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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May 20. 2023

멕시코 카리브 바다의 보석, 이슬라 무헤레스


세계적인 관광지, 칸쿤


멕시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행지 1순위를 꼽으라면 단연 칸쿤 (Cancun)이 아닐까 싶다. 칸쿤은 편안한 숙소뿐만 아니라 무한 식사까지 가능한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들이 있고, 에메랄드 빛을 띠는 카리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편안한 시설이 있어 국내에선 커플들이 많이 찾는 신혼 여행지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이는 칸쿤의 모습 (사진: @숲피)


칸쿤 지역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멕시코 정부의 특별 관광 정책 때문이었다. 원래 칸쿤엔 조그만 어촌 마을만 있었을 뿐 호화로운 관광지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미겔 데 마드리드 (Miguel de Madrid) 대통령이 유카탄 반도가 가진 잠재성을 알아보며 1970년대부터 칸쿤 주변 지역 개발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칸쿤엔 공항, 도로, 호텔, 음식점들이 생겨났고, 이후에도 꾸준히 투자가 이뤄져 지금의 관광 명소로써의 모습이 갖춰졌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칸쿤은 일 년 내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제공항협회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칸쿤 국제공항 이용객이 약 2천5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중남미 대륙 전체로 봤을 때 상파울루, 멕시코시티, 보고타에 이은 4번째 순위이며 부에노스아이레스나 산티아고 같은 대도시 보다 높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큼 칸쿤의 분위기는 항상 북적북적하다. 특히 리조트와 클럽들이 몰려있는 호텔존이나 다운타운엔 신나는 음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슬라 무헤레스 섬


이슬라 무헤레스 선착장 (사진: @숲피)


칸쿤에서 1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2015년 마법의 마을로 선정된 이슬라 무헤레스 (Isla Mujeres) 섬이 있다. 섬에 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호텔 존에서 가까운 푸에르토 후아레즈 항구에서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울트라마르 (Ultramar) 페리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이슬라 무헤레스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물론 칸쿤에서 가까운 만큼 이슬라 무헤레스에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만으로 북적한 칸쿤에서 단절된 느낌을 받게 된다.  


이슬라 무헤레스의 해변 (사진: @숲피)


페리에서 내리면 정박해 있는 요트들 너머 해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야자수가 펼쳐진 길을 조금 걷다 보면 해변이 나오는데, 센트랄 해변 (Playa Central)이라 불리는 이곳의 바다색은 옅은 하늘빛을 띠고 있어 한눈에 봐도 깊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또 파도가 세지 않아 잔잔한 바다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이다.


식당과 호텔로 가득찬 센트로 (사진: @숲피)


해변 반대편으로 가면 섬의 중심인 다운타운이 나온다. 이슬라 무헤레스가 조그만 마을인 만큼, 아무리 시내 건물들이라 해도 층수가 낮고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다운타운 지역은 낮과 밤의 분위기가 또 다르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과 높은 온도 때문인지 조금 느긋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밤이 되면 좀 더 선선해지면서 더욱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길가 모퉁이에는 야시장이 펼쳐지는데 이곳에서 타코나 마르케시타 같은 멕시코 길거리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섬 주변 해양 생물과 고래 상어


사람들이 이슬라 무헤레스 섬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꼽힐만한 해변, 그리고 그곳에 사는 해양 생물들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섬에는 앞서 말한 센트랄 해변 말고도 노르테 해변 (Playa Norte)이 하나 더 있다. 하얀색의 고운 모래로 펼쳐진 이 해변은 멕시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데, 멍하니 앉아 햇살과 구름의 밀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바다색을 보는 재미가 있다.


해질녘의 바닷가 (사진: @숲피)


이슬라 무헤레스 섬 주변에는 산호초, 바다거북, 가오리를 비롯해 각종 열대어가 산다. 잔잔하고 맑은 카리브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싶다면 멕시코에선 이슬라 무헤레스가 최고의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슬라 무헤레스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고래 상어다. 고래 상어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5월부터 9월까지로, 이때 관광객들은 고래 상어 근처에서 함께 수영을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고래 상어들이 이슬라 무헤레스 섬과 칸쿤 바닷가를 콕 집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우선 고래 상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섬 주변의 생태계가 고래상어에게 풍부한 먹이원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래상어들은 플랑크톤과 작은 물고기 등의 생물과 같이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 이동하는데, 섬 주변 해류가 플랑크톤이 사는데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해 고래상어를 끌어들인다고 한다. 또 고래상어는 외부 열원을 이용해 체온을 조절하는 동물이어서 섬 주변의 따뜻한 열대 해수를 에너지를 절약하기에 적절한 장소로 여긴다. 현재 고래상어의 행동이나 습성은 인간에 의해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섬 주변의 편안한 환경들은 암컷 고래상어가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섬


멕시코 카리브 바다에는 이슬라 무헤레스 말고도 코수멜 (Cozumel), 홀박스 (Holbox), 콘토이 (Contoy) 같은 아름다운 섬들이 있다. 이 섬들 모두 잔잔한 카리브 바다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하지만 그중 이슬라스 무헤레스가 마법의 마을로 선정된 건 이곳만의 흥미로운 역사와 관련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슬라 무헤레스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오기 훨씬 전부터로, 섬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마야인들이었다.


