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로운 내용을 담은 글을 써내려가려면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매일 비슷한 경험을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영어를 공부하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아이가 일어나면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등원 준비를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커피를 내리고 다시 책상에 앉는다. 미드를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거나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충분히 만족할 만큼 몰입하고 그날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느끼는 순간 작업을 마무리하고 일어나 다시 간단하게 집안일을 한다. 아이가 돌아오면 먹을 간식과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준비하고 청소와 정리를 간단하게 한 후 스쿼트와 실내 자전거로 가볍게 운동을 한다. 종종 여유가 있을 때에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거나 마트에 가기도 한다. 아이가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주말에는 온종일 아이와의 시간.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글을 써내는 것이 가능할까? 매일 글을 쓰자고 다짐했지만 이런 고민에 다시 빠지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글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생활방식과 다양한 정신적 세계가 존재할 것이다. 글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글의 양식과 내용이 존재할 것이다. 글은 쓰는 사람 내면에 존재하는 정신적 세계의 반영이므로. 매일 글을 써내기 위해서 일부러 매일 새로운 외적 경험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매일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또는 하고 싶은 경험을 해나가는 동안 그 안에서 생각하고 느꼈던 바를 하나씩 차근차근 꺼내보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매일이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갈지라도, 매일의 생각과 감정이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지더라도, 매일 내 안에서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언어를 찾아내면 깊숙이 들어가보는 일. 이러한 내면의 탐험을 매일매일 시도하는 일. 나의 내면에 노크를 하고 나의 무의식과 진심 가득한 대화 나누기를 시도해보는 일. 의자에 엉덩이를 붙들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 안에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언어와의 만남을 기대해보는 일. 이런 일들을 그저 매일 계속계속 해보는 일. 이러한 일들이 그 어떠한 새롭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외적 경험들보다도 본질적으로 더 글을 쓰는 일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강 작가는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소설 이어 쓰기’와 ‘집 근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를 루틴으로 삼아 지키려고 노력하며 소설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철저하고 성실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해나가며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다양한 작가들이 있을 테지만 늘 나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들은 이런 작가들이다. 단순하게 소박하게 삶의 시간을 구성하고, 일종의 자기 단련과 훈련이 철저하게 바탕이 되는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글을 차근차근 완성해나간 작가들. 나는 그들처럼 훌륭한 소설을 써내야겠다는 욕심같은 것은 없지만 다만 글쓰기를 삶의 중심에 둔 그들의 그 단순한 생활방식이 마음에 들고 무척이나 욕심이 난다. 나의 삶에 받아들이고 있는 힘껏 흡수하고 싶다.
평생 읽고 쓰면서 작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나의 평생의 꿈이자 로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써보기 전에는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고 또 쓰고 싶은지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활 속 새롭고 특별한 외적 경험을 서술하고 묘사하는 글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길 수 있는 기록으로써 충분히 의미와 가치가 있을지언정, 내가 원하는 어떤 철학적이고 통찰력 풍부한 글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글을 써내기 위해 특별하고 새로운 경험을 찾아 수행해나가는데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나의 생활을 화려하고 특별하게 꾸미고 그런 일상을 글에 옮겨담으려 애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보다는 글이 곧 생활이 되는, 글을 쓰면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그런 삶, 그런 글을 추구해나가려고 한다. 나의 내면에 담긴 것을 드러낼 수 있는 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글, 내가 상상하는 것들이 삶에서 꽃피워 실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글. 이런 글을 추구해나가려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어떤 특별한 여행을 계획해야 할까, 어떤 전시회에 가야 할까, 어디로 소풍을 가야 할까, 어떤 새롭고 다양한 자극을 찾아나서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더 이상 하지 않아보려고 한다. 나는 내향인이기에 외부의 자극과 경험은 오히려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경험들을 방해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당분간 오로지 나에게 의지하여 나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담긴 글을 써나가보자고 결심해본다. 참으로 대담하고 용기있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스스로 실험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글쓰기에도 정답은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