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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 Nov 16. 2018

생각보다 단순하려나

미니멀 변주전, 동시대의 ‘미니멀’에 대하여


삶은 꽤나 복잡할 때가 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던 꼬맹이 시절을 제외하면 세상은 내게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잘하기는 쉽지 않고, 단순한 질문에 단순한 대답을 내놓는 것 만큼 힘든 일이 없다.




서울대학교 MOA 미술관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린 뒤 버스타고 한참을 올라와야 있어 큰 맘 먹고 찾아오지 않으면 오기가 어렵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시 관람료에(서울대학교 구성원은 무료!) 비해 전시 기획의 퀄리티는 늘 평균을 웃돈다.



꽤나 화려했던 지난 전시 <진동>에 비해 이번 전시 <미니멀변주>는 훨씬 절제된 모습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단순하고, 정돈된 모양들로 구성된 1960년대 미니멀리즘 아트의 모습을 닮아있다. 하지만 전시의 묘미는 ‘닮음’보다는 ’다름’에 있다는 생각이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모두 한국 작가들의 것이고, 가장 최근작은 2018년작, 가장 오래된 작품은 2009년작이다. 이쯤 되면 이상하다. 남 따라하는 일을 제일 싫어하는 예술가들이 왜 이미 꽤나 지난 유행인 미니멀리즘을 되살려낸 것일까? 2부로 나누어진 전시는 이 한국의 동시대 작가들이 미니멀리즘을 되살려 내고, 재해석하고, 해체하고, 비판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정섭의 가구는 이런 의미에서 특별하다. 미니멀하고 단순한 외형이지만 가구의 결을 따라 작품을 보다보면 이것이 의심할 수 없는 ‘나무’임을 알게 된다. 재료가 가지는 질감마저 단순함의 영역으로 끌어당기는, 장인만이 가지는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에 하나 놔두고 싶은데 가격을 듣고 포기했다...)


편대식의 <Moment>를 보는 것은 감상보다는 체험에 가까운 일이다. 가로로 54m, 세로로 2.85m의 한지를 가득 채운 연필자국은 “세상에 이걸 다 칠했다고!”라는 탄식이 나오게 한다.(54m의 작품을 다 전시할 수가 없어서 남은 부분을 옆에 말아놨다. 말아놓은 것도 꽤 두껍다.) 이런 ‘맥시멈’한 작품을 ‘미니멀 변주전’에서 전시한 까닭은 아마 제작과정 때문일 것이다. 수행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한 작품의 제작과정을 상상하면서 관객은 그 단순함에 처음에 경악하고, 나중에는 경의를 표하게 된다. 



오완석의 “Underpainting” 연작도 생각할만한 질문을 던진다. 유리판 위에 단순한 조형을 표현한듯한 이 작품은 ‘뒤집었다’는 것에서 의미가 생겨난다. “Underpainting” 연작은 우리가 일반적인 회화 작품을 감상할 때 전혀 감상의 요소로 고려하지 않았던 작품의 뒷면을 도려내듯 잘라내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이 단면을 바라보며 작품의 이미지가 생성되는 바로 그 순간을 관음하게 되는 일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체험이 된다.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이 작품에 개입하는 순간을 즐기는 오완석 작가의 성향이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1부가 60년대 미니멀리즘이 강조한 조형과 형식에 초점을 맞춘 ‘미니멀리즘의 재창조’와 같은 작품이라면, 2부의 작품들은 미니멀리즘의 형태를 차용했지만, 새로운 의미를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좌측부터 김이수’Inframince-Landscape’ 최은혜  ‘Light Collage' 박남사 ’46개국의 하늘’

김이수의 작품이 보여주는 절제된 풍경의 모습은 단순한 조형이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순한 반복에 의한 재현일지라도 감상자에게 다양한 감정과 해석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 놀랍다. 최은혜의 작품은 따뜻하다. 치열한 고민과 해석을 유도하는 대다수의 현대미술과는 달리 그저 넋놓고 바라보게된다. ‘이쁜’ 정육면체와 경계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본질적으로 가지는 효과인것 같기도 하다.


박남사의 작품은 ‘꼬여있다’. 박남사는 예술을 가장 덜 예술답게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인 ‘사진’과 ‘인쇄’를 사용한다. 우리가 예술로부터 기대하는 ‘신비로움’의 속성을 잘라 걷어내는 일은 작가가 비판하는 속물적 근성을 겨냥한다.



복잡한 예술, 화려한 예술을 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단순함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은 경험이기에, 이렇게 잘 조직된 단순함에 대한 전시를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미니멀 변주’에 전시된 외형적으로 단순한 작품들은 그 안에 더 복잡하고, 생각해봄직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장 단순한 것이 진리에 가깝다는 오컴의 면도날이 떠오른다.


<미니멀변주전>

서울대학교 MOA

10.4~11.28






*필자는 이 전시에서 도슨트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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