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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원 Apr 11. 2021

<주락이월드3편 -기네스>

주락이월드3편 기네스 영상에서 못 다 한 이야기

* 안녕하세요? 14f <주락이월드> 코너를 만들고 있는 조승원 기자입니다. 본업은 25년 차 사회 분야 전문 기자이지만, 개인적으로 20년 넘게 술의 세계를 탐험해 왔습니다. 그 결과물로 '뮤지션들이 사랑한 술'을 다룬 에세이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 예술가의 술 사용법(2017)>,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술을 분석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2018)>, 켄터키 버번위스키 증류소를 탐방하고 쓴 <버번위스키의 모든 것> 등 주류 서적 3권을 출간했고, 이에 앞서서는 mbc 창사 50주년 다큐멘터리 <술에 대하여>를 공동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작년까지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진행을 맡고 있어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올해 초 mbc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14f>로 옮겨서 <주락이월드 - 술이 있어 즐거운 세상>를 기획했습니다. 영상을 만들다 보니, 영상 시간 제약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드리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생겨서, 이렇게 별도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영상 본편에서 다루지 못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이 공간에서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기네스 스타우티 - 출처:기네스 코리아- 

1. 흑맥주는 맥덕들이 싫어하는 단어? 


맥주 덕후들은 '흑맥주'라는 단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색깔이 진한 맥주는 너무나 다양한데, 이걸 죄다 흑맥주라고만 퉁쳐서 부르면, 그 맥주가 가진 특성을 제대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흑맥주'라고 부르지 말고, 흑맥주도 스타일별로 나눠서 정확히 얘기하자, 이런 주장이 많습니다. 실제로 세상 흑맥주는 정말 다양합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포터/스타우트 계열만 해도, 기네스 같은 드라이 스타우트 말고도, 요즘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활발하게 만들고 있는 밀크 스타우트나 오트밀 스타우트도 있고요. 맥덕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올드 라스푸틴 같은 임페리얼 스타우트까지 종류가 무척 다양합니다. 물론 각각의 풍미도 다르고요. 또 독일에서 발전한 슈바르츠 비어(schwarz = 검다)나 둔켈(dunkel =어둡다)은 에일이 아닌 라거 스타일이라 기네스 같은 스타우트/포터와는 풍미가 완전히 다른데도 색이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내에선 그냥 '흑맥주'로 비슷한 취급을 받기도 하고요.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코젤 다크나 하이네켄 다크 역시 '다크 라거'라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흑맥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맥주 좀 아는 분들은 '흑맥주'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데요. 그래도 이번 <주락이월드> 영상에서는 흑맥주라는 표현을 몇 차례 써야 했습니다. <기네스=흑맥주, 흑맥주 =기네스>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상황에서, 이만큼 소비자들한테 잘 알려진 단어도 없고, 흑맥주 스타일을 죄다 정리해서 설명하려면 영상을 1시간 정도는 찍어야 할 거 같아서였습니다. 아무튼 세상에는 기네스 말고도 엄청나게 다양한 풍미의 흑맥주가 많다는 사실 알아두셨으면 하고요. 기네스는 정확히 말하면 흑맥주가 아니라 '드라이 스타우트 계열의 흑맥주'라고 기억해두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더블린 기네스 양조장 - 현지 촬영 사진- 

2. 기네스는 영국식 포터에서 나왔다 


기네스 맥주 스타일을 스타우트, 그중에서도 '드라이 스타우트'라고 하는데요. 이 스타우트 맥주는 원래 영국식 흑맥주의 일종인 포터 (porter)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상에서도 언급했듯이 영국에서는 17세기에 색이 진하고 풍미도 강한 포터 흑맥주가 대유행했습니다. 런던의 항구나 부둣가에서 일하던 포터 (porter =짐꾼)들이 이런 흑맥주를 즐겨 마셨기 때문에, 아예 포터라는 이름이 생긴 건데요. 이 포터 맥주가 유행하는 흐름을 잘 읽고 있던 아서 기네스가 영국에서 포터 만드는 기술자까지 데려와서 자체적으로 흑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기존 포터보다 좀 더 강한 도수와 풍미를 지녔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스타우트 stout(굳센, 강인한)' 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면서 맥주 스타일의 하나로 정립됐습니다. 그러니까 스타우트는 한마디로 '강한 포터 (strong porter)'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맥주입니다. 

기네스 양조장에 전시된 맥주병 -현지 촬영 사진-

3. 흑맥주 빛깔은 어디서 나올까? 


