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부부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한국사회는 전통적(?)으로 가부장 중심의 위계질서와 권위의식이 남다른 문화를 이어왔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명절에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 상을 차리거나 남자 어르신부터 식사를 하시고 여자들은 한쪽에서 후식을 만들며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집도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우리 집의 풍경이었다.) 그러한 집안에서는 남자들은 바깥일을 하고, 여자들은 집안일을 도맡는다는 성을 기준으로 정확한 역할이 구분되어있다. 따라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 역시 여자들의 몫이었다. 또 이런 환경에서는 기존 질서에 정확하게 순응하여 집안일을 도맡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힘쓰는 여자들에 대해 남자들은 '여성스럽다'라고 표현하며, 여자의 성 역할을 정의하고 공고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늘어놓자면, 30년을 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33세, 32세의 두 딸의 엄마이자, 이제 막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17살의 늦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의 어머니는 여전히 육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기서 육아를 젖먹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 아닌 자식을 돌본다는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어찌 됐든, 그녀에게 이제 막 인생의 30대를 맞이한 두 딸은 각자의 일을 하고 있어 이제 어느 정도 한 시름 놓은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할 아들은 상황이 다르다. 그녀는 사춘기라는 예민한 시기를 겪고 있는 아들에 대해 늘 고민한다. 그 이유는 그녀에게도 아들의 사춘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어머니가 세명의 자식과 어떤 사춘기를 보내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결혼과 동시에 그녀는 그녀와 많은 부분이 달랐던 남편과 남편의 부모와 함께 살아야 했고 출산을 통해 새로운 인격체와 함께 지내게 된것이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녀가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녀에게 첫 딸의 사춘기 또한 태어나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딸이기에 엄마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첫째 딸의 사춘기는 그렇게 유별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둘째 딸, 바로 나의 사춘기는 지금 내가 생각해도 대단했다. 사춘기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느끼는 것처럼 굴었다. 가족도 필요 없고, 내 존재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내 친구들 뿐이라고. 점심시간에 오락실에 가서 그 시절 유행하던 '펌프'를 한바탕 하고 들어오면, 5교시 수업은 못 듣기 일쑤였다. 당연히 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에 대한 잔소리는 당연했다. 하지만 시험은 평소에 공부를 해야 성적이 나오는 거라는 당연한 말을 가지고 '나는 평소에 공부를 안 했으니, 낮은 성적이 당연한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맞선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나의 어머니는 나의 학교생활을 아버지에게 최대한 숨기려고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판단에 나는 지독한 사춘기를 아주 유별나게 보내는 것이었고,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알면 나의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혼낼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어머니가 숨기고 숨겼던 나의 1년간 성적들(1학기 중간, 기말, 2학기 중간, 기말 성적표)을 종합해서 보내주는 성적표를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고 그 날 아버지는 맨손으로 나를 가격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한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아주 가끔씩 '사랑의 매'라고 불리던 매질이 있긴 했지만, 맨손으로 맞는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이런 충격은 어머니에게도 고스란히 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날이후 나와 1대 1의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조금 나이가 들어서야 어머니가 아버지와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던 이유를 이해했다. 나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아이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없는 존재라고 판단을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어머니는 딸들의 문제이니 본인 스스로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으리라.
하지만 막내아들은 달랐다. 비교적 예의 바르고 순한 아들이긴 하지만, 남자아이의 사춘기는 그녀에게 또 새로운 경험인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같은 남자로서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나 인생 경험들을 나누어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딸들에겐 어려웠어도 아들에겐 다르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에겐 '육아'라는 개념은 전무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에 대해서 못 마땅한 점이 생기면, 어머니에게 '당신이 애들을 잘못 키워서 그래!'라는 말을 종종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들었던 이 말에 질문을 했던 건 고등학생 때쯤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주 감사하게도 아버지의 등골 브레이커로 (자처한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다. 방학마다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했던 나에게 아버지는 '별다른 큰 일이 없으면 한국에 들어와서 놀 생각은 하지 말라'든지 '거기서 성공할 생각을 해야지'라든지 '내가 열심히 벌어서 돈 보내주는 데 그걸로 감사한 줄 알고 살라'든지 했다.
