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환 Jun 25. 2024

성난 사람들

BEEF의 에디터들

감독과 주연의 자리에 각각 한국계 미국인이 자리해서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 <성난 사람들(BEEF)>입니다. 이 작품엔 대부분의 미국 드라마가 그러하듯 여러 명의 에디터가 참여했습니다. 해리 윤로라 젬펠조단 김, 그리고 냇 풀러가 그들의 이름입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의 시즌 2는 올해에 나올 것 같은데, 이를 기다리며 아래에 그들의 인터뷰 일부를 싣습니다.  


OTT나 TV를 통한 드라마들은 원래 파일럿을 방송하고, 그 후 수 주 후에 다른 에피소드를 방송하는 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게 많이 바뀌었습니다. 네 분 역시 이 작품에서 언제나 여러 에피소드를 동시에 작업했죠. 이렇게 하면 각 에피소드의 앞 에피소드와 뒤 에피소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이러한 환경이 당신이 각 에피소드를 다루는 방식을 바꿨나요?


KIM: 지금 내가 편집하는 부분이 전체 작품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다른 에피소드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편집 내내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건 무척 도움이 되었어요. “이 일이 다른 에피소드에서 또 언급되나?” 하는 식으로 서로 확인할 수 있었죠. 이 에피소드에서 슬쩍 흘려졌던 일이 다른 에피소드에서 빠져서 고쳐야 하거나, 혹은 첫 에피소드부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조금씩 쌓여가는 작은 것들을 늘 머리에 담아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편집 기간 내내 고치고 고치면서 완성해 나갔습니다.

자동차 추격신과 같은 두어 개의 중요 신은 전체 촬영 거의 막바지에서야 촬영되었어요. 파일럿을 그때까지 아주 여러 번 봤지만 그 중요 신들이 막바지에 이르러 편집 되어서 에피소드에 포함 되었을 때 비로소 작품 전체의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졌습니다. 막바지에서야 편집되었던 그 시퀀스에 포함된 몇몇 작은 것들이 내가 담당한 다섯 번째와 여덟 번째 에피소드와 연관이 되었거든요.


YOON: 시리즈 전체에 걸쳐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냐에 따라 다뤄야 할 감정의 퍼즐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대니와 에이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모든 주변 인물들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개별 신들을 편집하기 위해선 다른 에피소드가 어떤 모습을 갖춰 나가는지 보는게 도움이 됩니다. 다른 에피소드를 보면 전체 시리즈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단순히 시나리오 상에서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 측면에서도 파악할 수 있거든요. 편집을 마무리하는 건 마지막 순간까지 어려웠습니다.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작은 뉘앙스들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뒤에 따라오는 에피소드에서 어떤 식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는지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FULLER: 처음엔 그냥 큰 한 조각이었던 것들이 끝에 가선 다 모아져서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완성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게 크로스보딩(*여러 에피소드를 동시에 찍는 방식. 한국 드라마는 오직 이런 방식으로 찍지만, 미국 드라마는 이런 크로스보딩 방식으로 찍거나, 혹은 에피소드 순서대로 찍는다)의 재미있는 점입니다. 초반에 받는 신 중의 하나는 7부에 나오는 신 중 하나였습니다. 데일리스를 본 후, 이걸 어떤 식으로 편집할지 어느 정도 마음 속으로 정한 후 일단 뒤로 미뤘습니다. 이 신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 전 에피소드에서 어떤 일을 겪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확인 한 후에 돌아와서 편집을 할 작정이었죠. 이것저것 조금씩 파편적으로 작업을 한 후 모든 게 다 촬영되어 오면 마침내 “아, 이게 이렇게 되니 먼저 나오는 이 부분의 연기를 살짝 바꿔야겠군" 혹은 “이 신은 없애도 괜찮겠네"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한번은 로라(로라 젬펠)가 제 에피소드 중 하나를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대사 중 자기가 편집한 나중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영향을 주는 대사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프로듀서에게 가서 말했죠. “조지가 이런 대사를 이 에피소드에서 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나오는 내 에피소드에선 그 대사가 말이 안되요.” 그렇게 우린 서로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전체 시즌에 걸쳐 잘못된 점은 없는지, 놓치는 점은 없는지 서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물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리액션을 어떤 식을 사용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주겠어요?


FULLER: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신 중 하나가 9부에 있습니다. 대니가 폴에게 자기가 폴의 대학 원서를 버렸다고 고백하는 신이죠.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폴이 대니에게 마치 “나랑 가자. 내가 널 구해줄께"라고 말하듯이 손을 뻗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대니는 폴에게 가라고 하죠.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이런 끔찍한 일을 해서 너와 네 인생을 망쳤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때 폴이 팔을 내립니다. 바로 이거예요. 말은 안하지만 “그래, 갈께"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말을 하지 않고 표현되는데 여기에 큰 힘이 있습니다.


