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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May 11. 2020

김혜진 [딸에 대하여]

한국소설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p.22


《딸에 대하여》를 읽겠다고 독서 목록에 올려 놓은 것이 오래 전인데 나는 이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내 기억 속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페미니즘에 관련한 책이라는 글을 봤다. 단순히 그 네글자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주춤거렸다. 그들은 내게 이해 해달라고 한적이 없는데 나는 도를 넘어선 생각을 하며 선을 긋고 있었던거지.

각설하고, 《딸에 대하여》는 전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페미니즘이라는 선을 긋고 프레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지는 책이었다. 화자가 아빠가 아닌 엄마면, 게이가 아닌 레즈비언이면 그게 페미니즘인가. <허삼관 매혈기>는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한 남자의,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그린 책이다. 하정우가 주인공 허삼관 역을 맡으면서 한번 더 재조명 된 적이 있다.

그러면 <82년생 김지영>은? '젠더 갈등 재점화'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나오고, 가족을 위해 선생직을 내려놓고 갖은 일을 하며 자식을 키우는 이야기를 다룬 《딸에 대하여》는 페미니즘의 한 책으로 밀려나고 만다. 페미니즘이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은 전혀 페미니즘 성향의 책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네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p.67


그녀는 그저 아주 평범ㅡ그 어려운 평범함을 안고ㅡ하게 살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그녀에게 닥쳐온 일들도 괜찮은 척, 무심한 척 한쪽의 모퉁이를 접어 놓고 돌아서는 일들을 반복했다. 그녀에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묻고싶어 질 때면 그저 입을 다물고 눈을 감는 편이 나았다. 어떤 형태로든 말을 시작하면 도저히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아 말 하지 않았다.

불합리한 일들을 보면 채널을 돌리는 것으로 넘겼고 때가 되면 모두 좋아질 것이라는 적절한 말을 얼버무리며 관계를 정리했다. 긴 세월을 참아내고 묻어두고 감추고 버리며 살아왔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의 딸을 키워 왔다. 그녀가 딸에게 쏟은 시간들을 알아 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엄마라는 그녀는 그렇게 딸을 돌봤다.

그녀를 이해해 달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엄마라는 그녀는 그렇게 딸을 돌봐 왔다.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p.91


책을 읽다 말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엄마의 정갈한 문장들 사이에서, 딸의 삶 속에서 어찌 할 바 모르고 두서없이 울고 말았다. 내 눈물에는 맥락이 없었다. 그저 살아가겠다고 그저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겠다는 그들을 자꾸 무언가가 흔들어 놓는 것 같아서

그것이 꼭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눈물을 훔쳤다. 인간은 대체 뭔데 자신들의 기준의 잣대를 들이 밀고 책임지지 못 할 말들을 내뱉고 행동하며 사는 것일까. 지독히도 지겨웠던 날, 그들의 삶을 읽어내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 읽고나면 알 수 있다. 조금씩 우리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딸에 대하여》을 덮으며 이 지겨운 삶을 감히, 믿고 싶어졌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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