷰티 시장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나도 무슨 얘기를 하나 들어보려고 입장했다가 어느 정도 듣고 껐다. 절망적이었다. 발언자의 대부분은 여자 마케터들이었다. 그 와중에 남자 발언자도 가끔 있었는데, 나로서는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해도 여자 마케터들은 듣고 싶은 대로 들었다. 남자가 본인은 그렇다고 하는데, 그들은 아니라고 한다. 조금 과장을 섞어서 쉽게 말하면, "남자들도 깔끔한 디자인의 심플한 용기를 좋아해요. 저도 그렇고요."라고 말하면 "아니야, 너는 투박한 디자인의 남성성이 깃든 화장품을 좋아해. 아마 게임에서 광고한다면 더 좋아할걸? 깔끔한 여자 화장품 같은 용기를 쓰면 주변 친구들이 너가 게인줄 알걸?" 이라는 식이다.


마케팅의 기본은 세그먼테이션과 타게팅이다. 고객을 쪼개고 쪼갠 뒤, 그 고객들이 원하는 정확한 무언가를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 부모의 년 소득 합이 8천만 원 이상인 가정의 대학생 자녀, 그중에서도 인 서울 대학교를 다니고, 과외 하나쯤은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는 여자 고객의 특성을 분석해서 그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광고도 그들이 주로 보는 인플루언서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그먼테이션은 언제나 일반화가 필요하다. 평균이 필요한 것이다. 그 모수가 아주 많은 그룹은 평균에서 벗어나는 유별난 고객의 비율이 낮다. 그래서 그럴 땐 시간과 노력을 적게 투입하면서도 위험 요소를 줄이는 유효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그룹은 조금은 곤란해진다. 그것이 남자 화장품 시장이다. 평균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세그먼테이션과 타게팅은 효율적인 마케팅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간혹 어떤 마케터들(위의 클럽하우스app에서 본 예시처럼)은 거꾸로 생각을 한다. 자신이 만든 세그먼테이션에 고객을 끼워 넣게 된다. "너는 남자 고객이니까 이래야 해."라고 말이다. 누가 그럴 것 같냐고? 대부분의 마케터는 그런다. 안 그러면 내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신규 남성 화장품 브랜드들은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이다. "나는 이런 이런 남자 화장품을 만들 거야.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 모여라." 분명 이전 글들에서도 말했듯이, 기업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방법이다. 이유는 쓰는 비용에 비해서 들어오는 돈이 별로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이들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소수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빈익빈 부익부처럼 점점 소외되기 쉽다.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이 곧 배척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의 여성이 그렇고, 비건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은 그들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올바른 사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당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감성보다는 이성이 필요한 기획팀으로 올 수 없어." 당신이 그러지 않다고 말해도 "아니, 넌 여자니까 그럴 거야."라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사실 가정이 필요가 없다. 당장 우리나라 기업의 기획팀을 보면 90% 이상이 남자일 것이다. 여자가 중요한 뷰티 업계의 최고 대기업 중에 하나인 우리 회사만 해도 전!원! 남자다. 그곳에 아무리 팀 업무에 최적화 된 여자가 가서 일한다고 해도, 버티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발령 내달라고 하고 다시 나간다. 그게 회사에 이익이 되는 일일까?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왜 남자 화장품 소비자가 적을까? 남자 소비자는 올리브영을 제외하면 왜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지 못할까? 심지어 요즘은 올리브영에도 들어가기 힘들어할까? 왜 나한테 말 거는 점원을 무서워할까? 답은 쉽다. 그곳에서는 내가 소수이고, 비주류이고, 그래서 내가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주류의 소비자를 규정하지 않고 이해하고 보듬어가며 주류로 이끌어내려는 새로운 방법들을 고민하는 것이 용기를 사각형 만들지, 검은색으로 만들지 고민하는 것보다 100배 1,000배 귀하고 값지다고 생각한다.


남자 화장품 소비자를 예로 들었지만, 비건 지향의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비주류의 삶을 요즘 더 뼈져리게 느낀다. 남성 화장품, 비건 화장품을 넘어서 모든 분야의 비주류를 주류 마음대로 나누고 규정하고 그들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본다.


P.S 스킨케어 제품 연구원 출신인 나로서는 화장품을 선물할 때 가장 당황스러운 질문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이거 남자가 써도 되는 거야?" 마치 여자 속옷과 남자 속옷이 다른 것처럼 화장품도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답 : 화장품에는 남자/여자 구분이 없다.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남성용 화장품은 여자 마케터가 생각하는 남자가 좋아할 것 같은 화장품을 실물로 구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각형 검은색 용기에 에탄올이 많이 들어가서 시원한 올인원 화장품. 그들이 생각하는 남자는 사각형을 좋아하고, 검은색을 좋아하며 화장품 바르는 것을 매우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뷰티에서 비건 마케팅에 관한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