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 작업 일기
사람마다 타고난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꼼꼼함이 요구되는 일이 그렇다.
어릴 적부터 세세하게 연도를 외워야 하는 역사 과목은 일찍이 포기했고, 십자수나 다꾸 같은 뽀짝한 취미는 거들떠도 안 봤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도 내 글씨를 잘못 보느라 답만 틀린 적도 셀 수 없이 많고, 양쪽 무릎은 늘 퍼랬다.
아직도 무언갈 꼼꼼하게 챙기는 일이 어렵다. 재작년엔 공연을 위해 장비를 한가득 챙겨야 했는데,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두 번씩 확인해도 꼭 뭐 하나를 빠뜨리고 오는 거다. 나중엔 결국 작업실을 통째로 옮겨가듯 보이는 걸 전부 집어갔는데, 진지하게 현장에 나서는 일을 포기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음악 작업을 할 때만큼은 과하게 꼼꼼해졌는데, 기질 검사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타고나길 커다란 숲을 보시는 성향이세요. 꼼꼼하게 나무 하나하나는 못 보시지만 대략적으로 크게 크게 잘 보세요. 그런데 중요하다 생각하는 일일수록 나무 잎사귀만 보려고 하시네요. 본래 숲을 보는 눈으로 사셔야 좋아요.
일에선 실수를 하면 안 되는데 나 스스로 꼼꼼하지 못한 걸 잘 아니까, 꼼꼼하게 들여다보다가 지나치게 사소한 것까지 살피게 되는 거였다. 그 아무리 아름다운 인상주의 그림조차도 아주 가까이서 보면 물감 덩어리로 보이는데, 덩어리를 못 미더워하고.
음악은 결국 흐름인데. 내가 느끼고 싶은 흐름의 선을 그려가면 될 뿐인데, 매 찰나의 점마다 멈춰서 결점이 없는지 뚫어져라 살피느라 정작 큰 흐름을 못 그리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무엇보다 전체를 관망하려 한다. 점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선으로서 바라본다. 디테일 감옥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