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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oey J Aug 30. 2018

변화를 위한 대가, <팔과 다리의 가격>

 <팔과 다리의 가격>은 장강명 작가의 신간으로, 199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고난의 행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난의 행진’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경제가 급격히 나빠져, 국민의 체제 이탈을 막기 위해 내세운 구호다. 실제로 이 당시 몇십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장강명 작가는 이 시기를 ‘지성호’라는 한 소년의 눈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주인공인 소년은 유복하진 않지만 굶지는 않는, 평범한 가정의 장남이다. 할아버지가 노동당의 당원이었고, 친척들이 노동당의 당원, 군의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불우하진 않았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의 사망 후 북한의 경제 상황이 바뀌면서 ‘행복한’ 시절은 사라지게 된다. 배급이 간헐적으로 끊기고, 식량이 점점 부족해지고, 누군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다른 마을에서, 언젠가부턴 소년이 아는 사람이, 이웃이, 가족이 굶어 죽기 시작한다. 요즘처럼 통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년의 마을 사람들, 가족들은 고립된 채로 점차 죽어갔다. 소년과 아버지는 군 간부인 고모부와 고모를 찾아가 얼마간을 버틸 수 있는 식량을 얻지만 이 것은 임시방편이었다. 그리고 소년의 고모 부부는 교외의 이런 상황에 대한 소식에 단절되어있었다. 기약없는 배급의 중단과 굶주림 속에서 사람들은 도덕의 경계가 무너진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물건을 훔치고, 서로를 속인다. 소년의 가족은 막내 삼촌에게 속아 집안 살림들을 도둑맞기도 한다. 그 후 그의 가족은 탄광에서 석탄을 운송하는 기차를 털기 시작한다. 석탄을 훔쳐서 팔아 식료품을 구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선 3명이 함께 움직여야 했는데, 하루는 소년의 아버지가 못가게 되면서 소년이 가장 위험한 일을 맡아야했다. 하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훔친 석탄들을 달리는 기차 밖으로 던지고 소년도 뛰어내려야하지만 식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소년은 제때 뛰어내리지 못해 전봇대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거의 뜯기고 망가진채로 피흘리며 누워있던 소년은 움직일 수 없었고, 도움을 청하는 외침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굶주린 사람들은 소년을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의 피를 밟고, 그의 몸을 뛰어넘어 석탄을 훔치기 위해 운송기차가 서있는 역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소년은 결국 함께 나왔던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병원에서의 일도 험난하기만 했다.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병원은 꽉 차있었고, 툭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 소년을 수술해 살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소년의 어머니는 의사를 붙잡고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했고, 그 결과 소년은 수술을 받고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여전히 생사를 오가고 있었고, 재수술을 받아야했다. 마취 없이. 어떻게든 의식을 붙여놓고 살리려는 의료진과 고통으로 인해 죽여달라고 외치는 소년. 결국 소년은 가족을 위해 살겠다했고 현재까지 팔과 다리 없이 살아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장강명 작가가 기자 시절 만났던 탈북민 지성호 씨의 이야기이다. 처절한 북한의, 소년의 이야기는 덤덤하게 표현된다. 장강명 작가의 무덤덤한 문체는 소년의 인생을 더 드라마틱하게, 더 처절하게 다가오게 한다. 남조선을 구제하겠다는(?) 꿈도 있고, 희망도 있었던 소년은 희망이 사라지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소년 뿐만 아니라 가족들, 마을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웃에 대한 정? 이런 것은 배급이 끊긴 기간이 길어지면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누가 우리 식량을 가져가지 않을까를 걱정해야했다. 이런 사람들의 변화 모습이 변해가는 소년의 눈을 통해 덤덤하게 담기니 더 비극적이다. 본격적인 대기근이 시작되고 나서의 표현이 그 비극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기근 초기에는 마을에서 사람이 굶어 죽으면 탄광에서 관을 만들어 주었다. 탄광 안에 목공소가 있었고 거기서 규격에 맞게 관을 짰다. 그러면 유족들이 그 관을 받아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런 일도 중단됐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도저히 그 수만큼 관을 만들 수가 없었다. / 나중에는 유족들이 그냥 널빤지를 한 장 구해 그 위에 헝겊으로 대충 싼 시신을 올리고 미리 봐 놓은 곳으로 끌고 가 그대로 묻었다. 그걸 ‘직파’라고 불렀다. 원래는 옥수수를 심는데 쓰는 말이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문구다. 기근으로 인한 죽음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던 부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죽음이 더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게 된 것이다.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이 그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식량인 옥수수와 관련된 단어로 불린다니, 아이러니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계속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것이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안타까울만큼. 더이상 비극적일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소년은 오히려 희망, 살아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이 것이 ‘팔과 다리의 가격’이었을까. 소년이 어른이 되어 북한을 탈출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긴 하지만, 굶주림과 죽음이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소년이 살아가고, 탈출할 힘은 팔과 다리를 지불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다. 팔과 다리를 지불하고 나서야 소년은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변화에는 대가, 계기가 필요하다. 소년에게는 그 것이 팔과 다리였던 것이다. 장강명 작가의 <팔과 다리의 가격>, 변화와 희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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