맥주 주재료는 당연히 몰트(malt=맥아)입니다. 몰트란 건 보리의 싹을 틔운 뒤 건조해서 당화와 발효가 가능하도록 만든 맥아보리(malted barley)를 말하는데요. 세상에 맥주의 종류가 다양하듯, 몰트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고, 색깔도 다양합니다. 지금이야 싹이 튼 보리를 쉽게 건조(예: 열풍 건조)하지만, 예전엔 이런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장작불로 보리를 건조했는데, 말이 건조이지 사실상 굽는 (로스팅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맥아가 불에 그을려 어두운 빛깔을 띌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맥주도 주로 어두운 빛깔이었습니다. 그런데 건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변화가 생깁니다. 우선 장작이 아닌 석탄을 연료로 쓰게 되면서부터는 어느 정도 불 조절도 가능해졌고요. 이후 코크스까지 나오면서 온도 조절이 더 쉬워졌습니다. 그러면서 18세기부터는 과거보다 훨씬 색이 옅은 빛깔의 몰트(대표적으로 페일 몰트 pale(=옅은) malt)가 세상에 나왔는데, 당연히 이런 몰트를 쓰게 되면 맥주 색도 옅어지겠죠. 이렇게 옅은 몰트로 한때 세계를 제패한 맥주가 바로 영국식 페일 에일입니다. (영국 페일 에일 중에서는 물 좋기로 소문난 영국 버튼 온 트렌트 지역에서 생산하는 바스(BASS)맥주가 유명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이렇게 건조 기술이 발전하면서 몰트의 빛깔과 풍미도 다양해졌는데, 그럼 흑맥주는 어떤 몰트를 써서 만드느냐? 쉽게 생각하면 '흑맥주니까 빛깔이 검은 몰트로 만드는 거 아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흑맥주에 검은 몰트가 들어가긴 하지만, 아주 소량이기 때문입니다. 


색이 검은 몰트는 쉽게 말해 고온에서 오랜 시간 로스팅을 한 겁니다. 맥주 전문서적을 뒤져보면, 이런 검은 몰트(예: 블랙 페이턴트 몰트)는 대략 200도 내외에서 굽는다고 합니다. 색이 옅은 필스너 스타일 맥주에 들어가는 몰트(예: 필스너 몰트, 비엔나 몰트)가 대략 80도에서 95도 정도로 로스팅한다고 하니까, 그보다 2배 이상 고온에서 굽는 겁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높은 온도로 굽는 만큼, 검은 몰트는 빛깔도 강하고 풍미도 셉니다. 특히 탄내가 많이 나고요. 그럼 흑맥주 만들 때, 이런 검은 몰트만 쓰게 되면 어떨까요? 너무 쓰고 텁텁해서 먹기 힘들겠죠? 그래서 흑맥주 양조자들은 옅은 빛깔 몰트에다가 검은 몰트를 아주 소량 첨가해 섞어서 씁니다. 맥주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전체 몰트 양의 3~5% 정도만 검은 몰트를 써도 충분히 검은 빛깔의 흑맥주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4. 기네스 빛깔은 몰트에서 나오지 않는다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 브루어리 정문 - 현지 촬영 사진-


앞서 일반적인 흑맥주가 검은 몰트를 소량 사용함으로써 검은 빛깔을 만들어 낸다고 했죠? 자 그렇다면 흑맥주의 대명사인 기네스는 어떨까요? 국내에 출간된, 수 없이 많은 맥주 전문 책을 보면 기네스 역시 검은 몰트를 쓴다고 돼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기네스도 초창기엔 검은 몰트를 썼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동안 읽은 맥주 전문 도서가 20여 종쯤 되는데요. 이 중에 이걸 제대로 설명한 책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국내에 잘못 알려진 건데요. 이번 기회에 잘못 알려진 3가지를 정확하게 팩트 체크해서 알려드릴게요. (가장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디아지오 코리아를 통해 기네스 본사에 연락해, 본사로부터 이메일 답변을 받았습니다.)   


팩트체크 1)  기네스는 검은 몰트를 사용하는가?

 

기네스 맥주 재료 배합 비율(레시피)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해 기네스 본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영문 이메일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The Guinness recipe is typically 60% Malted Barley, 30% Raw Barley and 10% Roasted Barley." 


즉, 몰트 (싹을 틔워 말린 보리) 60% + 보리 (로스팅하지 않은 보리) 30%+ 로스팅한 보리 10%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후에 이어진 추가 설명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For Guinness colour we only use Roasted Barley."  


다시 말해, 기네스는 검은 몰트를 써서 빛깔을 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로지 (only) 로스팅을 해서 까맣게 만든 보리, 즉 볶은 보리로만 색을 만들어 낸다는 겁니다. 결국 기네스 맥주 풍미와 색깔의 핵심은 10%에 해당하는 볶은 보리라는 의미입니다. 


2) 기네스에서는 보리 플레이크(flake)를 쓰는가? 


