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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28. 2021

코로나 시대의 편집실(2)

코로나 시대의 편집실


2020년 3월.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코로나 감염에 의한 피해가 심상치 않아지자 캘리포니아 주지사 가빈 뉴섬(Gavin Newsom)은 주 전역에 Stay at Home 명령을 내린다. 촬영은 중단되었고, 제작이 예정되어 있던 작품들은 기약 없이 제작이 연기되기 시작했다. 편집실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제대로 준비를 할 겨를 없이 갑작스럽게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필자 역시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 다시 편집실로 돌아가 짐을 정리해야 했다. 편집 분야에서 재택근무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은 늘 있었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금보다 더 일반화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코로나는 이러한 변화를 급속히 가속화시켰다. 픽쳐 락(Picture Lock)이 이뤄지고 나머지 후반 작업 진행을 기다리던 작품, 아직 편집이 진행 중인 작품 등 작품마다 당시 처했던 상황은 다르지만 저마다의 상황에 맞추어 강요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몇 달 간의 긴 터널을 지나 10월 즈음에 들어서자 드라마 촬영이 본격 재개되기 시작했다. 어렵게 재개된 촬영장의 모습은 코로나 전과 많이 달랐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매일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배우들은 액션이 울리기 전까지 마스크를 쓰고, 컷이 울리자마자 재빠르게 다시 마스크를 썼다. 카메라는 일정 거리 이상 배우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변화된 촬영장의 모습에 못지않게 편집실의 모습도 바뀌었다. 스튜디오가 마련해 주는 편집실에서 함께 일을 하던 모습에서 각자의 집에 흩어져 일하는 재택근무로 모습이 변화했다. 


준비 없이 갑작스레 등 떠밀리듯 시작해야 했던 3월과 달리 모든 작품들은 시작부터 재택근무를 위한 준비에 공을 들였다. 촬영이 재개되기 수개월 전부터 스튜디오와 각 길드 사이엔 촬영 재개에 대비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제작 환경이 바뀔 것이 자명하니 그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 토론에서 촬영장은 물론 사무실 등 실내에서 요구되는 각종 안전 지침들이 다뤄졌다. 수개월 동안 계속된 토론은 9월 말에 이르러 합의에 이른다. 이 합의서에는 많은 부분들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일하며 피부로 느낀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된 쟁점은 정작 이 합의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각종 비용 문제이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은 내 집의 공간, 인터넷, 전기 등을 업무를 위해 쓴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에 따른 비용을 스튜디오가 부담해줘야 한다는 게 동료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합의서엔 이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계약이 시작되자 동료들은 스튜디오가 제안한 각종 액수를 이야기하며 토론하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스튜디오가 제시한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동안 물리적 편집실과 시스템을 렌트하며 들인 비용만큼 투자하지 않고, 그에 따른 불편함을 온전히 편집팀에게 떠민다고 주장했다. 스튜디오와 편집자 조합(Motion Picture Editors Guild)은 대화를 통해 이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할리우드 미드 편집팀의 재택근무를 위한 원격 편집 환경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통한 편집 시스템 서버 원격 접속

기존의 이메일과 더불어 Teams나 Zoom 등을 이용한 화상회의 및 일상 의사소통

Evercast와 같은 시스템을 통한 연출자/작가/그 외 스태프와의 화상 편집 및 사운드 스포팅(sound spotting) 세션

재택근무가 시작되며 가장 궁금하면서 한편으로 걱정되었던 것은 집에서 그 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미국 일반 가정의 인터넷 속도 수준이란 게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아니 아예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니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실제 일이 시작되면서 내 집의 인터넷 속도는 일반적인 수준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실제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은 내 집이 아닌 중앙 서버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실제 작업이 이뤄지는 시스템은 서버를 전문적으로 렌털 해주는 업체의 서버실에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스튜디오 사무실에 있을 수도 있다. 그곳의 네트워크 시스템은 기존의 편집실에서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다. 편집자는 집에서 일반 컴퓨터에 인스톨된 전문 원격 접속 프로그램이나 원격 접속 전문 박스를 통해 이 시스템에 접속한다. 이렇게, 마치 컴퓨터 본체는 사무실에 있고, 모니터는 내 집 안에 있는 형태로 일 할 수 있게 된다. 



혼자서 하는 편집이야 문제가 없지만, 감독이나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해야 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재택근무를 위해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이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가장 많이 간택을 받은 것은 아마 실시간 비디오 스트리밍을 통한 비디오 콘퍼런스 솔루션인 에버캐스트(Evercast)일 것이다. 에디터가 자신의 편집 화면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하며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Teams를 통해 자신의 모니터를 공유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에버캐스트는 좀 더 나은 화질과 데이터 처리 속도 덕에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작품들이 더 선호하는 선택지이다.


