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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Dec 17. 2024

육아 앞에 작아지는 나

육아가 막막한 엄마의 돌파구 찾기

나는 노는 것을 잘 못한다. 노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른다. 노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이렇게 놀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열등의식을 지닌 나는 그래서 육아에 있어서도 밥을 먹이는 것, 재우는 것, 씻기는 것, 기저귀 가는 것 등등 그 어떤 것보다도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다른 엄마들처럼 따라해본다. 학교 운동장도 가보고 놀이터도 가보고 키즈카페도 가보고 공원도 가보고 산책도 나가본다. 이렇게 한 번에 나열해 놓으니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것 같아 보이는데, 모두 어쩌다 한 번이다. 나는 집순이 엄마고 주말에 아이를 위해 어디 나가려고 하면 며칠 전부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집 밖을 나서는 게 다소 힘든 그런 엄마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특히나 더 그랬다. 날씨가 추워지고 아이의 콧물과 기침 소리가 심해질까 두려워 더더욱 집콕 모드를 고수했다. 게다가 한창 에너지 넘치는 우리 아이는 아랫집의 거센 층간소음 항의 이후로 집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지도 못하고 살금살금 걸어야 하는 형벌에 처해진 상태이다. 어쩌다 보니 자유롭지 못한 감금 상태에 처하게 된 가엾은 우리 첫째.


둘째 임신 이후로 입덧과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핑계 삼아 첫째 아이에게 신경을 잘 써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부풀어 오른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짜증도 많이 부렸던 것 같다. 빠릿빠릿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집안일은 쌓여 있고 첫째는 말을 안 듣고. 입에 넣은 밥을 갑자기 뱉어버릴 때. 식탁 위 물건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릴 때. 바쁜 등원 준비 시간에 옷을 안 입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기저귀를 갈아야 되는데 자꾸만 도망갈 때. 지쳐서 잠깐 누워 있는데 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내 얼굴을 향해 던져버릴 때. 화장실에 갔는데 울면서 따라와 문을 자꾸 열어젖힐 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금세 찡그린 표정으로 울음을 터뜨릴 때. 하원할 때 유모차를 안 타겠다고 발버둥 칠 때. 정리해 둔 장난감을 어느새 모두 꺼내 난장판을 만들었을 때. 자기 장난감 놔두고 엄마 아빠 물건들을 갖고 놀겠다고 고집 피울 때. 큰 마음먹고 붓과 물감을 꺼내놓고 미술 놀이를 하는데 자꾸만 이불과 옷에 붓을 가져갈 때. 아래층에서 올라올까 봐 조마조마하는 엄마 마음도 모른 채 온 집안을 쿵쾅쿵쾅 거리며 헤집고 다닐 때. 등등등. 이런 흔하고 평범한 육아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왜애! 왜애! 왜 그래애!”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많이도 부렸나 보다. 요 며칠 아침 첫째가 갑자기 “왜애! 왜애! 왜애!” 소리를 지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맞다. 나다. 저게 바로 나였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내가 저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었나? 뜨끔하다. 남편 보기 부끄럽다. 죄인이 된 느낌이다. 요즘 보고 듣는 걸 모두 고스란히 흡수하는 아이 앞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마음이 무겁고 또 무거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막막함도 느낀다. 내 생에 첫 아이, 소중한 이 아이에게, 사랑만 주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짜증과 신경질을 부렸다니. 믿기지 않았다. 나도 내가 미웠다. 육아 앞에서 나는 이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짐을 느낀다.


결혼 전부터 아이 욕심이 많았고 아이를 많이 낳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진 것은 모두 나의 오랜 소망과 염원의 결과였고 너무나도 소중한 축복이다. 그래서 나는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다. 아이에게 사랑만 주고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들만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한가. 엄마로서 자격이 있기나 한 건지 스스로 따지고 묻는 자책의 과정 속으로 빠져들 참이다. 마냥 엄마가 좋아서 엄마와 그저 놀고 싶어서 엄마 곁을 맴도는 아이인데. 엄마의 손길과 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있는 아이인데. 이런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앞에 두고서. 아이와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못난 엄마. 이게 나라니. 이 모습이 바로 요즘의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맵고 쓰게 느껴진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만회할 수 있지? 나에게 앞으로 펼쳐질 육아의 나날들은 길고 긴데. 뭔가 장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자각했다.


한동안 ‘학생’과 ‘임산부’라는 정체성이 두드러진 나의 일상을 유지하느라 잠시 ‘엄마’로서의 책무에 대한 생각을 소홀히 한 것 같다. 돌이켜보면 힘들다는 이유로 그냥 내팽개쳐 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 건강하게 잘 크고 있고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무심하게 넘겨 버렸었다. 그런데 아이의 “왜애! 왜애!”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육아철학과 육아관에 대해서 다시 점검해본다. 나는 어떤 엄마이고 싶었는지,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나와 아이에게 맞는 육아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한 가정의 엄마로서, 나의 아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교육해 나갈 수 있을까?’ 첫째 아이가 두 돌이 다 되어가고 곧 둘째 아이가 태어날 이 시점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느낀다. 지금이 바로 육아철학을 보다 더 단단히 하고 육아관을 뚜렷하게 설정해야 할 시기임을 절감한다. 나에게 맞는 육아방법도 열심히 고민하며 찾아 나서야겠지.


먼저 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나는 다른 엄마들을 좀처럼 따라갈 수 없다. 나는 나의 장점과 강점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다른 엄마들처럼 활동적으로 다채롭게 놀아줄 자신이 없다. 대신 나는 책을 좋아한다. 다행히 첫째도 책 읽기에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책 육아’에 좀 더 집중해 보자. 그동안 책 읽어주기에도 소홀했었다. 계속 같은 책들을 반복해서 읽어주다 보니 아이도 나도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던 탓이다. 나의 오랜 휴직과 남편의 동반 휴직으로 다소 빠듯해진 살림이지만 큰 마음먹고 거금을 들여 전집 몇 종류와 ‘세이펜’이라는 학습도구를 부랴부랴 사들이기로 사들이기로 결정한다. 요즘 말도 조금씩 시작하고 있고 책 읽기에도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있으니 이런 나의 결정은 승리의 해피엔딩 결말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최근 들었던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당분간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아이와 나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하길 기대하면서 구매하기 버튼을 꾸-욱 힘차게 누른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결코 그 모든 것을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육아에 있어서 좀 더 넓고 긴 안목을 가지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더 많이 존중하고 더 깊이 사랑해야 한다. 아이를 소중히 보살펴야 하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언제 어디에서나 어떤 이유와 조건에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육아는 어렵다고 힘들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기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수록 나만의 돌파구를 찾아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나는 아직 초보 엄마이고 육아가 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며 앞으로 서서히 알아갈 것이 아주 많다. 어쩌면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지금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육아라는 그라운드를 벗어나지 않고 힘들어도 결코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매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매일 매 순간 고민하며 성장해 나가는 그런 용감하고 씩씩한 선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엄마가 되었고, 엄마가 될 것이며, ‘영원한 엄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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