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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케이 Feb 28. 2019

그녀는 아기와 함께 있었다

<미씽 : 사라진 여자> 리뷰


모성은 본능일까? 

일반적으로 부성과는 다르게 모성은 본능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죠. 결혼 후 출산을 고민하던 시기를 되돌아보면, 아이가 태어나면 저도 저절로 좋은 엄마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첫 아이의 수태기간 동안 아이가 뱃속에 있는지를 잊을 정도로 직장업무에 매달렸었고 정신없이 흘러간 열 달 후… 뭐랄까, 사랑이라고 말하기 힘든 묘한 감정과 함께 아기는 드디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생떼를 쓰며 우는 아기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마냥 창 밖만 바라봤습니다. 도저히 내 아이라 여겨지지 않았어요. 왜 울까?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지?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만 싶었습니다. 그 당시의 저를 생각하면 모성애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어요. 

하지만 아이가 내 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엄마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가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모성’은 본능이라기 보다, ‘학습’이고 ‘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성 학습과 성장의 기반에는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죠. 캥거루처럼 품에 안겨 살을 맞대고, 심장소리를 공유하고, 부대껴 잠이 들고, 밥을 먹이고 똥을 치우고 몸을 씻기는 모든 시간들이 제 안에 엄마됨을 성장시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저의 경험을 떨어놓는 이유는 ‘미씽 : 사라진 여자’를 감상하며 하나의 명제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함께 하기에 엄마일 수 있다’


제가 경험한 모성은 함께 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초유가 나올 때까지 젖을 빨리고, 잠을 자는 시간 이외에는 항상 품고 있어야 하는 영아기를 거쳤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며 엄마는 마음 속에 아기를 더 크게 품고, 더 깊게 담는 것입니다. 


영화는 아기와 함께 하기 위한 두 가지 모정을 담고 있습니다. 납치 피의자와 피해자로 양 극단에 서 있지만, 실상 두 엄마의 마음은 딱 하나입니다.


 “아기와 함께 있고 싶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지선(엄지원)은 이혼 후 양육권을 갖기 위해 소송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을 해야 했지만, 그 일은 지선에게 엄마의 시간은 허락하지 않았죠. 그래서 입주도우미를 찾다가 한매(공효진)을 만나게 됩니다. 


추격스릴러라는 장르는 범인인 한매를 악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지선의 딸(다은)을 유괴한 한매는 도대체 왜, 사라진 걸까? 이 영화를 이끄는 중심질문은 한매에게 불리하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전될수록, 한매의 사연을 알게 될수록 한매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한매도 지선과 마찬가지로 딸(재인)과 함께 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병에 걸린 아기의 치료조차 거부하던 시어머니와 남편을 뒤로하고 도망쳐온 날, 아마 한매는 다짐했겠죠. 무슨 일이 있어도 딸 곁에 있을 것이라고. 만 명중 한 명 걸린다는 희귀병도 이기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의 힘겨운 생활도 이겨내고, 꼭 딸과 함께 살고야 말겠다고. 


출처 : 네이버 영화



배 난간 위에 나란히 선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같은 엄마’였습니다. 아기와 같이 살고 싶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은 아기와 많은 시간을 있을 수 없었던 지선과 낯선 곳, 매정한 사람들 속을 병든 아기만 안고 뛰쳐나왔지만 결국 아기를 떠나보내야 했던 한매는 같은 모성을 가진 엄마였던 것입니다. 관객은 나쁜 범인 찾으려다가 공감요정이 되고 말지요. 

               

출처 : 네이버 영화


하지만 그보다, <미씽: 사라진 여자>의 영화적 재미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 ‘모성은 같다’라는 결론이 너무도 안전한 스토리이기 때문에 추격스릴러라는 장르적 요소에 변주를 줘가며 신경을 많이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 전체적으로 한매가 아기를 데리고 사라진 이유를 추적하는 데, 하나의 흐름으로 길게 끌고 가지 않고 전반부와 후반부로 이야기를 끊어갑니다. 

전반부는 지선 중심의 이야기죠. 지선이 아기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한매를 추적하는 과정입니다. 관객들은 지선에게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후반부에 가서는 한매 중심이 됩니다. 물론 한매가 화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주변사람들의 증언이지만, 관객들은 지선에게서 눈을 거두고 한매에게 .이입이 되는 것입니다. 뻔한 주제이지만, 뻔하지 않은 스토리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장르적 변주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영화적 재미는 결론에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기억하시죠? 저는 공효진이 ‘재인’ 글씨가 새겨진 자수보를 품에 안고 물 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에서 죽는다는 슬픔보다 ‘결국 같이 하는구나’라는 안도를 느꼈습니다. 한매는 아기를 품에 안듯 자수보를 양팔로 꼬옥 품어주고 바다의 품에 함께 포옥 안겼습니다. 고통보다는 안도로 읽히는 명품배우 공효진의 표정은 저에게 이런 생각을 안겼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래도 꿈을 이뤘구나, 좋은 곳에서 언제까지나 함께 하길 바란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도 기억나시나요? 햇살이 부서지는 공원에서 지선은 다은을 부릅니다. ‘다은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아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해 팔 벌린 이를 향해 걸어갑니다. 전에는 오지 않던 그 아이가 엄마에게도 다가갑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포옥 하고 안깁니다. 마치 한매가 자수보에 새겨진 재인이를 양팔로 품은 듯이. 그 장면에서 저는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그래, 드디어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곁에 있어주는 진짜 엄마.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늘도 저는 두 아이의 가운데서 잠이 듭니다. 지금은 물론 영화평을 쓰기 위해 잠시 깨어있지만, 잠시 후 돌아갑니다. 두 아이의 살을 맞대고, 걷어찬 이불을 턱밑까지 덮어주며 오늘 밤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엄마니까 함께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함께 하기에 엄마일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되새기게 해준 영화 <미씽 : 사라진 여자>


엄마의 마음으로 쓴 감상평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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