화상 회의는 아마도 코로나가 모든 분야에 걸쳐 일반적인 모습으로 정착시킨 변화 중 하나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작품 <로즈웰, 뉴 멕시코 Roswell, New Mexico>의 경우 매주 월요일 전 팀원이 화상 회의를 했다. 한 공간에서 일할 땐 이런 형태의 정기적인 회의가 없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복도를 잠깐 지나 문을 두드리면 풀렸다. 휴게실에 드나들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러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진 환경에서 정기적인 화상 회의는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의 체크는 물론, 한 팀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장치 역할을 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내가 어디에 살 것인가를 정할 때 훨씬 많은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이나 그 외 지역에서 편집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국 드라마 편집실은 L.A. 에 위치한다. L.A. 는 관광객들에겐 매력적이고 즐거운 도시이겠지만, 실제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좀 더 외곽으로 벗어나 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자녀가 있는 가족일수록 더한데, 이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 일 수도 있고, 좀 더 쾌적하고 깨끗한 생활환경을 위해서 일 수도, 혹은 좀 더 나은 집 값 때문일 수도 있다. 필자 역시 L.A. 를 벗어나 살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교육 문제(L.A. 의 공교육은 그야말로 처참하다), 그리고 좀 더 쾌적한 생활환경을 원했다. 그러나, 긴 업무 시간과 교통 체증을 감안할 때 L.A. 를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매일 편도 두 시간, 하루 네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운전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주변에도 이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은 직업을 바꾸기조차 했다.


코로나로 인해 가속화된 재택근무 환경은 이제 이러한 고민을 많이 덜어 줄 수 있다. <로즈웰, 뉴 멕시코> 편집팀의 경우, 세 명으로 구성된 인하우스 VFX 아티스트(Inhouse VFX Artist) 중 두 명은 텍사스 주에, 한 명은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했다. 또한, 지난여름에 참여했던 애플 TV를 통해 방영될 새 스누피 시리즈의 경우엔 캐나다에서 일하는 아티스트가 다수였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의 물리적인 위치가 문제 되지 않았다.


이는 팀을 꾸리는 쇼러너의 입장에서 보자면 팀 구성에 유연성이 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쇼러너는 물리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곳에 편집실을 꾸리고 싶어 한다. 쇼러너의 집이 L.A. 라면 그곳에, 뉴욕이라면 뉴욕에, L.A. 외곽이라면 그 외곽 지역에 꾸리고 싶어 하는 게 쇼러너의 일반적인 바람이다. 쇼러너가 L.A. 에 산다면 편집팀 역시 대부분 결국 L.A. 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꾸려지게 된다. 이는 물리적 접근성의 문제와 노동조합 관련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재택근무를 통한 100% 원격 편집이 가능해지면서 물리적 위치 때문에 제한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길드와 관련한 복잡한 문제에 대한 선결이 따라야하겠지만, 이론적으로는 쇼러너는 뉴욕에 거주하고, 에디터 한 명은 L.A. 에, 두 명은 밴쿠버에, 그리고 어시스턴트 에디터들은 각각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휴스턴에 사는 게 가능해졌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모두가 각각 다른 나라에 거주하며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변화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에디터로 편집팀을 꾸리려는 쇼러너들의 사고는 아직 변화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례로 동료 에디터 중 한 명은 새롭게 시작하는 작품과 인터뷰를 가졌지만, 최종적으로 쇼러너가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에 거주하는 에디터들과 일하고 싶다는 이유로 작품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는 자신이 물리적으로 편집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일 텐데, 재택근무가 일반적으로 자리하기 시작하는 지금의 변화에 뒤쳐지는 사고다. 이는 결국 인재 풀을 좁게 한정해 버리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낮춰 버리는 셈이다. 부디 이것이 내가 아는 일부의 케이스에 그치는 것이고, 사실 더 많은 쇼러너들이 변화 한 환경에 맞춰 그들의 팀을 꾸리고 있길 바란다.


원격 편집 환경은 팀 구성의 유연함이라는 좋은 가능성을 제시한 반면, 진입 장벽을 높이는 역효과 역시 가져왔다. 자신이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초보 어시스턴트 에디터라고 가정하자. 일을 하다 잘 모르는 부분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예전이라면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어시턴트 에디터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쉽게 물어볼 수 있었다. 필요하면 그 어시스턴트 에디터가 직접 어떻게 하는지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질문이 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게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관리하는 입장에서 역시 이런 상황은 결코 달갑지 않다. 결국 충분한 경력을 갖춘 사람을 찾는 현상이 강해지고, 이 분야로 새로 들어오고자 하는 지망자들의 진입 장벽은 높아진다. 실제 주변 지인들로부터 듣는 구인 소식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 했다. 모두가 썩은 물을 마시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는


앞으로 미국 TV 드라마는 모두 재택근무를 통한 100% 원격 편집 환경에서 이루어질까? 일단, 코로나가 제대로 정복되기 전까지는 재택근무가 대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가을부터 사실상 모든 작품이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이제는 모두가 이 시스템에 익숙해졌다. 처음에 볼 수 있었던 삐걱거리는 부분들도 시행착오를 거쳐 고쳐지고 제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예전처럼 편집실로 출근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스튜디오 역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을 터이다.


문제는 코로나의 통제가 실현되었을 때이다. 일부는 재택근무에 익숙해져 계속 이를 이어가고 싶어 할 테고, 또 일부는 예전처럼 편집실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할리우드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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