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 시간이 더 있으면 시험 더 잘 볼 수 있을 텐데.”
학교 다닐 때 이런 생각 한 번쯤 해 본 사람 많을 것이다. 이틀 만, 하루 만, 아니 딱 한 시간만 시간이 더 주어지면 아직 외우지 못한 부분까지 잘 외우고 시험 볼 수 있을 텐데. 시험지를 받는 순간, 십 분만 더 있으면 좋겠다. 책 몇 쪽만 더 읽어보고 시험 보면 점수가 더 잘 나올 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그 순간 선생님이 기적적으로 “자, 시간 십 분 더 줄 테니 얼른 책 한 번씩 더 훑어봐라"라고 했다면 내 성적은 훨씬 좋아졌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난 언제 시험을 보니 언제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그런 시간적인 제약을 오히려 감사하는 쪽의 학생이었다. 그래, 뭐가 됐던 그때까지만 공부하면 되고, 시험은 어쨌든 끝날 거고, 그러고 나면 뭐가 됐든 결과가 나올 테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일, 그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시험을 보게 하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더 커지고, 성적은 더 좋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정도면 됐을까? 아냐, 아냐. 하루 더 공부하고 시험 보자. 자, 이제 됐겠지? 정말? 정말 내가 준비가 되었을까? 이대로 시험 봐도 될까? 이랬을 게 뻔하다. 행여, 성적이 좋았다 하더라도 정신 건강엔 좋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
중학생 때였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아이가 감독이 되어 돌아온 고향. 어릴 적 아버지와 같던 존재의 죽음. 그가 남긴 당시엔 검열 때문에 모두 잘라내야 했던 필름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이제 흰머리가 보이는 어른이 된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울리는 영화인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을 처음 만난 게 아마도 그때쯤이었다. 토토와 엘레나의 애절한 사랑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음악은 너무나도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테이프를 사서 음악을 듣고 듣고 또 듣고… 수도 없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에서 생생히 연주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무한궤도의 앨범 중 ‘여름이야기'라는 곡과 함께 첫사랑 생각에 허덕이던 사춘기 시절이었다.
테이프가 늘어지다 못해 CD에게 자리를 빼앗긴 지도 한참 지난 대학생 때였던가? 감독이 처음 개봉 당시 삭제 되었던 일부를 복구한 감독판이 개봉했다. 토토와 엘레나의 사랑 이야기를 다른 모습으로 바꿔버린 감독판은 감독이 아름다웠던 자신의 영화를 스스로 망쳐 놓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끼겠다. 궁금한 독자는 직접 찾아보시길, 아니 보지 않길 권한다. 실망할 확률, 가슴속에 아련하고 아름답게 남아있는 그 감정 다칠 확률 100이다. 아무튼, 난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감독판이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영화와 TV 드라마는 산업의 프레임 안에서 작동한다. 좋든 싫든 그렇다. 다른 문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가 문학이나 미술, 혹은 음악 등의 다른 분야와 비교해 월등히 크기 때문에 그러한 특징이 더 크게 느껴진다. 차이는 비단 돈뿐만 아니다. 작품 하나에 들어가는 인력의 수 또한 차이가 크다. 한 편의 상업 영화엔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이 참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편을 위해서 돈과 사람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야기 자체의 문제가 아닌 외부적인 제약이 많이 작용한다. 언제까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간의 데드라인, 혹은 무시할 수 없는 돈을 주는 투자자의 의견 등이 이에 속한다. 관객인 우리가 극장이나 TV 화면으로 만나는 영화와 드라마는 이런 수많은 제약들의 조율을 거치고 태어났다.
“편집이란 게 계속할수록 좋아지는 건데 말이야. 왜 이렇게 자꾸 언제까지 끝내라고 그러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어.”
정해진 편집 픽쳐 락 Picture Lock까지 일주일 정도 남은 어느 날. 제작자는 감독에게 작품의 납품 일정 때문에 날짜를 꼭 지켜 줄 것을 다시 한번 당부했다. 편집이 끝난 후 이어질 VFX 작업, 음악 작업, 믹싱 작업 등을 고려하면 편집을 그날까지 끝마쳐야 했다. 연락을 받은 감독은 내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편집이란 건 오래 할수록 좋아지는데, 왜 주변에서는 다들 언제까지 끝내라고만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볼 멘 소리를 계속했다. 좋은 작품을 만들 생각이 있다면 오히려 그들이 나서서 시간을 더 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좋은 작품(여기서 '좋은'은 작품성과 흥행성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잡는 걸 의미한다)을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 제작자는 감독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에디터와 함께 매만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말 오래 붙잡고 하면 할수록 작품은 좋아질까? 시간이 질을 담보할 수 있을까?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동료들과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을 나누곤 했다. 핵심은 일을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가이다. 내게 하루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시험을 더 잘 봤을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매거진B에서 발행한 책 중 건축가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 있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무슨 일이든 제약이 따라야 고유의 매력을 갖게 된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긍정적 태도로 제약을 대해야 하죠. 저 역시 지금까지 일하면서 그런 제약을 통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나저나, 무한궤도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밴드다. 대학가요제에서 충격적인 무대로 대상을 수상하고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기고 해체한 밴드. 그 한 장의 앨범은 단 한 곡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주옥같은 곡들로 가득하다. 최고의 밴드. 내겐 그렇다. 아, 해철 형님… 이 글의 마지막은 유튜브에서 무한궤도 앨범을 들으며 끝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