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 싫어하는 모녀
더운 건 정말 못 참겠어!
더워!! 더워!! 덥다고!!
올여름은 정말 더웠다.
그래 인정한다고. 정말 더웠으니까~
그럼에도 매일 에어컨은 아니지 않아. 밤새도록 에어컨은 아니지 않냐고.
저 에어컨은 무슨 죄를 지어 두 달 하고도 반동안 쉴 틈도 없이 열일을 하여 무리한 노동으로 인해 서비스센터 병원으로 도망가게 하고 싶냐고~
불현듯 유튜브에서 본 법정스님이 하신 말이 생각났다.
너무 더운 곳에 가 있다 한국에 와보니 35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너무 추운 곳에 있다 보니 영하 십몇 도도 추운 게 아니더라.
이열치열이 왜 있겠냐고 덥다 하지만 조금 더 버티다 보면 이 더위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아니, 조금 참을 수 있게 된다는 스님의 말씀이 와닿았지만 어디 한창 20대 따님께 그 참을 忍(인) 자가 택도 없지!
"딸아. 자꾸 덥다 하면 더운 거야. 매일 에어컨 쐬다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조금만 더워도 바깥생활이 어렵다고 느낄 거야. 씻고 창문 열고 선풍기 쐬면 점점 시원하다고 느껴진다고."
"아니 씻으면 더 더워져서 더 안돼!"
"뜨거운 물로 씻으니까 그렇지!"
"차가운 걸 어떡해?"
"그럼 조금 미지근하게 씻고 선풍기 쐬면 좀 나을 거야."
"그건 엄마생각이고. 난 그렇게 해서 시원해지지 않는다고."
"더운데 운동은 왜 하니? 땀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냐? 집에서 에어컨은 왜 틀고 운동하는데?"
"헬스장 가면 에어컨은 그럼 왜 켜져 있는데?"
"이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럼 이 전기세는 누가 다 감당하는데? 좀 아껴야 되는 거 아니니?"
"엄마도 더울 땐 시원하다고 하잖아!"
"적어도 3명은 모였을 때 켜면 좋지 않아? 혼자서 방문도 다 열어놓고 창문도 확인 안 하고 이렇게 하루종일 켜놓는 건 아니지!"
"문은 닫으려고 했다고. 그리고 더워서 못 참겠는데 그럼 어떡하라고!"
도돌이표도 이런 도돌이표가 없다
더워죽겠다는 따님과 참을 수 있을 거란 엄마.
이 둘을 지켜보며 고개를 젓는 작은따님!
나는 전기세가 아까운 걸까?
아니면 딸이 조금도 못 참고 열을 내는 게
화가 나는 걸까!
사실 둘 다 일게다.
마구 밤새 돌아가는 에어컨도 안타깝지만
조금씩 쌓이는 누진세도 아까운 것이었다.
딸이 좀 참아보려 하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도 답답하고 이것도 못 참으면 앞으로 다가올 고된 사회생활은 어떻게 버틸지도 고민이었다.
가뜩이나 더운 날에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고 있으니 나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모양새였다.
그때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젓는 작은 딸이 조용히 거들었다
"굳이 지금 안 참아도 되는데 나중에 상황이 되면 참겠지~ 집에서 조차 참지 못하게 해야 되겠어? 이렇게 언쟁까지 하며?"
조용히 거든 말은 결국 나도 언니 편이다 이거지!
"두 달 동안 편하게 잠도 자고, 쾌적하고 그래서 이 정도 비용이면 더워서 짜증 내고 시원한데 찾아서 마트나 백화점으로 나갔다가 더 쓰고 오는 비용보다 훨씬 훌륭하지 않나? 좋게 생각하자고~
딸들이 집에서 편하게 지냈잖아! 안 그래?"
기어이 남편마저도 참견을 한다.
지금 나 3대 1인거지?
남편님아! 이 더위에 눈치 안 챙기고 마누라 염장 지르면 뒷 일을 어떻게 감당하시려 그러우!
눈치 안 챙겨?
어쨌든 그날의 결투는 지기 싫은 모녀가 아니라 지고 마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