그런 반대에도 가족(정확히 말하면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이 보고 싶어 한국에 들어오면, 아버지에게 나는 그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실패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식사시간에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 나에게 '복 달아난다. 조용히 먹어라'라든지, 한 여름이라 날이 더워 집에서 민소매를 입고 있으면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다'라든지 나의 모든 행동을 지적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어머니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신이 저걸 저렇게 내버려둬서 그렇지. 생각해보니 은정이에게 뭐라고 할 것이 아니네. 당신이 잘못이야'라고 말했다.
싫은 소리를 이미 할 대로 하신 상황이기도 해서 나중에서야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전혀 내 기분을 나아지게 만들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듣기 싫은 소리 한 것이 마음에 걸리셔서 저런 단서를 다셨겠다 싶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에 대한 모든 책임을 왜 어머니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대학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왔을 땐 난 이미 20대에 중반에 들어섰고, 아버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심리학과를 졸업했으며,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못난 딸이었다. 아버지는 '심리학은 게으른 사람이 하는 공부다'며 나를 비난하기 일쑤였고, 그 비난은 고스란히 나를 제대로 '키우지'못한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도대체 나의 아버지에게 자식들을 '키운다'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나의 아버지는 부모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았다고 하기 어렵긴 했다. 알코올 의존증세가 심각했던 할아버지에게 늘 손찌검을 당하시던 할머니. 그래서 그런지 슬하에 아들 둘, 딸 셋은 거의 방임되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잦은 폭력과 술주정으로 빚어지는 다양한 사고의 뒷수습을 감당해야 했으니 할머니 또한 아이들을 자신의 마음만큼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나의 아버지는 중학교 시절 은사님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결국에는 의료인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 이런저런 맥락을 알게 되면 사실 나의 아버지에게 '부모'라는 존재가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부모'라는 존재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기에 그 존재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인의 경험이 그러하니 자식에 관해서는 경제적으로만 지원하면 '아버지'의 의무를 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해 볼 법하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지금 시대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부모가 얼마만큼 지원해주는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그런 기가 막히게 치열한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경제적 여건들만 보자면, 자식들을 낳아 키우는 부모들에게 필요한 교육비나 양육비를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지 외벌이 부부보다는 맞벌이 부부가 당연하게 되었으며, 맞벌이를 해도 경제적 형편이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성의 노동이 얼마나 터부시 되고, 여성이 가정의 경제적 조건을 함께 꾸려가는 주체인데도 가사노동이 여전히 여성에게 집중되어있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하지만, 앞서 나의 사춘기 시절 이야기와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태도에 대해서 잠깐 서술한 이유는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회적 여건 혹은 부부 사이에서 재정의 되어야 할 부모의 역할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키우는 데 양육비는 필수적이다. 양육비가 충분해 자식들을 키워 줄 누군가를 고용하고 부모를 대리하는 어떠한 주체가 전적으로 자식들을 지원해준다고 하면 양육의 문제는 더 이상 부부가 나누어야 할 부모의 역할이 아닌 것일까?
나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남자들이 혹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양육비만 충분하면 양육이 문제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끊임없이 쌓아가고 경제적인 여건만 만들어내면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또한 학원 보낼 돈, 풍족하게 입히고 먹일 돈 만 있으면 양육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가 부재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에 기인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혼한 부부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가 생김과 동시에, 흔히 말하는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부분은 둘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본인들도 처음 겪어볼 새로운 인격을 가진 또 다른 구성원으로서 자식을 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러한 구성원과 함께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오로지 여자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희들 때도 그렇긴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해.
나도 나이 들어서 늦둥이 키우는 거 힘들기도 하고, 남자아이라 더 조심스러워.
가끔은 아들에게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함께 만들었으니, 같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니?
라면서 한숨을 쉬시던 어머니의 말이 생각난다.
여자라고 해서 육아의 전문가가 아니다. 제발 육아가 여성의 몫인데, (일부 의식 있는) 남성이 나누어 함께 짊어져주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육아는 부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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