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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Jun 25. 2023

'서진이네'도 다녀간 멕시코의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

킨타나루의 바칼라르에서

‘서진이네’도 다녀간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 바칼라르


멕시코의 남동쪽 벨리즈와의 국경 근처, 킨타나루 주에서 가장 큰 바칼라르 라군의 기슭에는 바칼라르라고 불리는 멕시코의 ‘마법의 마을’이 있다. 한국에는 최근 tvN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서진이네’ 덕분에 그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 꽤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멕시코를 여행하는 동안 ‘서진이네’의 다음 촬영지가 멕시코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보안상의 이유로 정확한 위치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빠와 나는 혹시 촬영지가 바칼라르가 아닐까 추측했더랬다. 왜냐하면,


첫째, 뜨겁고 정열적인 멕시코의 이미지를 담고 있을 것.
둘째, 이전 ‘윤식당’의 촬영지들을 돌이켜 봤을 때 여유로운 분위기가 낭낭한 휴양지일 것.
셋째, 칸쿤처럼 너무 관광지화되어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곳보다는 조금은 덜 알려진, 하지만 여행자들 사이에선 알음알음 알려진 매력적인 곳일 것.
넷째, 그래서 현지인의 일상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곳일 것.
다섯째, 볼거리도 많은 풍경이 아름다운 곳일 것.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이 바로 바칼라르였기 때문이다. 


바칼라르 호수의 풍경 @숲피


생각을 거듭할수록 바칼라르일 거란 확신이 섰다. 바칼라르로 한 번 떠나볼까 하는 충동적인 마음도 들었다. 한국에서 가기엔 멀지만, 우리는 지금 멕시코에 있잖은가. 내가 살면서 언제 박서준이 만들어 주고 최우식이 서빙해 주는 음식을 먹어보겠는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몇 달 치 계획해 둔 효율적인 동선이 있었고(우리가 있는 곳에서 바칼라르에 가기 위해서는 북에서 남을 가로지르는 대이동을 해야 했다), 미리 예약까지 해 둔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전부 취소하고 다시 짜려니 골이 아팠다) 이것은 기분 좋은 상상에 그쳐야만 했다.


코앞에서 연예인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들이 다녀간 장소들을 방문하는 재미도 은근 쏠쏠했다. 한창 프로그램이 방영중일 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진이네 식구들이 다녀간 타코집, 카페, 레스토랑 등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방송에서 얼핏 비쳐 눈에 익은 거리를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절로 신이 났다. 


바칼라르의 광장 @숲피


한 번은 방송에서 서진이네 식구들이 자주 들렀던 브런치 카페라고 소개된 곳을 찾아갔다. 카페 주인은 확실히 낯이 익었다. 괜히 알던 사람을 마주친 것처럼 들뜨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가볍게 스몰 토크를 하다가 넌지시 물어봤다.



“... 저기 혹시 너희 카페가 한국의 유명한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것 알고 있어? (과장 보태서) 너 한국에서 스타야!”



그러자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다.



“아, 너희도 한국에서 왔니? 안 그래도 그 뒤로 한국인들이 가게에 많이 왔었어!”



그는 우리가 먼저 알아봐 줘서 다소 신나 보였다. 그리고 아쉽게도 한국 프로그램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몰라 보지 못했지만, 그 뒤로 어쩐지 한국인들이 가게에 많이 왔었다고 덧붙였다. 그날 그 카페 주인의 신나고 상기된 그 기운이 우리에게까지 전염되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진이네의 흔적을 좇는 것은 바칼라르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소소한 놀이이자 재미가 되어 주었다. 


'오색찬란' 일곱 빛깔의 바칼라르 호수


바칼라르 라군은 이름 그대로 직역하면 일곱 빛깔 호수(Laguna de los Siete Colores)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수심에 따라 호수의 빛깔이 달라져 일곱 빛깔, 아니 그 이상의 빛깔로 반짝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바칼라르의 상징과도 같은 이 호수는 특히나 햇빛을 받으면 그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는데, 밝은 에메랄드 빛에서부터 검정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청록색까지 다양한 빛깔로 반짝인다. 


