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읽고
일(노동)의 가치가 바닥을 넘어 나락으로 떨어져, 비효율적인 돈벌이 수단 정도 취급받는 시대.
읽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면서, 읽기에 불편한 책이면서, 누군가에게 권유할 수는 없는 책이다. 저자의 이야기 중 편집증 수준인 업무 완벽주의에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갈고닦는 수련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크게 공감했다.
일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은 단순 업무 역량만은 아니다. 참을성도 늘어나고, 타협이라는 것을 하게 되며, 때로는 치기 어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성찰하기도 한다. 일은 인간적 성숙도 함께 불러오는 것 같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성숙한 사람이나, 새로운 일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의 공통점은 결국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일과 취미의 경계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취미는 즐거워도 되고, 일하는 것은 즐거우면 안 되는 것일까? 모임에 나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가끔 '일'이라고 답한다. 그럼 누군가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워커홀릭으로 보고, 혹은 노예근성에 찌든 불쌍한 노동자로 본다. 물론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고, 대부분 전자에 가깝게 생각한다고 나는 느낀다.
나는 내가 꽤 많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본업인 '광고를 기획하는 일, 설거지나 요리 같은 집안일, 주말마다 주말농장 가서 농사일도 했고, 모임에서 총무를 맡는 일, 집에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오크통 사서 술 만드는 일에,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 쓰는 일'까지 하고 있다.
이런 나의 '일'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다시 말한다.
"취미가 엄청 많으시네요! 일이 취미가 아니신데요?"
나는 일(노동)의 가치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가 일에 대한 정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무슨 말을 할 때 이런 식으로 일이라는 단어를 이렇게도 썼었다. '뭔 일을 또 벌렸어', '새로운 일하나 해볼까 생각 중이야'이 때는 일이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할 때 썼는데, 요즘은 '돈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의 것 해주는 거'라는 맥락으로 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회사에 있을 때, 친구가 "뭐 하냐?"라고 물어보면 시큰둥하고, 시니컬하게 "일하지 뭐~"라고 말하는.. 그런?)
내가 주말농장 가서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씨 뿌리고, 물 주고, 잡초 뽑고, 수확하고. 그런데 '나 취미로 주말 농장해'와 '나 요즘 주말에 농사일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신기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청개구리 같이 주말농장하는 걸 농사일한다고 하고, 취미는 일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주말농장해본 사람, 브런치 주간 연재 해본 사람, 술을 담가 본사람은 안다. 회사일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귀찮은 일 투성이라는 것, 게다가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칼을 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다 순간의 성취감에 한다. 근데.. 회사 일이라고 뭐가 다른가? 다른 것은 나의 태도와 시각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위에 말한 취미 같은 일들보다 나는 지금 내가 월급 받으며 하고 있는 광고일이 훨씬 재미있다. 하루하루 새롭고 일주일의 이틀 이상은 내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안고 출근한다.
얼마 전 만난 첫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형이 했던 말이다.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나 광고일 좋아하나 봐” 너무 공감되었다. 그렇게 지긋지긋해했던 광고일이 막상 본업이 아니게 되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되면.. 또다시 깊게 사랑하고 싶어 지더라.
가끔 생각해 보면, 취미라는 단어는 정말 좋은 도피처다. 쿨 해 보여서 그런가. 아님 말고 가 깔려 있어서 그런가? 취미에 진심이라고 하면 멋져 보이고, 일에 진심이라고 하면 바보 같아 보여서일까? 물론 나도 가끔은 취미라는 단어 뒤에 숨기도 하는 것 같지만..
가끔은 말하고 싶을 때 해도 좋지 않을까?
난 지금 내 일에 진심이라고.
이걸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고.
26p: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일'을 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일하는 의미와 그 목적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90p: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파랑새를 쫓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환상을 좇기보다는 눈앞에 놓인 일부터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훨씬 중요하다.
169p: 현재 자신이 지닌 능력만을 기준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하지 마라.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몇 년 전에는 '정말로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며 의구심을 품었던 바로 그 일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그 일을 척척해내고 있지 않은가?
228p: 완벽주의는 '더 좋은 것'이 아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자세다.
추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새로운 일을 마주했을 때 설렘보다 한숨이 앞서는 사람. 진심/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쿨하지 못하고, 약간 부끄럽다고 생각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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