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사람들 : 아인슈타인

무엇이 불멸의 상대성이론을 창조하게 하였는가

by 반루이 Van Louii

이 글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이라는 창의적 결과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그의 몇몇 특정한 사고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다.


그것은 크게 3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전통과 권위에 대한 반항적 자세, 경험보다는 직관을 선호함(귀납보다는 연역)

그리고 대화의 힘이다. 지금부터는 이것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 :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뉴턴 이후 최고의 과학자

창의력을 위한 활동 중 4번째 "창의적인 사람들에 대한 전기 읽기"의 시작을

아인슈타인으로 정했다. 아인슈타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그가 과학계에 끼쳤던 영향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의 교양이 있는 사람들도

그가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아이작 뉴턴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영향력은 과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도 모자라 21세기 문명 자체를 바꾸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의 이론이 없었으면 전자공학과 반도체가 없었고 그러면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제품들의 다수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의 업적들은 그밖에 병기 공학, 광학, 군사전술, 원자력 발전과 같은

우리 삶에 밀접한 분야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간단한 설명 (관심 없으시다면 스킵하셔도 됩니다.)

'기적의 해'로 불리는 1905년도에 발표된 논문이다. 아주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시간이 흐르는 방법이나 공간의 크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바뀐다'라는 이론이다. 그리고 그 이론의 토대가 되는 내용은

'상대성 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원리'이다.


첫째, 상대성 원리란 '정지해 있거나 등속 직선운동을 하는 계에서는 모든 물리 법칙이 똑같이 성립한다.'이다. 똑같은 속도로 계속 쭉~ 직선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을 생각하면 무난할 것 같다.


둘째, 광속도 불변의 원리란 '빛의 속도는 관측하는 장소의 속도나, 광원이 움직이는 속도와 관계없이 항상 초속 3만 km로 일정'하다는 내용이다. 상식과는 벗어나는 원리다. 예를 들어 달리는 열차 안에서 거꾸로 달려오는 열차를 보면 열차의 원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열차 안에서 내가 보는 것이 열차가 아닌 빛이라면, 그것이 나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다러도 나에게 보이는 빛의 속도는 초속 3만 km로 일정하다.


아인슈타인 창의적 사고의 첫 번째 단서 : 권위에서 비롯된 오류 그리고 도약

아인슈타인이 알고 있던 걸 이미 간파하고 있던 과학자가 또 있었다? :

놀랍게도 그렇다. 그중에 한 명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앙리 푸앵 카레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발표되기도 전에 그는 이미 시간의 절대적인 본질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했다. 그런데 왜 아인슈타인과 같은 도약을 이루어 내지는 못했을까? 아인슈타인의 뒤를 이어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에서 이론물리학자로 일했던 프리먼 다이슨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푸앵카레는 기질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아인슈타인은 기질적으로 혁명가였다는 점이 두 사람의 근본적인 차이였다. [..] 푸앵카레는 과거의 이론을 가능하면 보존하려고 했고 [..] 자신의 이론으로 에테르(*빛의 매질이라 상상했던 가상의 물질)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는데도 에테르를 사랑했고, 계속해서 그것을 믿었다. [..] 그 반대로,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틀이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기꺼이 폐기해버렸다. 그의 이론은 훨씬 더 단순하고, 우아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기질'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수학자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데 그 이론이 맞으려면 1+1=2라는 법칙을 부정해야 한다고 하자. 보통의 수학자라면

내가 만들려고 하는 이론에 뭔가 문제가 있겠거니 하면서 더 이상의 도약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깨버리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냈다.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아인슈타인의 직업은 전문 과학자가 아닌 특허사무소의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가 업무는 전기기계장치에 대한 특허심사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어쩌면 그 당시의 과학계 또한 자신이 인정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까?


두 번째 단서 : 경험보다는 직관을 선호함

아인슈타인이 1919년에 쓴 글을 보자. 거기서 그는 "우리가 더 깊이 파고들어가고, 우리의

이론이 더 광범위해질수록 이론을 결정하는 데에 필요한 경험적 지식은 점점 더 줄어든다"라며 "위대한 발전은 귀납과는 거의 정반대가 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과학자들은 아주 복잡한 사실들의 핵심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로부터 가상적인 기본 법칙을 가정한다. 그런 법칙으로부터 결론이 유도된다."라고 했다.


보통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어려운 공식들과 난해한 수학적 개념들로

꽉꽉 채워져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상은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되어있다. 그리고 사실,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다른 물리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하지 못했다. (오히려 싫어하는 수준이었다.) 그가 특수상대성이론을 위해 한 활동은 주로 여러 가지 모순되는 이론이나 현상들을 사고 실험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그것을 통해 가설을 만들고 또 그 가설에서 나오는 딜레마에 대해서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직관적으로 이끌어낸 법칙은 그 후에 수학적으로 풀이되었고, 그 수학 작업의 많은 부분을 (그보다 수학적으로 더 뛰어난!) 그의 친구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세 번째 단서 : 기적은 대화를 하던 도중 일어난다

아인슈타인은 본래 특수상대성이론을 다듬어 가던 도중 더 이상 해결책을 못 찾아내고 심한 난관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는 상대성 원리와 빛의 전파에 대한 간단한 법칙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 사이엣 많은 갈등을 하고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인슈타인은 그저 평범한 스위스의 특허 관리청 직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묻힐 뻔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유레카의 순간은, 아르키메데스가 그러했듯, 뜻밖의 곳에서 일어났다. 출근길에 그의 친한 친구 미셸 베소와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던 도중이었다. 처음 대화가 "포기해야 할 것 같다"로 시작했지만 이야기 도중 돌연 " 갑자기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 아인슈타인은 엄청나게 흥분한 상태로 "고맙네,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네"라고 외쳤다고 한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대화와 토론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모임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정신세계에 영감을 주는 책을 읽고 토론했다. 사실 그의 이론 중 중요한 단서들과 배경지식도 이런 식으로 얻어진 것들이었다.


*참고문헌

Einstein : His Life and Universe, Walter Isaacson

Three major theories of Contemporary physics, Newton Highlight

Wikipedia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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