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관점으로 보려다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 영화
유년시절 남편의 심한 폭행을 견디다 못해 뛰쳐나간 엄마와 홀로 남겨졌던 아들이 세월이 흘러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뛰쳐나갈 당시 임신 중이었던 엄마는 서번트 증후군이 있는 아들을 출산하게 되고(추측) 이들이 가정을 이루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엮은 영화이다.
2-1. 이 영화의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서번트 증후군을 이겨내고 보여주는 천재성에 관한 영화인지 혹은 과거의 불행을 이겨내고 다시 가족으로 뭉쳐내는 감동을 그려내는 영화인지 등등 매우 모호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장면의 연속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떠한 주제나 스토리를 건네주는 것이 본질 일터인데, 단발적으로 의미를 지닌 장면들이 군데군데 등장하면서 산발적인 구성을 지니게 되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영화를 주의 깊게 본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극 중 조하(이병헌)는 진태(박정민)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엄마(윤여정)의 부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이를 조하의 탓으로 오해한 엄마는 조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된다. 그 후 조하는 화를 풀기 위해 스파링 도장으로 향하게 되며 친구와 술을 마신 채 귀가한다.
그리고 갑자기 다음날 진태와 게임을 하며 장난을 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엄마는 이들의 형제애에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을 보인다.
영화의 초점이 상처받은 조하에게 있었다가 갑자기 아무런 연유 없이 엄마에게 흘러가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의도가 감추어져 버렸다.
이 신을 만약 고친다면 상처를 받았지만 엄마 혹은 가족이기에 이 정도 상처는 이겨낸다던지 등의 확고한 시점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모두의 이야기를 쓰려다가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확고한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기 위해 주인공을 명확히 설정하여 영화를 풀어나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2. 너무나 많은 우연의 연속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과정의 핵심이 거의 대부분 '우연'의 연속으로 만들어졌다.
1. 이병헌이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해 한지민과 그녀의 엄마와 인연을 맺게 됨
2. 복지관의 직원이 '우연'히 윤여정에게 피아노 콩쿠르 참가를 제안함(이 당시 윤여정은 그렇게 귀담아듣는 것 같지도 않다. 심지어 이 장면에서는 콩쿠르보다 윤여정의 건강 상태의 복선을 함께 제공했다. 그래서 콩쿠르의 당위성이 지워져 버렸다.)
3. 한지민의 직업이 과거 피아니스트, 박정민은 그녀의 영상만을 유튜브로 보며 피아노 실력을 개발
4. 박정민이 참가하는 콩쿠르 대회 심사위원이 과거 한지민의 스승
5. 한지민의 스승을 후원하는 사람이 한지민의 엄마
6. 부모에 환멸을 느낀 이병헌이 결국 캐나다행을 결심하고 '우연'히 공항에서 박정민의 콩쿠르 참가 소식을 듣고 캐나다행을 포기.
2-3. 마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만 전혀 의미가 없었고, 해석을 해줄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던 것들
1. 조여정이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그 당시 임신 중이었을까?(제가 놓친 것이라면 답변으로 서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캐나다행을 위해 5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콩쿠르 1등 상금이 500만 원인 건 우연인가? 우연이 아니라면 굳이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나타내서 관객들에게 불필요한 기억을 하게끔하지 않았나.
2-4. 역시 한국은 신파극
엄마와 조하, 진태는 피자집으로 외식을 나간다. 그 곳은 생일엔 특별 사진 서비스를 해주었는데, 갑자기 가족 사진 찍길 원하는 엄마 때문에 생일도 아닌 조하가 생일이라고 직원에게 강압적으로 주장하여 익살스러운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선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조하와 와인을 마시며 춤을 춘다.
분명 피자집 씬 이전에 이병헌은 상처를 받은 상태였을텐데, 가타부타 아무런 해결 없이 따뜻한 장면을 억지로 구겨 넣었다. (관객들은 이 장면 이후로 우울하고 암울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다 예측했을 것이다. 너무도 익숙한 그 설정..)
별점 : 4 / 10(☆☆☆★★)
글이든 영화든 말하고자 하는 방향은 하나. 같은 현상을 보고 다르게 느낄 순 있다. 하지만 억지로 다르게 느끼게 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욱여넣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