깊이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바다 (사진: @숲피)


마야인들은 기원전 2천여 년부터 멕시코 남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지역에서 거주하며 그들의 문명을 꽃피웠다. 이들은 지리상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이슬라 무헤레스 섬을 굉장히 성스러운 곳으로 여겼는데, 전설에 따르면 마야인들은 자신들이 믿던 여신 익스첼 (Ixchel)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류를 낳은 곳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참고로 마야 문명엔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 틀랄록, 잇삼나, 엑추아, 쿠쿨칸 등이 대표적인 신들이다. 수 십 명의 신들 중 마야 사람들은 이슬라 무헤레스 섬을 ‘익스첼의 섬’으로 지명한 것인데, 그 이유는 섬이 가진 자연경관과 익스첼 신이 가진 의미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푼타 수르 풍경 (사진: @숲피)


마야인들에게 익스첼은 달의 신이었으며 동시에 풍요로움과 치유의 여신이기도 했다. 여기서 제일 주목을 끄는 건 풍요로움으로 익스첼 신은 인간과 자연의 삶을 탄생시키고 창조하는 신이었다. 섬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아름답고 고요한 환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야 사람들은 아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마야 사람들은 자연의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는 익스첼 신을 떠올렸을 것이고, 그 섬의 기운을 익스첼의 존재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으로 여겼을 것이다.


마야 사람들에 의해 ‘성스러운 장소’가 된 이슬라 무헤레스 섬에선 이후 익스첼 신을 위한 다양한 종교적 의식이 행해졌다. 또 익스첼이 치유의 여신이었던 만큼 마야 사람들 사이에서 섬은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장소로도 알려졌다. 현재 섬에는 익스첼의 이름을 가진 호텔, 여행사, 숙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남쪽 끝에 있는 푼타 수르에는 거대한 익스첼 동상이 있다. 섬의 역사가 익스첼과 연관이 많았던 만큼 이에 대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슬라 무헤레스 (여인의 섬)이 된 이유


당시 마야 사람들은 섬을 이슬라 무헤레스와 칸쿤 지역을 에캅 (Ekab)이라 불렀다. 에캅은 마야어로 검은색 땅, 혹은 검은색 바위를 가리키는데, 곳곳에 큰 바위가 있는 섬의 지형적 특성을 묘사해 붙인 이름이었다. 이슬라 무헤레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건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에 도착했던 때로,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가 근처를 항해하던 중 섬을 발견해 그곳을 이슬라 무헤레스라 부르기 시작했다.


익스첼 동상 (사진: @숲피)


참고로 스페인어인 이슬라 무헤레스를 번역하면 ‘여인들의 섬’ (Isla=섬, Mujeres=여인들)이다. 코르도바와 그의 선원들이 함대를 끌고 섬에 도착했을 당시 마야 사람들은 익스첼을 기리기 위한 제단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상을 섬에 세워놓은 상태였다. 이제 막 신대륙에 도착해 마야의 문화를 알지 못했던 코르도바는 당연히 여성의 모습이 익스첼을 의미하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단순히 여성의 동상들을 보고 직관적으로 이슬라 무헤레스란 이름을 붙였고, 그렇게 생긴 이름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과거 신을 위한 의식이 행해진 섬의 기능은 식민지 시대를 맞이하며 조금씩 변질됐다. 특히 유카탄 반도 해변가에 스페인 당국의 영향력이 도달하지 못하며 섬은 주인을 잃고 해적들의 쉼터로 전락했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다양한 국적 출신의 해적들은 섬에 머물며 보물을 가득 실은 스페인 함선을 약탈했다. 또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카리브 바다에서 흔했던 노예무역이 오갔던 것으로도 추측되고 있다. 풍요와 치유를 바라던 섬이 약탈과 착취를 위한 섬이 된 것이었다.


작지만 깊이 있는 섬


이슬라 무헤레스 섬은 남북 길이가 약 7킬로미터로 상당히 조그마한 섬이다. 넓이 또한 아무리 넓어도 2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 워낙 가늘고 조그마한 섬이기 때문에 골프카로 하루 만에 섬 한 바퀴를 자세히 둘러볼 수 있다.


해질녘의 해변 (사진: @숲피)


겉으론 워낙 조그만 섬이지만 이곳이 주는 즐거움의 깊이는 남다르다. 예를 들어 같은 해변일지라 하더라도 매일 바뀌는 날씨, 그곳에 같이 머무는 사람들의 분위기에 따라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섬이 주는 여유는 그런 세세한 차이들을 느긋하게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이슬라 무헤레스 섬엔 앞서 설명한 것들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섬 남쪽엔 무사 (MUSA)라 불리는 해상 박물관이 있으며, 다이빙을 해 바닷속에 묻힌 수 백여 개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또 바다거북들을 만날 수 있는 보호소가 있고, 바다 해안을 따라 개성 있는 식당과 카페가 늘어져있다. 작은 섬이지만 자세히 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볼거리가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이슬라 무헤레스 섬이 '작지만 깊이 있는 섬'이라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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