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매도 괜찮아"는 위로가 아니라 편견이다
위로 한 살 터울의 형제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남매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우리를 가족으로 알아보지 못할 만큼 외적으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나의 형제는 피부가 하얗고 호리호리한 마른 체형이다. 그에 비해 나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보통 체형이다. 이름도 성만 같을 뿐 돌림자는 사용하지 않았다. 특이한 성도 아니다. 가장 흔한 김이박은 아니지만 인구 많은 성씨 순위 10위 안에도 드는 '윤'씨다. 한 살 터울이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는 소속이 같은 공동체가 꽤 있었다. 학교, 학원, 교회 같은 것들. 그곳에서 우리가 남매라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 꽤나 있었고, 사실을 말하자 사람들은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닮지 않았다.
연년생 남매, 우리는 어릴 적에 외모에 대한 비교를 많이 당했다. 아마도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외적 모습이기 때문에 그랬겠지. 지금도 남아 있긴 하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아이의 앞에서 '너는 코가 납작해서 못생겼네', '뚱뚱해서 살 좀 빼야겠다'라며 대놓고 외모 평가를 하던 일들이 흔했다. 하얗고 마른 오빠와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여동생. 누가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 '오빠 음식 뺏어먹냐, 여자애가 왜 이렇게 까맣냐, 오빠는 하얀데 동생은..., 오빠는 말랐는데 동생이...' 이런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내 첫 기억이 시작된 5살 시절부터 저런 말들로 가득 차있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가끔 친척 어른들과 부모님의 대화에서 'H(오빠)는 아기일 때 하얗고 뽀송뽀송한 게 얼마나 예뻤니, 은이는 여자애가 까매서... 그래도 크면서 예뻐졌지만, H는 막 태어나서도 얼마나 예쁘던지.' 하던 말들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 사춘기에 들어서며 부쩍 외모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나는 새로 친구를 사귈 때마다 피부색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친구들과는 여름에 반팔을 입어 드러난 맨 팔의 피부를 서로 맞대어 직접적으로 피부색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괜찮아! 까만 것도 괜찮아. 매력 있잖아!" 어느 순간 이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내 피부색이 친구들에 비해 까맣다고 실망을 하거나 불만족스럽다는 표현을 했다면 저건 위로의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피부색에 대한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사실, '나는 너보다 피부색이 어둡다'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내가 다른 친구들에 비해 까무잡잡한 피부인 것은 사실이었고, 이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 까만 피부색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처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로 진실로 말하건대, 어떠한 불만도 없다. 그런데 친구들은 '까매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이 찝찝한 말을 이해하겠는가? 친구들의 머릿속에는 '까만 피부.= 안 예쁜 것, 안 좋은 것, 열등한 것'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내게 '괜찮아'라는 위로를 건넨 것이겠지.
몇 달 전, '솔로지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자 출연자가 여자 출연자의 하얀 피부에 대해 말한 것이 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는 뉴스를 읽었다. 피부색만 보고 어떠한 이미지,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한 발언이었다. 하얀 피부가 순수해 보인다면 검은 피부는?
차별과 편견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한 가지 특징이 우월하다면 그에 반대되는 특징은 열등하다는 것이 된다. 백인은 우월하고 흑인은 열등한가? 백인은 부자고 흑인은 거지인가? 전혀, 전혀, 전혀!
하얀 아들과 까만 딸. '너희는 서로 피부색이 바뀌어야 했다'라는 말도 들어보았다. 마치 우리가 서로 잘못된 피부색을 가진 것처럼. 아니, 그렇지 않다. 하얀 여자도 까만 여자도 하얀 남자도 까만 남자도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 모두는 틀리지 않았다. 잘못된 피부색은 없다. 편견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