ZEMPEL: 저도 폴이 나오는 신 중 하나가 생각납니다. 폴은 에이미아 대니 사이의 다리 같은 존재입니다. 에이미와 폴이 라스 베가스의 호텔에서 대화하는 장면이에요. 이때 에이미는 조지에게 버림 받고 불안한 상태입니다. 폴이 대니는 우울함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를 제외한 주변 모두를 탓한다고요. 에이미에게 대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이때 관객은 에이미가 이 말을 듣고 있는 걸 봅니다. 폴이 하는 말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거죠. 바로 이 순간 에이미는 대니에겐 뭔가 다른 면이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어쩌면 자기와 같다는 걸 알게 되는거죠. 폴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이미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찹니다. 여기서 관객은 폴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다는 그 이야기를 듣는 에이미의 모습을 봄으로써 훨씬 더 중요한 걸 이해하게 되는 거죠.


여러 이야기를 엮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세요. 편집실에서 시나리오에 쓰인 스토리라인을 바꿔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나요?


YOON: 첫 번째 에피소드의 원래 구조는 대니의 이야기와 에이미의 이야기가 훨씬 따로 분리된 형태였습니다. 맨 나중에 가서야 서로 만나게 되었죠. 그대로도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둘의 이야기가 서로 어떻게 엮이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동일한지 강조하기 위해서 편집 과정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고, 지금의 모습처럼 둘 사이를 훨씬 오가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둘 사이를 오가는 구조로 작업하면서 즐거웠던 점 중 하나는 대니의 이야기와 에이미의 이야기 사이에서 평행한 부분들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라가 정말 멋지게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비주얼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이를 강조해 주는 아름다운 매치 컷을 찾아낸 일입니다. 로라는 그런 멋진 작은 순간들을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잘해냈어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두 인물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바라봐야 해요. 각 인물의 인생이 어떤지, 무엇에 집착하는지, 흠은 뭔지, 이런 것들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편집실에서 우리 에디터들과 쇼러너, 감독들이 함께 일하면서 이 점을 확실해졌습니다.


관객이 인물에 공감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떤 도덕적 판단을 옆으로 미뤄둬야 했나요?


KIM: 어떤 인물이 나쁜 일을 하더라도 관객이 인물과 좀 더 동일시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화를 나눴습니다. 8부에서 플래시 백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서 인물들의 흠이 어떤 연유로 생긴 건지 알게 됩니다. 이런 점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줬어요. 폴이 집을 떠나 대학에 지원한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고나서 결국 대니가 폴의 대학 지원서를 버리는 걸 보게 되죠. 대니와 폴 모두에게 무척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이 신은 9부에 나오는, 위에서 우리가 언급했던 그 신으로 이어집니다. 

인물들이 문제가 있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데 중요한 건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그들이 마음 속에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자기도 어쩔 수 없지 자꾸만 자신의 결점을 마주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들은 그저 나쁜 일을 즐기는게 아닙니다.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깨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갇혀 있는 셈이죠.


FULLER: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이 인물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성공하길 바라는데, 그들은 그들이 하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그러질 못하는 겁니다. 마치 자식과 부모 사이 같아요. 아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걸 보면서 부모가 “왜 그러는거야?”하고 이해 못하죠. 그러면서 동시에 “그래도 널 사랑한다. 이 실수에서 너도 뭔가 배우길 바라"라고 합니다. 제가 인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무척 중요했던 건 바로 그런 진짜 실망스러운 순간들을 찾는 것, 그리고 인물들이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을 때 그들의 리액션을 잡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인물들이 자신이 원하는 해답을 거의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아주 조금 부족합니다. 그럼 해답을 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전 언제나 인물들의 이러한 순간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응원하려고 해요.  


YOON: 우리의 목표는 명확함이에요. 그렇죠? 각 신 에서, 각 에피소드 내에서, 그리고 시리즈 전체에 걸쳐서 관객이 인물이 내리는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하는지, 왜 상황이 정당하거나 혹은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부분을 우린 관객이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이를 위해선 그들의 행동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면 안됩니다. 우린 인물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서 “아, 외로워서 그런 거였군. 이걸 설명해야 해" 라던지 “이런 아픔 때문에 그런 거였구나. 그걸 관객에게 설명해야 해"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결국 인물들과 공감해야 하는 거죠.

이런 게 그 인물들을 살아보는 즐거움입니다. 이 인물들은 나라면 주저할 만한 정도를 넘어 더 나아가요.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 왜 그게 그들에겐 정당한지 이해하는게 진짜 즐거움이에요. 난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