바칼라르 호숫가 @숲피


호수의 첫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존재하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색이었다. 영화 속에서 CG로 만들었대도 과하다고 생각할 만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호수였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푸른빛의 호수는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되어 물결쳤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새파란 호수 위에는 그와 대비되는 새하얀 요트가 오가고, 미니어처처럼 작은 사람들이 패들보드나 카약을 타고 잔잔한 호수에 파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호수는 하늘의 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커다랗고 투명한 거울이 되어 매 순간 산란하는 빛을 수십 가지의 색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자연의 색이란 말인가. 마치 또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현실 감각마저 잊게 하는 풍경이다.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법 같은 풍경이었다. 


마법의 마을, 바칼라르를 즐기는 N가지 방법


바칼라르 호수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요트를 대여해서 낭만 넘치는 항해를 하다가 원하는 곳에서 정박하고 호수에 뛰어들 수도 있고, 투어를 예약해 바칼라르 라군의 다양한 세노테들에 가볼 수도 있다. 카약, 패들보드, 제트스키 등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기거나 맑고 투명한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할 수도 있고, 호숫가 옆에 설치된 해먹이나 비치 체어에 누워 호수를 바라다보기만 해도 좋다. 또, 여행자들의 자전거 대열에 합류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달려도 좋다. 


바칼라르 호수를 향해 난 수풀길 @숲피


바칼라르는 그 명성에 걸맞게 마법 같은 곳이었다. 에메랄드 보석과도 같은 호수는 하루에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이른 아침 호수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뒤로한 채 카약을 타고 잔잔한 호수의 물결을 가르는 사람들의 검은 실루엣에는 낭만이, 햇볕이 따사로운 오후 젖은 옷에서는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맨발로 흙길을 걸어 다니는 여행자들의 모습에서는 젊음과 청춘이,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 호숫가에 앉아 책을 읽는 누군가의 뒷모습에는 넉넉한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바칼라르의 어느 오후 @숲피


이곳에 서두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느긋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그을린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있다. 바칼라르는 일상 속 고민과 가슴을 짓누르는 고민은 잠시 내려두게 만드나 보다. 사람들의 그늘 한 점 없는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으로 조금씩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일시적' 친구를 다시 만날 확률은?


캄페체 주를 여행할 당시에 그 지역의 '에즈나' 유적지로 가는 차량 안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게 된 한 노부부가 있다. 그들의 이름은 릭과 루이스로, 캐나다에서 온 백발의 노부부였다. 그 뒤로 캄페체의 거리에서도 몇 번이나 우연히 마주쳐서 여행지에서 으레 하는 가벼운 겉치레로 언젠가 또 보자며 인사를 나눴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그 일이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일어나게 되리란 것을.


막 숙소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계단 바로 앞 테이블에 낯익은 얼굴들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바칼라르에서의 일정이 겹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바칼라르에 있는 수백 개의 숙소 중 같은 숙소에서 같은 날 아는 얼굴을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수많은 확률을 뚫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리는 그 길로 바로 테이블에 합석해 릭이 따라 주는 와인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눴다. 그들은 그야말로 여행 광이었다. 캐나다에서 교직에 있다가 퇴직한 부부는 캐나다의 추위가 혹독한 겨울이면 따뜻한 나라로 추위를 피해 여행을 한다. 그들이 다녀온 곳은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나열해도 끝이 없었고, 앞으로 가보고 싶은 곳도 끝이 없었다. 그들은 일흔이 넘은 나이의 머리가 하얗게 센 백발노인이었지만, 누구보다 건강하고 빛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바칼라르의 일출 @숲피


그렇게 우리는 여행을 매개로 친구가 되었다. 몇십 년의 세월을 거스른 친구 말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한참 많은 어른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에 꽤 조심스러웠지만, 자신들을 스스로 ‘올드 맨’, ‘올드 레이디’라 칭하며 던지는 그들만의 유쾌한 유머 덕에 금세 편안해졌다. 우리는 전자기기를 다루는 것에 서툰 그들이 중요한 서류를 작성해 기한 내에 제출하는 것을 도와줬고, 그들은 시내를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카풀을 제공해 주었다.


릭과 루이스는 헤어지기 전 우리에게 작은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언제든 환영이니 캐나다에 오면 꼭 들르라며 자신들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꾹꾹 힘주어 눌러 적은 쪽지를 내밀었다. 그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를 풀고 세대를 건너, 국적을 건너 자연스레 친구가 되는 방법을 말이다. 그 뒤로 우리는 각자의 여정을 떠나야 했지만, 우리에겐 그들의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쪽지 한 장과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연필 두 자루가 남았다.


이른 새벽 카약을 타는 사람들 @숲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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