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C 전채리 디렉터님의 커리어 토크 - wanted
요즘은 계속 앉아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얻는 인사이트들도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회가 생기고 시간만 맞다면, 관련 컨퍼런스를 많이 들으러 다니곤 한다. 최근에는 원티드에서 진행한 커리어 토크에 다녀왔는데, 그 내용이 인상 깊어, 이번 글은 진행되었던 토크의 내용을 적어보려 한다. 이번 토크는 CFC를 운영하시는 전채리 디렉터(디자이너)님의 커리어 여정과 성장 과정, 그리고 작업해왔던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사실 전채리 디렉터님의 이야기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Design Table, 베리 굿즈 2019, Spectrum Con에 이어 이번이 4번째였다. 그 전과는 달리 디렉터님의 커리어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해주셔서 이를 계기로 앞으로의 나의 커리어에 관해서도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감을 받았던 디자인 그리고 브랜딩 과정을 가감 없이 공유해주셔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어왔다. 이번 글은 디렉터님의 프로젝트 과정을 모두 설명하기보다는 커리어를 쌓은 순서를 위주로 적었으니 편하게 훑어보면 좋을 것 같다 :)
디렉터님은 어렸을 적부터 일정한 규칙을 가진 조형성에 관심이 많이 갔다고 한다. 수채화보다는 포스터, 조형적인 규칙을 이용하는 이미지들에 관심이 갔고, 패턴이 있는, 혹은 제약이 명확한 것 안에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맞닿아 있었고 자연스레 브랜딩에 관심이 갔다고 하셨다.
학부 시절에는 편집 디자이너가 유행하던 시기였고 당시는, 디자인에 꿈이 있는 학생들은 0순위로 편집디자인 회사를 가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디렉터님이 원했던 것은 아이덴티티 디자이너였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이너 영감을 준 디자이너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선망의 대상인 디자이너들을 보며 첫 회사를 아이덴티티 디자인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당시 디렉터님은 통일, 조화 , 우아함, 리듬을 실현해가는 과정이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고 생각했고, 펜타그램 Pentagram의 Victoria & Albert Museum의 로고, Orsay Museum, Chase Bank, United Airline 등의 로고 디자인을 보며 완벽한 조형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에 굉장한 영감을 받았고, 커리어의 방향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디자이너로는 폴 랜드(Paul rand), 솔 바스(Saul Bass), 허브 루발린(Herb Lubalin)등이 있다.
자신에게 맞는 관심사를 파악하고 선택해서 그 분야를 파고드는 일, 혹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많이 파악해야 하고 탐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취업 후를 대입시켜보면 대학생 때 했던 경험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엇이 잘 맞는 일이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인지를 탐구해야만 했다. '미술'이라는 분야는 확실하다고 생각하여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디렉터님과 마찬가지로 규칙을 가진 조형성이 좋았고, 자유로운 순수미술에 비해 제약이 많은 디자인 수업을 듣다 보니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제일 흥미로웠던건,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디자인과 관련된 책을 마구잡이로 읽고 경험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거를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미술 ☞ 순수 회화 ☞ 디자인 ☞ 시각디자인 ☞ UI UX 디자인이라는 흐름으로 선택을 해왔던 것 같다. 지금은 UI/UX 디자인을 택했다고 해서 다른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없다거나 발을 뺀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스타트업에 속해있다 보니 브랜딩, 편집, UI UX를 모두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 실전으로서의 디자인을 경험하기 시작했던 단계 (학교에서는 교수님의 지도 하에 디자인을 진행했다면, 첫 회사에서는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2. 상업 브랜드에서 콘셉트 끌어내기, 짧은 시간 안에 아이디어 내기, 실제가 추상적인 것을 디자인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3. 컨설팅 회사의 프로세스를 익히게 되었다.
4. 클라이언트의 언어 익히기. 컨설팅 회사의 방법론 익히기. 프로젝트 전체 과정 파악
5. 다양한 클라이언트와의 업무 경험 (중소기업, 대기업 등 다양한 업계의 클라이언트)
6. 다양한 인더스트리 브랜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 기르기. 해외 오피스 케이스 스터디 공유를 통해 빅브랜드 브랜딩 과정 학습.
7.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함.
8. 형태, 조화에 대한 이해
9. 알파벳의 특징을 알고 활용하는 것. 단단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 조형으로 사고하는 법
10. 몇 년의 시간을 거쳐서 빠른 아이디어를 내게 됨.
이때 디렉터님이 경험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좀 더 전략적인 것이었다. 디자이너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디자이너의 언어가 아닌 클라이언트의 언어로 설득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의 경우, 사회 초년생으로서 나의 성장 혹은 커리어의 방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디렉터님이 첫 회사에서 배웠던 것들을 알려주셨을 때, 아직 경험이 많이 없는 나에게(혹은 사회 초년생의 디자이너들에게)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면서 창의적인 일이 마구마구 던져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기본을 지키는 일, 회사의 비즈니스와 관련된 일,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일,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 등이 생각보다 많았고, 스스로 부딪치며 깨닫는 수밖에 없었다.
