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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Dec 16. 2024

글쓰기라는 마법

일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특별하게 바꾸는

출산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남편의 휴직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디데이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다. 어제는 하루종일 딸아이 옆에 붙어 있느라고 시간이라는 것이 느릿느릿 거북이 속도의 체감으로, 그러나 날쌘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내 손아귀를 지나쳐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이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철분제를 받으러 보건소로 향했다. 몇 달 전부터 해야 할 일 목록에 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서야 몸을 움직였다. 드디어 달성완료 표시를 할 수 있게 되었네. 괜스레 후련한 기분이다. 그다음 목적지는 서점. 저번주 금요일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서 보내달라는 어린이집 알림장 메시지를 보고 오늘만을 기다렸더랬다. 아이가 받게 될 첫 크리스마스 선물. 아이에게 주는 첫 크리스마스 선물. 나이가 들수록 별일 아닐 수 있는 일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며 소란을 떠는 일을 자제해보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잘 안 되네. 아이를 위한 첫 크리스마스 선물이니만큼 엄마 아빠가 함께 고심해서 고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원 공부로 바쁜 남편을 꽤어내어 오늘의 나들이 계획이 성사된 것이었다. 서점으로 가는 차 안.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는 카페의 네온사인 간판.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가 흠뻑 묻어나는 그 불빛의 반짝거림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서게 했다. “커피 한 잔 하고 갈까?”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남편이 묻는다. “그래, 좋아! (좋아도 너어어어어어무 좋아!^^)”라는 말과 “여유를 갖자. 이게 얼마만이야~”라는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해맑고도 씩씩한 목소리를 입고 이렇게 불쑥 나와버린, 나의 진심을 넘어선 ‘찐’심의 표현에 우리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이 설레면서 동시에 차분해진다.


오랜만에 바깥 커피를 마셔본다. 남(편)이 사주는 세상 최고로 맛있는 커피. 남편은 아메리카노 나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커피의 뜨끈함 속에서 피어오르는 한줄기 연기를 바라보며 음미해보는 향기 그리고 첫 한 모금. 내가 “우와~ 괜찮다~ 좋다~”라고 말하고, 남편이 “음, 부드럽네~”라고 말한다. 결혼 전만 해도 커피맛을 전혀 모르던, 카페를 왜 가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우리 남편과 이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나의 커피에 대한 사랑이 어느 순간 남편에게까지 전파되어 이제 함께 즐길 수 있는 공통의 취미가 되었다는 것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기쁘고 또 감사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종류의 원두를 하나씩 사서 마셔보며 커피맛을 탐색해보고 커피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 매일 아침 서로의 하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원두를 정성스레 갈아 커피를 내려주는 일, 곱게 갈린 원두 위에 뜨거운 물을 원을 그리듯 두른 후 드리퍼에서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커피 소리에 집중해보는 일, 점점 다양한 커피의 향과 맛을 구별할 수 있게 되는 일, 나와 남편의 입맛과 취향을 알아가는 일, 커피로 대동단결하여 주말육아를 함께 헤쳐나가는 일까지. 이 모든 것들이 요즘 내 생활에 큰 기쁨이며 행복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본다.


남편이 갑자기 요즘 내가 하는 글쓰기와 블로그와 브런치 활동에 관심을 보인다. 이것저것 물으며 내 블로그에 들어가더니 뜬금없이 ‘좋아요’를 눌러준다. 내친김에 ‘구독’ 버튼도 눌러준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요나 구독 버튼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자, 남편이 이렇게 대답한다. “이게 다 사랑을 보내주는 거야~” 이 한마디에 추위에 떨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며 녹는다. 평소 애정표현에 건조한 우리 남편도 가끔은 이렇게 뜬금없이, 뜬금없는 방식으로 로맨틱해질 것만 같은 순간이 종종 있다는 사실에 또 새삼스레 잠깐 설렘을 느껴본다. 커피의 맛과 향기에 잠시동안 취해 있다가, 컵의 모양과 디자인과 느낌에 대해서 생각해보다가, 들려오는 음악의 느낌과 스타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다가,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브런치에 ‘글쓰는 엄마’라는 문구를 검색해본다. ‘글쓰는 엄마’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요즘이다. 그동안은 ‘엄마’라는 정체성과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따로따로 생각했고 그 둘을 합쳐 ‘글쓰는 엄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져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이미 세상에는 ‘글쓰는 엄마’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들이 써내는 글들 속에 담긴 그들의 일상의 모습과 정서가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지 공감이 많이 되고 크나큰 위로와 격려로 다가온다. ‘육아와 글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글쓰는 엄마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일은 나의 삶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들의 글을 보면서 느끼는 바와 생각할 거리가 넘쳐나기도 한다. 오늘 카페에서 읽은 글쓰는 엄마의 글은 역시나 ‘집에 돌아가면 나도 다시 노트북을 켜고 오늘의 글 한편을 완성해야겠다’는 다짐을 이끌어냈고, 오늘은 시간이 없어 포기하려 했던 글쓰기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렇게 조금은 더 건강하고 튼튼해진 마음으로 카페에서의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이미 행복함으로 넘쳐나는 나의 마음에 남편은 더 큰 행복을 보태며 이렇게 말한다. “월요일 오전 카페에서 우리 둘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 이거 쉬운 일 아닌데.” 맞다.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갑자기 앞으로 펼쳐질, 출산을 하고 신생아를 돌보고 남편이 복직을 하고..., 이런 일련의 일들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찾아온 행복을 급박한 손길로 가지 말라고 붙잡아 본다. “맞아,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야. 정말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혼자서 또다시 생각하며 읊조려본다.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요즘 매일 아침 일어나 글을 한편 쓰는 루틴을 지켜오고 있었는데,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고민만 하다가 백지로 남겨둔 채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글을 쓸 준비는 다 되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쓸 내용이 없다는 것은 정말 막막한 기분이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다소 허전함이 느껴지는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가야 할 곳들도 있고 해야 할 일도 많으니까 글을 쓸 시간은 없겠지. 속으로 생각했었다. 글을 한편 완성하는 일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과제를 삶의 최대 관심사로 지정하고 염두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일상의 이런저런 사소한 움직임들 속에서 우연한 힌트와 신호와 응원의 메시지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한 편의 글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신기하게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오늘은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나의 하루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글로 풀어내어 써보기를 시도한다. 별 볼 일 없다고 여겼던 나의 하루도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꽤 근사하게 느껴진다. 글로 써낼 만큼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상이라 여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더 글쓰는 일을 미루고 또 미뤄왔었다. 세상의 많은 글쓰는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내는 매일매일이, 매 순간이 곧 글쓰기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내가 살면서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다고. 삶 자체가 글을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이러한 말들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꾸역꾸역 꼬박꼬박 글을 써나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요즘 피부로 느끼는 건데, 쓰다 보면 정말 쓸 거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쓰고 볼 일이다. 쓰기 시작하면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 오늘 나는 별 것 아닌 것도 글로 옮기면 아름답고 근사하게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평범한 하루가 특별하게 바뀌는 마법을 경험했다. 매일을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비결은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매일매일을 아름답게 예쁘게 가꾸어 나가다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멋지고 근사해질까? 괜한 설레발을 쳐보며 두근두근 나와 우리 모두의 글쓰는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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