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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Oct 31. 2021

아슬하게 경계에 서 있는 우리

따뜻하고 풍성한 관계를 꿈꾸며


한국에 다시 와서 눈에 크게 띈 것은 도로 위에 부쩍 많아진 외제차와 배달 오토바이었다. 그것만큼이나 도드라지는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주위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구조 속에서 적응 혹은 부적응의 경계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하다. 바쁘고 팍팍하다. 쓴소리, 고성, 거르지 않은 무례한 말들이 오간다. 때로는 무리를 짓고 나와 다른 부류를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감금한다. 때로는 방관자와 참여자 경계에 서 있기도 한다. 우리는 이토록 치열하게 살고 또 아파할까. 짧은 단상으로 사유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M 선배는 지금 은둔자다. 활발히 운영하던 SNS도, 톡도 멈췄다. 선배의 남동생을 통해 연락이 되는 정도다. 그는 세상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선배는 국회에서 유명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다른 의원실 보좌관이었던 친구 J가 말하길 보좌관을 하면서 다른 동료들로부터 심한 따돌림과 배신을 당했다고 한다.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곳은 약육강식의  치열함이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다. 몇 달 전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의 캠프에 보좌관으로 다시 일하게 된 친구 J가 M 선배에게 같이 일해보자고 권했지만 돌아온 답은 '아니'였다. 그리고 최근에 남편이 M 선배에게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공석 자리를 추천했다. 그는 역시 관심이 없었다. 


한 때 직장 동료였던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읽긴 읽는데 답이 없다. 걱정이 돼서 직장에 전화를 했다. 휴직 중이라고 했다. 마음이 아파서라고 한다. 그녀는 남편의 유책사유로 이혼을 고민하다 결국 같이 사는 것을 택했다. 집에서 대화가 없는 엄마 아빠를 보고 자라는 아이를 걱정하던 그녀. 그녀가 많은 것을 감내하고 선택한 것이었기에 응원했고 잘 지내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다시 별일 없었다는 듯 나타나 주면 좋겠다.


오래전 교회 주일학교 선생으로 활동할 때 같이 했던 P선생님을 근 8년 만에 만났다. 우리가 함께 아는 한 선생님플리 증후군이었단다. 당시 문예창작과를 다니며 수상도 휩쓴다고 했었고 늘 당차고 밝고 똑똑한 20대 문인이었다.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모든 것이 거짓말임이 밝혀졌단다. 그 후 거의 1년간 거리를 방황했다고 한다. P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움을 주어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결혼도 해서 잘 산다고 했다. 그나마 풀렸다.


남편의 입사 동기가 오랫동안 병가를 썼다고 한다. 공황 장애 때문이란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텃세를 부리고 업무 공유를 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힘들었다고. 다시 복귀했는데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다.


그저께 업무상 만난 한 사람과 통화를 하며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있었다. 내가 한 질문에 대해 마음이 아픈 사람처럼 아무 말이나 공격적으로 하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났다. 그렇다고 아닌 것에 아무 지적 없이 넘어갈 수도 없었다. 뒤돌아보니 시작은 정당하게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유치한 말꼬리를 싸움이 되고 말았다. 




왜 우리 사회에서 관계가 혹은 개인이 눈에 띄게 병들어가는 걸까. 예전에도 있었던 문제인데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하기에는 요즘 마음이 아픈 이들이 많다. 개인주의도 한몫한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상대를 짓밟는다. 그러다 내상을 심하게 입은 사람들은 칼날을 세우고 처절하게 상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자세가 당연한 시대 풍조가 되었고 나만 잘 살면 돼, 나만 무사하면 된다는 의식이 귀를 닫고 벽을 만들어 소통할 기회는 박탈한 채 외딴섬에 스스로 갇힌다.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은 그 안에 속해있는 구성원들도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매뉴얼만 있으면 제대로 대응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그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람이 생길수록 우리는 병든다.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무에는 소홀한 채 자기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구성원과 조직을 아프게 한다. 매뉴얼을 사용하는 사람이 편법을 쓰면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유기적인 사회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나에게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손해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내가 상처 받았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무례하게 폭력적이게 굴게 되는 순간,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그 찰나의 순간. 그때 우리 인간 된 도리와 상식을 떠올려본다면 어떨까.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양식은 마음에서 나온다. 모두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려 하기 전, 내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보면 어떨까. 나부터, 작은 스텝부터, 바로 오늘부터.



*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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