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전날 40분 자고
28일 결혼을 맞이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의 기억에 남겨질지도
예상도 안된 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지나고 보니 아쉽기도 했고 미흡하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짝이 되고 남편이 된다는 각오를 다지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을 내어 먼 길을 해준 고마운 지인분들에게 융숭한 대접은 아니더라도
커피 한잔과 디저트를 즐길 여유와 술 한잔의 유흥은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식 후에 카페도 대관하고 그곳에서 틀 노래와 풍선 등을 다 준비했지만
내가 정작 한건 아무것도 없고 태은이의 멋진 캐이터링만 있었다.
그 덕에 내 미숙함이 좀 감춰진 듯했다.
다음날 신혼여행만 아니면 진짜 더 마시고 그냥 필름을 통째로 잃어도 됐을 텐데,
조금 아쉽게 구토 한 번으로 끝냈다.
그리고 떠난 신혼여행 길
클림트와 에곤 쉴레, 아돌프 로스를 좋아해서 가고 싶었던 비엔나를 갔다.
정적이고 안정된 분위기의 비엔나는 애견인들이 가득했고,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여행객들이 참 많았다.
그림보단 음악이 주가 되는 도시이지만 지식이 전무해서 즐기지 못했다.
클림트의 키스를 실제로 마주했단 기쁨이면 충분했다.
잘츠부르크는 도시 곳곳에 모차르트의 흔적이 가득했다.
도처에 음악이 있었고, 기념품도 모차르트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무거운 짐을 들쳐 매고 새벽에 침대 기차를 타서 루체른으로 가던 길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행의 즐거운 기억은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보다 사람들의 친절이 더 큰 영향이 있는 듯하다.
내가 들기에도 무거운 짐을 끙끙거리면서도 다 도와주시던 독일 madam 덕에 큰 감사를 느끼며
외제차는 반드시 폭스바겐을 사겠다고 다짐했다.
그린델발트를 가기 위해 거치는 장소라고 생각해 기대도 안 했던 루체른의 동화 같은 풍경에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 감성과 감정 따윈 전혀 없던 내가 조금은 감동을 받았다.
비가 추적추적 왔지만 호텔에 짐을 풀고 돌아오니 맑게 갠 하늘에 감사했다.
그린델발트는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화폭이었다.
오래전 밥 아저씨가 그렸던 멋진 풍경화가 건물 틈 사이, 창문, 문틈 사이로 그려졌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경탄하기도, 겁을 내기도 하며 스위스 여행을 마무리했다.
파리는 정말 생동감이 넘쳤다.
조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흑인들의 대화엔 soul이 흘렀고 노래, 연주 등이 곳곳에 즐비했다.
조금 불쾌하기도 했다. 너무 시끄럽고 신호를 지키지 않는 행인들, 자유롭게 어디서든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
마구 울려대는 클락션, 돌로 된 차도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소리 등이
멋진 경관을 보는 집중을 흐트러뜨렸다.
하지만 merci라는 단어가 아름다워서일까? (하긴 merci를 뱉으면서 표정을 구기기도 좀 그렇긴 하겠다.)
대부분의 파리 사람들은 멋지고 예쁘고 잘생겼다.
그리고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타국에서 강탈한 문화재가 정말 많았다.
루브르에 수많은 아프리카 유물들, 그리스 유물들을 보며 조금은 불쾌했다.
같은 방법으로 수탈당해 흩어져있는 우리 문화재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배제하고 단순히 즐기기엔 너무 행복했다. 너-무 행복했다.
21살에 마음이 지쳐 처음으로 책을 사서 읽었던 그림을 마음에 놓다는 책으로 서양의 그림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11년 만에 직접 마주한 여러 명화들을 감상하니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르기도 하고, 단순히 그림을 즐기기도 하였다.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여행을 꼽자면
상은이와 처음으로 함께 간 보라카이와 이번 여행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