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칼라르는 벨리즈와 국경 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조그만 호수 마을이다. 예능 프로그램 <서진이네>가 방영되면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진 이곳은 평화로운 호수 풍경 때문에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길이만 총 42km에 달하는 길쭉한 모양의 이 호수는 넓은 카리브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곳이다.
바칼라르가 마법의 마을로 지정된 건 2006년이다. 이는 킨타나루 주의 다른 마법의 마을인 이슬라 무헤레스나 툴룸보다 비교적 먼저 마법의 마을로 선정된 것으로, 일찍이 멕시코 정부로부터 매력을 인정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외곽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마을 중심에 들어서면 넓은 광장이 먼저 눈에 띄며, 주변으로 타코, 부리토, 햄버거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맛집과 카페를 볼 수 있다. 호수 주변에는 캠핑장이나 숙소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각각 호수로 통하는 조그마한 부두가 있다. 만약 숙소가 호숫가 앞에 있다면 여유롭게 카약을 타거나 조용히 앉아 물멍을 때릴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보통 호수 색하면 조금은 짙은 남색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바칼라르 호수는 옥색에 가까우며, 물이 조금 더 얕은 곳은 거의 라임 색이나 다름없다.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더 좋은 날엔 빛이 반사되는데 야자수와 어우러져 이곳이 호수인지 열대 바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색이 워낙 푸르고 투명하기 때문에 과거 마야 사람들은 이곳을 “하늘이 탄생한 곳”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바칼라르 호수는 총 일곱 가지 색을 띠어 무지개 호수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호숫물 색이 다양한 이유는 물의 깊이 때문이다. 얕은 곳은 수심이 1m도 채 되지 않는데, 물이 가장 깊은 곳은 무려 90m에 달할 정도다. 이렇게 물의 깊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햇빛에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물 색도 다르다. 다만 호수 모든 곳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며, 에스메랄다 세노테와 새의 섬이 있는 곳이 특히 색의 구분이 명확한 지역이다.
바칼라르 호수는 면적이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곳으로 느낄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제각각이다. 먼저 센트로 쪽에는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태공원 (Ecoparque Bacalar)이 있고 호수를 다니는 요트와 배들도 많이 정박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반대로 호수 가장 끝자락에는 슐하 (Xul-ha)라 불리는 또 다른 마을이 있는데, 마야어로 슐하는 물이 끝나는 장소라 한다. 슐하는 아직까지 개발이 덜 이뤄진 조그만 마을로 바칼라르 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로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칼라르 호수의 독특한 생태계를 설명해 줄 키워드는 '세노테'와 '스트로마톨라이트' (Estromatolitos)가 아닐까 싶다. 우선 유카탄 반도에만 만 개가 넘게 있다는 세노테는 바칼라르 호수 근처에도 볼 수 있다. 바칼라르 호수 주변에는 세노테 아술, 네그로, 에스메랄다, 코칼리토 총 4개의 세노테가 있다. 코칼리토를 제외하면 모두 색을 뜻하는 단어 (아술=파랑, 네그로=검은, 에스메랄다=에메랄드)인데, 이는 세노테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물 색에서 이름을 딴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바칼라르의 세노테의 가장 큰 특징은 호수 가장자리 부분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세노테는 정글 한가운데 동그랗게 있는 연못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바칼라르 세노테는 명확한 구분이 없어 호수의 한 부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호수 바로 옆에 위치한 세노테는 수심이 깊어 색으로 구분하는데, 배를 타고 네그로 세노테 경계선에 가면 물 색이 갑자기 짙게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코칼리토 세노테는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불리는 특별한 퇴적암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수억 년부터 존재해 온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는 박테리아 일종인 남세균이 만들어낸 것으로, 오랜 시간 끈끈한 점막을 가진 남세균 위에 조그만 모래와 진흙이 쌓이면서 생겨났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스트로마톨라이트 모양에는 원뿔, 돔 같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바칼라르의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생김새나 모양이 마치 엄청 큰 표고버섯 윗부분을 보는 것 같다. 살아있는 생물로 간주되는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산소를 방출하며 이는 호수의 수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칼라르는 과거 마야인들이 처음 정착해 마을로 발전시킨 곳이었다. 이곳에 처음 정착한 건 훗날 치첸잇자 도시를 건설한 잇자 (Itza)족으로, 이들이 바칼라르에 정착한 이유는 바다보다 식수를 얻기 용이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415년경 잇자족은 호숫가 주변에 마을을 세웠고, 이곳에서 여러 상품들을 거래하며 벨리즈와 온두라스 지역까지 서서히 세력을 확장시켰다.
16세기 초 식민지 시대에 들어서며 바칼라르는 스페인의 차지가 됐다. 값어치가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원했던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바칼라르 호수 근처에 있는 목재인 팔로 데 틴데 (Palo de Tinte)를 발견했고, 마야인들이 이를 이용해 옷의 다양한 색을 낸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후 바칼라르는 이 목재가 유럽으로 보내지는 시작점이 됐는데, 참고로 당시 유럽에선 워낙 염료가 귀했기에 목재 1kg의 가치가 금 1kg와 비슷할 정도였다고 한다.
스페인이 바칼라르에서 높은 경제적 수익을 올리자 바다의 무법자 해적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바칼라르 중심지에 있는 산 펠리페 요새 (Fuerte de San Felipe)는 당시 스페인의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로 영국, 프랑스 국적의 해적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점은 “왜 굳이 호수 앞에 이런 요새가 만들어졌을까?”인데, 보통 요새는 넓은 바다에 출몰하는 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지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호수 가장자리에 있는 조그만 '연결 통로'에서 찾을 수 있다. 바칼라르는 호수지만 '해적의 길' (Ruta de los Piratas)로 불리는 가느다란 물줄기가 강과 바다와 연결되는 지형을 갖고 있다. 과거 해적들은 이곳을 통해 호수까지 들어와 스페인의 교역을 방해한 것이었는데, 바칼라르만의 독특한 지형이 자연 생태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역사도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