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단어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메모한다’, ‘기록한다’와 같은 단어들을 보아도 그렇다. 손에 펜을 들고 노트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행위. 책을 읽어나가며 발견하는 좋은 문장들을 노트에 차곡차곡 필사하는 행위. 키보드를 두드리며 화면 가득 새로운 문장들을 생산하는 행위. 이 모든 행위들을 사랑한다. 이토록 내가 사랑하는 글쓰기.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글을 쓰는 일이 어떻게 내 삶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한참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떻게 밖으로 분출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며 웅크리고 있던 그 열망. 그 열망에 불을 지펴보려 하는 요즘이다. 늘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소망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이유들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가장 먼저 나도 모르게 글쓰기를 매우 어렵고 복잡하며 무척이나 신성한 일로 추앙했다는 것. 글쓰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며, 완벽한 문장들로 모두에게 유의미하고 유익한 완벽한 글을 써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에 대한 환상을 지어냈었다는 것.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 과연 새롭고 흥미로운 쓸 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는 것. 수많은 책들의 작가들을 우상화하고 나와 비교하며 결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오해와 열등감을 스스로 만들어냈던 것. 나는 왜 그토록 ‘쓰는 삶’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그러한 삶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며 살아왔을까. 왜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로 그토록 원하는 ‘쓰는 일상’을 스스로 포기하며 살았을까. 생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단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글을 진짜 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 안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들을 정리하여 하얀 페이지 위에 써 내려가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안에는 그런 의미있고 가치있는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므로 나는 글을 쓰고 싶지만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을 늘 미루고 또 미루면서 멀어지고 또 멀어졌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의 장애물을 만들고 그 덫에 빠져 매일 글을 쓰겠다는, 최소한 일기라도 매일 쓰겠다는 그 다짐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또 포기하며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그 쓰고자 하는 열망은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정신분석이론특강’을 수강하며 과제를 하는 동안 <라이팅: 정신분석과 문학>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운명처럼 만나게 된 것이다.
‘글은 더 이상 사유를 번역하거나, 이미 발언되거나 발언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표현해서 의미를 전달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결코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를 어떤 것으로의 통로이다.’
‘나에게는 쓰고자 하는 글의 내용이라는 것이 없기에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빛과 희망을 던져주는 글이었다. 나의 그 대단한 착각을 드디어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내 안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 그 이상이다. 글은 미리 하는 기획과 준비된 언어로만 써 내려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나의 무의식과 만나며 그 안에 있을지 모를 어떤 소중한 것을 흰 바탕의 종이 위에 꺼내볼 수 있다. 글쓰기는 나와 무의식이 함께하는 공동작업인 것이다. 그렇기에 결코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글을 쓰는 일이기도 하다. 써보기 전에는 나도 내가 어떤 글을 완성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글을 쓰기 전 어느 정도의 기획과 방향을 설정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언제나 새로운 언어와 문장들이 눈앞에 펼쳐지며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길로 나를 인도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무엇에 대해서 쓰지? 쓸 거리가 없어서 어쩌지? 글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까?’ 글을 쓰려고 할 때 밀려오는 걱정스럽고 두려움이 가득 담긴 이러한 질문들이 무색하게, 일단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단어와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편의 글이 어느새 완성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의 무의식은 결코 마르지 않을 것이고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한한 것을 내포하고 있기에, 무의식과 함께 하는 하는 글쓰기 작업에 있어서 쓸 거리가 고갈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렇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만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나와 만나기 위해 글을 쓸 것이다. 나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 내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내 안에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보물창고가 존재함은 알지만 그 안에 어떤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그 보물들을 꺼내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음미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부지런히 무의식이라는 광산을 탐험하면서 황금을 발견하고 캐낼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무의식과 친구가 될 것이고 조화롭고 사이좋은 우리는 보다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라는 훌륭한 작품을 창조하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내가 글을 쓴다면, 쓰기 시작만 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는 성실하게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살 것이다. 평생 글을 쓰면서 살 것이다. 매일 글을 쓸 것이다. 이것이 내 삶의 사명이다. 글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떤 복잡한 준비도 생각도 필요 없다. 그저 쓰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의식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아직 알지 못하는 나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즐겁게 삶이라는 놀이에 함께 참여하여 즐기는 것과 다름 아니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최고의 유희이며 최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