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 작업 일기
현시대의 대다수 작곡가는 컴퓨터로 음악 작업을 한다. 일명 ‘시퀀싱’, ‘미디’라 불리는 것들을 통해서. 덕분에 콩나물 대가리를 볼 일은 거의 없다. 녹음이나 공연이 잡혀 합주할 일이 생겨야만 연주자를 위해 부랴부랴 악보를 만드는데, 그마저도 코드와 송폼만 적혀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에도 난 곡 작업을 하면서 악보를 꼭 그린다. 악보는 제3자의 눈으로 음악을 판단하게 해주는 시각적 매체이자, 혼란할 때 방향을 정해주는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을 반복해 듣다 보면,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이유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악보를 그려보면 뚜렷하게 음악의 형태가 보인다. A파트와 B파트의 멜로디가 어떻게 다른지, 곡이 어떤 화성의 흐름으로 전개되는지, 전체적인 구조는 어떤지…
오늘도 편곡을 하던 중 방향성이 잘 안 잡혀서 악보를 그렸더니 문제점이 보였다. A파트는 멜로디 리듬도 잘게 쪼개진 데다 선율도 풍부한 반면, B파트는 리듬도 선율도 너무 간단했다. 마치 메인디쉬가 나오고 에피타이저가 나오는 격이니 아쉽게 들릴만 했다.
'그렇다면 이 밋밋함을 어떻게 해결해볼까... 음, 우선 A파트는 멜로디가 대두되니 편곡을 최소화하고 B파트는 멜로디가 단조로우니 편곡을 화려하게 해보자. 화려한 편곡이라... 악기 선율을 멜로디에 맞췄다가 어긋나게 했다가 하다보면 입체적으로 들릴 것 같고... 또 서서히 화성을 다채롭게 쌓아가면 수평적인 멜로디의 단조로움이 화려한 수직적 화성에 상쇄되면서 재밌게 들리겠어.'
이처럼 악보는 세부적인 방향성을 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길잡이다. 음악은 모든 파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통일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야 하면서도, 각 파트별로도 충분한 매력이 있어야 지루해지지 않는데, 늘 그걸 도와주는 건 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