이 부분은, 국내에서 엄청나게 많이 팔린 맥주 서적에서 기네스가 보리 플레이크를 쓴다고 언급하면서 잘못 알려진 부분인데요. 이에 대해서도 기네스 본사는 짧지만 명확한 답을 전해줬습니다. 


"We no longer use Flaked Barley."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기네스에서 보리 플레이크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추가로 문헌 기록들을 뒤져보니,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보리 플레이크를 쓴 것 같습니다. 1983년 영국 생산 공장 레시피에 "60% pale malt, 30% flaked barley, 10% roast barley"라고 적힌 게 있더군요. 암튼 과거엔 썼지만, 지금은 더 이상 보리 플레이크를 쓰지 않는다고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3) 로스팅한 보리를 쓰게 된 이유는? 


이 대목 역시, 이번 기회에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국내 여러 맥주 전문 서적은 물론 심지어 포브스 같은 외신들조차 '썰'에 불과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잘못 알려진 부분인데요. 먼저 2016년 포브스 기사부터 인용할게요. 


https://www.forbes.com/sites/kellyphillipserb/2016/03/17/you-can-thank-excise-taxes-for-guinness-stout/?sh=364b87985bf7


"(....) At the turn of the century, Guinness died and his son - also cleverly named Arthur - took over the family business in 1803. The second Guinness, however, made some changes. Specifically, he altered the family beer recipe to include unmalted roasted barley. He did so for extremely practical reasons: the unmalted barley wasn’t subject to heavy excise taxes imposed on malt.  (후략)"


이 기사는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네스가 몰트와 함께 볶은 보리를 쓰기 시작한 게 창업자 아들인 기네스 2세 시절이고, 당시 잉글랜드 정부가 몰트에 대한 세금을 과도하게 물리면서, 이걸 피하려고 몰트 대신 세금 부과가 안 되는 로스팅한 보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볶은 보리 공법은 기네스 2세의 절세 아이디어였다는 얘기인데요.  이와 비슷한 내용이 현재 국내에서 출간된 여러 맥주 책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상을 준비하면서 팩트 체크 차원에서 자료를 뒤지다 보니, 이와 반대되는 주장과 의견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래 링크를 달아놓은 해외 유명 맥주 전문 블로거 글을 보게 되면,  기네스가 볶은 보리를 쓰기 시작한 건 기네스 2세 시절보다 한참 뒤였고,  절세 방안도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http://zythophile.co.uk/2007/11/06/bristol-fashion-guinness-and-the-roast-barley-question/

(So: it looks like Guinness only started using roasted barley to make “Irish stout” in the late 1920s or 1930s, and began using flaked barley in the early 1950) 


http://barclayperkins.blogspot.com/2007/11/guinness-and-roast-barley.html


대체 뭐가 사실일까요? 다시 기네스 본사에 정식으로 문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답은 이렇습니다. 


"We’ve been using roasted barley in Guinness since the 1880s. This was a direct result of the passing of a piece of legislation in Britain called the ‘Free Mash Tun Act’ in 1880 that removed restrictions on the use of raw (i.e. unmalted) grains in commercial brewing. Prior to the 1880s, the dark colour of stouts and porters was obtained from roasted and black malts, like Steve said, and all our colour today comes from the roasted barley." 


복잡한 법도 등장하고 해서 이해가 쉽지 않을 텐데요. 쉽게 말하자면, 기네스가 볶은 보리(로스팅한 보리)를 쓰기 시작한 건 기네스 2세 시절이 아닌, 창업자인 아서 기네스의 증손자(에드워드 세실 기네스) 시절인 1880년대였다는 겁니다. 또한 그 이전까지는 몰트가 아닌 곡물을 상업 증류소에서 사용하는 걸 규제하는 법 때문에 볶은 보리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고, 1880년대에 새로운 법(Free Mash Tun Act)이 통과되면서 이런 규제가 사라지면서 볶은 보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기네스의 볶은 보리 공법이 원래는 절세 목적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일 수는 있지만, 영국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실행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규제가 풀리기 전까지는 다른 맥주 제조업자들처럼 검은 몰트를 넣어서 흑맥주를 만들다가, 규제가 풀린 이후에야 새 공법을 도입했다는 겁니다. 

기네스 드래프트 - 제공:기네스 코리아


지금까지 기네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 몇 가지를 팩트 체크하고, 더불어 영상에서 시간 제약으로 미처 설명드리지 못한 내용도 올려봤는데요. 추가로 궁금하신 내용 있으시면 제 이메일로 연락 주시면 기네스 본사에 다시 물어서라도 친절히 답해드릴게요. (beautyalcoholic@naver.com) 


(* 함께 올린 사진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기네스 양조장 방문 당시에 촬영한 것입니다.) 


그럼 저는 다음 영상으로 다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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