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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이너 Feb 23. 2022

메뉴판 집착녀

메뉴판도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메뉴판 좀 만들어줘요


 최근에 작은 외식 브랜드 매장 4개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가 첫 브랜드를 오픈한 지 벌써 6년째 접어들고 그 사이에 브랜드가 4개가 되었다. (소상공인이 매장을 오픈에서 1~3년 버티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던데 꾸준히 유지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 왠지 멋지고 신기하고 대단해 보인다.) 그는 요새 장사가 주춤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새로 생긴 앞집 식당에 사람들이 불티나게 방문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충격을 먹은 듯하였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하여서 장사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새로 오픈한 식당에 사람들이 줄 서는 것을 보고 원인을 마케팅에서 찾았고, 지속적인 마케팅을 위해 브랜딩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얻고자 하였다.

 

 그는 현재 4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나름의 브랜드 철학이 담긴 로고도 있다. 남들처럼 SNS를 통해 고객과 소통도 열심히 하고 있다. 딱 거기 까지다. 브랜드는 있지만 브랜딩이 되어있지 않으니 마케팅 활동이나 고객과 소통할 때 작은 외부 자극에도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메뉴판을 의뢰하고 싶어 했고 나는 우선 브랜드를 정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해주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변경되면 메뉴판을 또다시 만들어야 할 테니까. 브랜드를 한눈에 담은 것이 바로 메뉴판이다.


내가 만들어 준 지인의 첫 브랜드 로고(왼)와 매장 외관(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외식기업에서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했고 브랜드의 철학이나 가치를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결과,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바로 메뉴판이었다.

식당에 갔을 때 매장의 파사드나 입구를 보고 매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보는 것은 주문하는 음식에 대한 일종의 의식 같은 식전 행사다.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온몸으로 분위기를 느낀 채로 메뉴를 선택하고 그 음식을 만든 이의 철학과 음식의 스토리를 온전히 취할 수 있어서 비로소 음식이 나왔을 때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몇 년 전 디자인 트립으로 친구와 방콕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 친구 역시 외식기업에서 브랜드 디자인 일을 하는 친구라 서로 관심사가 비슷하였기에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그 당시 방콕은 유럽과 일본의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오고 있어서 각 나라의 문화를 힘껏 느낄 수 있는 식당과 카페, 쇼핑몰들이 엄청나게 생겨나고 있었고 풍성한 볼거리에 나는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여행 말미에 정리하는 대화 도중, 웃기지만 슬픈 사실을 발견했다. 친구가 나를 찍어준 사진 속에 나의 모습은 죄다 무언가를 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브랜드 정보를 찾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하며 본 다양한 모습의 메뉴판이나 브랜딩 포인트가 될 것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매장 브랜드의 정보를 탐색했다. 

브랜드 디자인 업무를 하는 동안, 다양한 외식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었고, 친구와 카페나 식당을 방문했을 때에도 음식이나 메뉴판 등이 맘에 들면 으레 껏 카메라 셔터를 눌러서 브랜딩 자료로 남기고자 하였다.

메뉴판을 사진 찍거나 브랜드 정보를 탐색하는 중 


 요즘에는 젊은 사장님들이 브랜딩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 그런지 예쁘고 감성적인 메뉴판과 브랜딩 포인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상천외한 외관의 식당 분위기부터 정말 독특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메뉴판까지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한 브랜딩 아이디어는 놀랍다. 아마도 SNS를 통한 입소문 마케팅에 사활을 건 브랜드들의 결투극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톡톡 튀고 눈길을 사로잡는 형식의 단지 유행을 좇는 브랜딩의 모습보다 투박하고 서툴지라도 오래오래 지속적으로 고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브랜딩 활동이 되어야 한다. 즉 고객과 브랜드로 소통하는 콘텐츠로써 누구나 사진 찍고 싶을 독특한 비주얼의 메뉴판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신경한 듯 투박한 멋 그대로가 그 매장의 브랜딩으로 자리 잡은 식당도 있다. 그것이 몇십 년 전통의 식당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 맛집으로 또 멋집으로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메뉴판은 고객과 가장 접점에서 만나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매체이다. 그 형태가 테이블에 앉아서 보는 종이 메뉴판이나 태블릿 메뉴판일 수도 있고, 벽에 붙어있거나 세워져 있는 메뉴 보드나 키오스크일 수 있다. 가끔은 매장 입구에서 고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파사드가 될 수도 있고 입간판이 될 수도 있으며 매장 벽면의 포스터나 POP도 메뉴판이 될 수 있다. 때로는 테이크아웃용 패키지 봉투도 메뉴판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브랜딩 포인트로써의 메뉴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식당들의 메뉴판과 브랜딩 포인트를 통해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내가 느꼈던 브랜딩을 소개하고 나누고자 한다. 브랜드마다 가지고 있는 주인장의 철학과 고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메뉴판을 통해 어떻게 느낄 수 있었는지, 브랜딩 포인트에 따라 음식이나 매장의 분위기는 어떻게 다르게 느껴졌는지, 또 어떤 형태로든 메뉴판을 통한 브랜딩이 왜 필요한지 말하고 싶은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로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고 브랜딩을 표현하던 메뉴판이나 브랜딩 포인트들을 모바일 배달앱이나 태블릿 오더기가 대체되고 있다. 너도나도 차별화된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열을 올리던 때에 비하면 메뉴판이나 브랜딩 포인트를 위한 비용은 줄이고 이에 따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이 줄어들어서 아쉬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극복하여 다시금 고객과 브랜드의 가치와 경험으로 소통하고 나누는 그런 메뉴판들이 다시 한번 생겨나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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