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딴지 Nov 02. 2017

[클로징]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by 심딴지

라디오심시티15회 - ‘성평등, 롸잇나우.’ 1부

‘명예남성’을 이야기 했던 심딴지가 클로징을 맡았습니다.




“친구요? 흠..친구가 많은 편은 아닌데, 주로 여자 친구보다 남자친구들이 더 많은 편이에요. 사실 친구들이라기보다는 주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들이 더 많은 편이라고 해야 하나..제가 기가 세 보여서 그런지 동갑내기 남자애들은 절 불편해하더라고요.. 아~ 오빠들이라고 해봤자, 저를 생물학적 여성으로 생각할 뿐이지 ‘여자’로 보는 건 아니라 불편할 건 없어요. 뭐 주변에 오빠들이 많아서 좋은 거라곤.. 딱 한 가지? 먹을 땐 저를 빼놓지 않고 꼭 데려간다는 거?(웃음) 아, 제가 보통 남자들보다도 많이 먹는 편이라 저를 데려가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웃음) 맞아요. 내숭떠는 건 제 체질이 아니에요. 그래서 보통 여자들하고는 좀 어색할 때가 있기도 한 것 같아요.”


나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홍일점으로 불리고, 행동하고, 말하는 내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성들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남성들이 나를 친구로 대한다고 느낄 때면 이상한 우월감과 성취감마저 들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만 한 나는, 그 특별함을 유지하기 위해 ‘여자’다워 보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불편해했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를 다른 여성들과 분리시키고, 남성들의 언어, 행동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어떨 땐,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통해, 다른 남성들이 열등하다고 낙인찍은 대상을 비하하는 발언도 거침없이 내 뱉었습니다. 세상의 ‘여자’들은 도대체 속을 알 수 없으며, 당신에게 그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얻어낼 것이 없다면, 당신을 만나겠느냐 같은 말로 말이죠. 


나는 적당하게 타협하고 나 스스로를 채찍질 해가며 삶의 부당함에 대해 기가 막히게 합리화 했습니다. 


남자들이 원래 좀 다혈질이지, B형남자라 거침이 없는 건가?
역시 남자들은 단순해서 좋다니까.
그래, 여자들이 더 세심하니까 이런 건 좀 챙기는 게 맞겠지.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선 남자들도 똑같이 불편하겠지, 어디 여자만 그러겠어?
지금 내 몸에 닿은 손은 어쩔 수 없는 접촉이지 의도가 있는 건 아닐 거야. 



그러나 나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B형이라, 다혈질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은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그 사람이 단순해서 세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나를 배려해야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그 사람도 불편하고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기왕지사 누군지 모를 테니, 혹은 아무도 모를 테니 하고 만져봤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의 기준에 특별해지는 나를 원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주입한 생각과 언어를 그대로 반복하는 나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지정해준 나약하고 의존적인 여성이라는 역할을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나는  

‘여성’인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다움을 마음껏 즐기기를 원합니다.

내 앞에 벌어지는 부당함에 대해 맞지 않다. 옳지 않다. 싫다. 라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우리의 도시를 함께 상상합니다. 도시 디자인 팟캐스트 라디오심시티(Radio S.I.M. City). 아이폰 사용자는 아이튠즈 팟캐스트,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팟티, 데스크탑 및 노트북 사용자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시티 건강학교 ‘AGE-100’ by 심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