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는 알 것 같은데, 웬 깍두기?"
보자기는 무엇이든, 어떤 모양이든 가리지 않고 감싸며, 무엇이든 담을 수 있습니다. 이는 포용디자인의 핵심 가치인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은유적으로 보여 줍니다. 크기와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선물을 포근히 감싸듯, 보자기는 차이와 다양성을 따뜻하게 포옹합니다.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모두로 감싸는 포용의 정신을 보자기만큼 잘 풀어내는 것도 없을 듯 합니다.
일회성 포장재가 아닌 보자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속가능성 디자인의 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낡은 헝겊을 모아서 보자기는 만드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버려질 천 조각들을 재활용해서 다른 것들을 감싸는 것으로 사용하는 지혜는 포용디자인의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인 지속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버려진 것, 오래된 것조차도 새로운 가치와 아름다움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짝을 지어 하는 놀이에서 짝이 안맞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기술이 부족한 아이들도 그 놀이에서 끼워주는 것을 ‘깍두기’라고 불렀었습니다. 가장 작고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아이를 역설적으로 그 놀이의 중요한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죠. 저도 어릴 때는 사촌들 사이에 가장 어린 편이었고, 운동신경도 떨어져서 늘 깍두기 노릇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깍두기를 지방에 따라 다양하게 방법을 불렀더군요. 광주에서는 앞다리 꼭다리, 포항에서는 권달꽁, 대구에서는 콩감자, 경주에서는 아띠꼰다리, 통영에서는 이편꼬다리 라는 식으로. 운동신경이 떨어지거나 어린 애들을 빼는게 아니라, 재미있고 귀여운 이름으로 부르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같이 노는 문화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로 포용디자인이 바라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25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 의뢰를 받고 가정 먼저 든 생각은 포용을 디자인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듣 생각이 보자기와 깍두기였습니다. 원래부터 우리의 정서이자 문화였던 포용. 그동안 치열하게 사느라 잊고 지냈던 포용. 이 생각을 장롱 위에서 꺼내, 먼지를 털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21세기에 맞추어 더 멋지고 신나게 다듬어서 모두가 즐겁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디자인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그저 뭔가 예쁘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팔리는 물건 정도로 치부되어 오던 디자인을, 기업들도 디자인을 더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드는 수단 정도로 활용하던 디자인을 모두가 즐겁게 사는 세상, 환경도 편해지고, 사업도 더 잘 되고, 우리 사이의 모든 격차가 없어지는 미래를 만드는데 디자인이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예쁜 물건, 더 잘 팔리는 물건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업과 디자이너들이 잘 팔리는 물건, 돈이 되는 디자인에만 신경을 쓴다고 하면 이런 디자인의 물건들을 불편해서, 다룰 수 없어서, 비싸서, 또는 다른 이유로 사용할 수 없거나 살 수도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면 과연 디자인은 가진 자들 만의 잔치에 불과하지 않나요?
2025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주제어를 여러 사람들에게 설명하는데, ‘보자기’에서는 다들 고개를 끄떡이다가, ‘깍두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왜 조폭?”이러시더군요. 위의 설명을 듣고는 아하, “그 깍두기!”하는 겁니다.여기서 든 생각.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상징하던 깍두기가 어쩌다 조폭을 나타내는 걸로 퇴화해 버렸을까. 2025년 디자인비엔날레는 이런 굴절되고 오염된 문화도 바로 잡고 싶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아파트 놀이터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어린 친구들을 깍두기로 같이 끼워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차별과 소외, 구별과 무관심이 점점 심해가는 사회, 빈부의 격차, 정치의 양극화, 또 AI등 기술의 진보가 가리키는 방향인 탈인간화 등의 세계적, 시대적인 이슈들이 2025년 광주디자인비엔나레를 통해 디자인의 궁극적인 가치와 역할인 포용으로 아름답게 되살아나기를 기대합니다.
사용성과 접근성의 개선에 중점을 두는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sign, 사람들의 다양한 차이를 배려하는 인클루시브 디자인 Inclusive Design 을 넘어, 모든 이들의 다름을 아름답게 감싸고 모두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지속가능성과 문화의 하는 한국적 개념인 포용디자인이 디자인의 새로운 가치와 역할을 의미하는 용어로 전세계적으로 쓰여지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