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이룬 모든 성취는 당연히 내가 해낸 것이고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기에 내가 의지를 갖고 노력하기만 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착각에 빠졌었던 것이다. 내가 실패했다면 그것 또한 내가 제대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노력만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 노력하고 애쓰는 일에 더욱더 집착하곤 했다. 그러고서는 노력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심취해 나 자신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식의 자기애가 강해질수록 나는 더 잘 살게 되었을까? 더 행복하고 뿌듯했을까? 글쎄, 겉으로 보이는 성취는 늘어났을지 몰라도 나의 내면에는 왠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이 서서히 쌓여갔던 것 같다.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루고 그 모든 성취를 독차지할 수 있다는 이 무의식적인 마음의 패턴은, 세상 나 혼자서 잘난 맛에 사는 듯한 이 오만방자한 태도는, 나를 점점 더 협소한 공간으로 데려가 가두어버렸던 것 같다. 뭔가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 작아지고 쪼그라지고 시들어가는 느낌. 삶을 향해 밖을 향해 나의 꿈과 열정을 펼쳐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어쩐지 그 반대 방향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어딘가를 향해 혼자 무작정 질주하던 내 다리는 멈출 줄을 몰랐었다.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만큼 아파서 강제로 멈춰질 때까지는. 결국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삶이, 일상이, 엉망진창으로 산산이 조각나고 부서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한 후에야 깨닫게 된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고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다.
나는 결코 혼자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낸 것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나 혼자의 노력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당연한 필요조건이지만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코 나는 혼자일 수 없었다. 분명히 누군가의 보살핌과 돌봄이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누군가의 사랑과 정성이 있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점점 자라면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잘난 체하며 지낸 적도 있지만 돌아보면 그때조차도 분명 누군가의 관심과 배려와 친절이 나를 돕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살아가면서 혼자 고립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면 그럴 때조차 나는 누군가의 온기와 에너지로 힘을 얻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혹시 그게 지나간 추억이거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기억일지라도, 어쨌든.
다친 아이와 택시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향하면서 생각한다.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출산을 앞두고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서 생각한다. 의사 선생님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과 감사함에 대해서. 갓 담근 김치를 먹으면서 느껴본다. 그 안에 담긴 시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골목길에서 느린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기다려주는 운전자의 세심한 배려를 느껴본다. 잊지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의 다정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떠올리며 할머니가 내게 주신 그 무한한 애정과 따뜻함에 대해서 깊이 느껴본다. 나를 스쳐 지나간 그 무수한 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고마운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사랑이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들의 정성이 나를 도왔고 나를 살게 했다. 이런 깨달음에 이른 지금이 바로, 삶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길 때이다.
나는 그 모두의 도움과 정성 없이는 여기까지 잘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나 아닌 다른 존재들 덕분이다. 내가 지금 이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가졌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 나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임을 항상 기억하며 앞으로의 나날들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이 엄청난 기적은, 결코 나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님을. 삶이라는 것은 결코 나 혼자 이룩하는 것이 아님을. 나 혼자의 것이 아님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내가 무심코 지나쳐버린 것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보이지 않는 그 도움의 손길을 뿌리침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진심 어린 감사함에 젖는다. 삶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되찾아간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정성으로 살아간다. 그렇기에 늘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며 서로의 존재를 따스함으로 감싸안아 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한 정성 어린 마음과 감사함으로 주고받는 삶을 살아간다. 함께 살아간다.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삶이라는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