2007-11년, 당시에는 너무 멋있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등장했고, 소규모 스튜디오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게 되면서 디렉터님은 디자인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첫 회사 이후 신생 회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작업하셨던 것들은 이전 회사와는 달리 오랜 시간 걸쳐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하는 작업이었고, 그것들에 즐거움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란,
1. 통일, 조화, 우아함, 리듬을 실현해가는 과정 (2002-2006)
2. 전략에 기반해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는 것 (2007-2011)
3. 브랜드 에센스를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로 표현하는 것 (2011-2012)
두 번째 회사를 근무하던 때에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 회사들이 등장했고, 디렉터님은 더 늦기 전에 스튜디오를 차리겠다는 마음으로 1인 스튜디오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정의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정의 3가지를 합쳐 CFC(ContentFormContext : 주어진 콘텐츠 안에서 맥락을 발견하여 이를 적절한 형태로 담아내는 것)를 만들었고, 당시 1인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첫 작업으로 스토리가 전달되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데, 그때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미인주, 아황주의 브랜딩 작업이었다. 혼자 진행한 것이 아닌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모두 디자인을 하지 않고도 아트 디렉션을 통해 브랜딩 작업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을 경험하면서 브랜딩은 한 사람의 역량으로는 절대로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이며 브랜딩에서의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런 작업들이 하나 둘 모여 크고 작은 브랜드들의 작업을 진행하였고, CFC는 현재 1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스튜디오가 성장할수록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것들이 더욱더 복잡해지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브랜딩에서의 협업이 필수라는 생각은 더욱더 뿌리 깊게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10명으로 구성된 CFC인 만큼 아트 디렉터로서의 모습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 사고의 방식 정립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재규정해 디자이너에게 이해시키는 것
문제의 정확한 파악과 프로젝트 목표 실행이 중요
무엇을 해도 흔들리지 않게 설정하는 것
다양한 아이디어 교환을 위한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는 것
큰 방향성 설정 자유로운 토론과 참여를 통한 협업
상황에 따라 적절한 피드백을 제시하는 것
의도한 맥락이 적절하게 시각화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프로젝트 목표를 상기시키는 것. 디자인으로 제시하는 피드백. (현실적인 피드백)
작업에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것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이게 하는 것
사고의 한계를 넘게 하는 것
큰 그림 보기. 전체 프로젝트의 관점에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판단하는 것
문제 해결의 다양한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 새로운 방식을 수행하는 것
조형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
조화 통일 균형의 미에 대한 훈련
디자이너 개개인의 역량과 성향을 파악하고 강점을 키워주는 것
리듬감 있는 팀워크를 만들기
동기부여를 주는 것
디자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질문 세션에서는 브런치의 글을 보고 있는 최기웅 디자이너님이 진행하셔서 굉장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듣기도 했는데, 같은 직군에 있으셔서 그런지 굉장히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자연스러운 진행과 함께 논리력이 뒷받침된 답변들과 알려주신 꿀팁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끄적끄적✍)
Q :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인 과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 두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내느냐, 디자인에 대해서 얼마만큼 고민을 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의 정도가 달라진다. 최대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기에 대해 알고 최대한 깊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브랜드를 보는 것부터 시작 ☞ 좋은 콘셉트들이 나와야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Q : 클라이언트와의 협업 과정, 공감을 이끌고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및 노하우가 있을까요?
A :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듣는 편이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물어보니 항상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 답이 나온다. 상호 신뢰가 생기고 나면 대부분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Q : 오랜 시간 디자인을 업으로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A : 정답이 보일 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형태가 아름다워지는 것을 경험할 때가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였고, 두 번째는 여전히 디자인을 해서 세상에 나오는 게 아직도 너무 흥분되고 설렌다. 또한 매너리즘을 겪지 않기 위해 일부러 최대한 비슷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려 한다.
Q : 경쟁력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A : 떳떳하고 싶어 그래픽력이 좋아져야겠다를 생각했다. ☞ 1인 스튜디오에서 많은 그래픽을 실험하고 조형적인 미를 탐구했다. 결과적으로 경쟁력을 향상했던 것은 포토그래피였다. 그때 당시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업물을 사진을 찍어 공개하지 않았고, 포트폴리오가 정형화되어있었다. 브랜드의 경험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포토그래퍼와 작업물을 찍기 시작했고 그때 마침 비핸스가 나오기 시작하여 운이 좋게도 사진 덕을 많이 봤다.
C(최기웅 디자이너님) : 최기웅 디자이너님의 경우 운이 좋게도 발표 장표에 나온 유명한 디자인 회사, 혹은 기업에 속해 있으면서 좋은 사람들에게 얻었던 경험들과 인사이트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연스러운 경쟁력을 만들 수 있었다.
꿀팁✔
디자인을 시작했을 시점 막연했을 때는? ☞ 좋아하는 디자이너, 스튜디오를 뽑아서 계속 리뷰를 했다. 이런 방식으로 했구나를 나름대로 방법론 형태론을 공부했다. 조형적이고, 디자인 방법론적인 디자이너나 스튜디오를 선택해서 생각보다 더 도움이 많이 되고 내 것이 된다. ex) 펜타그램
회사에 대한 가치가 불명확한 리브랜딩을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 도덕적이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스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략부터 짜야한다고 이야기를 함. 디자인하기 전에 모든 것을 클리어해놓고 시작한다.
브랜딩을 하고 나서 프로젝트의 성공 기준을 어떻게 잡는지? ☞ 브랜드로는 성공이지만 브랜드 디자인으로는 별로였어일 때도 있고 그 반대일 때도 있다. 브랜드 디자인을 잘했다고 브랜드가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 디자인의 효과가 굉장히 미미할 때도 많다. 클라이언트가 생각하고 있는 브랜드 에센스, 소비자의 공감하는 브랜드를 제대로 잡아서 표현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콘셉트를 의도대로 전달했는가를 성패를 판단합니다.
지금까지 4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포스팅을 하면서 디렉터님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안에 있는 능력을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 그것들을 믿고 꾸준히 탐구하며 포기하지 않는 것,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해 나가는 것들이 차근차근 쌓여 커리어에 바퀴를 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본받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포스팅을 하면서 디렉터님의 이야기를 잘 요약해서 썼는지 걱정이 되지만,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이 글을 공유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