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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May 14. 2020

뫼달 [나는 혼자 일하고 싶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과 회사를 떠나는 방법 ; 자기계발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대표를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자리. 내가 그만두면 언제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 할 수 있는 위치.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낭비하고 있는 일ㅡ사회나 환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ㅡ과 작업물들. 자본가의 5분과 나의 8시간을 비교하며 버는 월페이. 아침형 인간이든 저녁형 인간이든 고려하지 않은 일반화 된 업무 시간과 방식.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돈을 버니까’ 라는 말로 일축하며 나를 몰아세우는 날들. 타인의 가십을 떠드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회사 사람들과 입 맞추며 맞장구 쳐야하는 상황. 과장인가 부장인가 하는 사람은 회사 생활이 지겹다면서 10년을 유지하며 오늘도 의미없는 ㅡ누군가 집을 샀고 그 집이 2억이 올랐다는 맥빠지는 이야기ㅡ 재테크를 입에 올리고, 

나는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이 시간들이 지독히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체제에서 내가 설 곳은 마땅하지 않다. 그러니 버티는게 마땅하지. 알면서도, 다 이렇게 산다고 매일 같이 자위해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숨이 조여왔다. 회사에서는 몸에 받지 않는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며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기 바쁘고 퇴근 후에는 밥보다 술을 마시며 아무 생각없이 잠자는 일이 잦아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흐리멍텅한 눈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재편집에 가까운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언제까지 이런 삶을 유지 할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버려야만 하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 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들이 쏟아져왔다. 제로웨이스트를 꿈꾸면서 내가 하는 일이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자꾸 속이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이런 가치관을 쌓는 내가 불편해졌고 나를 비난하는 것이 가장 쉽게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방법이 되었다.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리 길을 찾아도 대안이 없었다. 뉴스를 보며 답답한 세상에 욕을 하고 싸움만 하는 국회의원에게 분노의 댓글을 달며 화풀이만 했다. 독일에서 태어났으면 같은 직장인이더라도 일이라도 적게 했을텐데. 이곳이 북유럽이었다면 은퇴해도 충분한 연금으로 노후 걱정은 안 했을 텐데…. 시대 탓, 나라 탓, 정부 탓, 남 탓. 참 쉬웠고 참 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 탓이 허무해졌다. 아무리 탓을 해도 바뀌는 건 없었고 난 여전히 하루를 근근히 버티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뫼달 자기계발서, 나는 혼자 일하고 싶다 , e-book 30p


벌써 여섯번째 일터다. 10년 가까이 조직 생활ㅡ출퇴근 프리랜서도 별반 다를게 없는ㅡ이란걸 해오면서 나를 내리 깔고 동굴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삶의 방식을 끊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업무상 일과 삶을 분리하기엔 노동시간을 비롯하여 출퇴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정확히 8시간만 일하는데도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여 11시간이 소비 된다. 


6시 10분에 정확히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7시 30분. 국하나 끓여서 밥먹으면 8시 40분. 보보 데리고 산책 나갔다 오면 10시. 샤워 후에 설거지와 내일 회사 갈 준비하면 11시. 그리고 누워서 조금 쉬다가 자면 6시 30분 기상. 나는 야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인데 야근이 있는 분들에게 회사 일과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용 카드나 대출은 달콤한 유혹이다. 당장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가고 싶었던 나라를 갈 수 있지만, 결국 빚은 늪을 만들어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는다. 
내가 직장 밖에서 희망을 찾은 것도 성향과 더불어 충족하고 싶은 욕구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원래 소심하고 걱정 많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대로 살다가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빤한 마당에 시간만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뫼달 자기계발서, 나는 혼자 일하고 싶다 , e-book 59p


이런 고민들을 H와 함께 나누다 추천 받아 읽게 된 책이 뫼달 작가의 《나는 혼자 일하고 싶다》 

어른들의 궤도에 떠밀리듯 살아 온, 그리고 살아야 하기 위해서 내성적인 그(뫼달)가 영업직 일을 하면서 견뎌야 했던 시간 그리고 자신과 조직생활이 잘 맞지 않다고 느끼면서 돌파구를 찾아 나선 글들은 자기계발서라기 보다는 성장소설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성공가가 적어놓은 글들보다 뫼달 작가가 느끼고 겪어가며 나아간 글들이 더 믿음직스럽고 위로가 됐다. 저마다 성격이 다르듯 살아가는 형태도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미쳤다고 들었던 일들이 내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불필요한 일들을 걷어내면 다른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 올 수도 있다고 믿는다.

취직이 안 돼도 불만, 취직이 돼도 불만. 귀감이 되어야 할 부모 세대는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말, 유난 떨지 말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어쩌면 지금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아온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노력과 결과가 별개인 시대, 아무도 정답을 확실하게 제시해주지 못하는 시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극도로 커진 시대, 한마디로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뫼달 자기계발서, 나는 혼자 일하고 싶다 , e-book 29p


누가 장롱을 인터넷으로 사냐고 소리치던 부장은 장롱 온라인 매출이 급등 했을 때 꼬리를 내렸고 어떻게 먹는걸로 돈을 버냐고 코웃음 치던 대표는 먹방으로 본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유튜브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태세를 바꿨다. 이제는 더 이상 기성세대도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생각한다. 


아직 백여일 남았지만 내 나이 서른 둘, 나도 더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한번 찾아 보려고 한다. 나도 혼자 일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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