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치없는 사람입니다
안 하던 물걸레질과 베란다 청소를 했다.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인테리어 사진을 보며 집안을 뒤집어놓고 허전한 방 안이 채워 보이도록 갖은 애를 썼다. 그렇게 종일을 보내니 끼니때를 지나쳐 대충 저녁을 때우고 맥없이 누워있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났다.
자취를 시작한 지 어언 3개월이 지났다. 새롭기만 했던 낯선 도시의 풍경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결코 잘하지 못하는 일에도 패턴이 생겼다. 살림을 꾸리는 재미는 예전만 하지 않으며 내가 이사 온 이후 가족들은 다른 일을 시작했다.(이전만큼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이사소식을 알고 친구들이 보내오던 안부 메시지와 전화도 잦아들었다.
근 3개월 간은 과분한 호사를 누렸다. 스스로가 가장 바라왔던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결코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일과 후 내 시간이 있는 삶, 주변인들의 따뜻한 안부와 걱정이 있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난 정말 혼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지금 좋니? 하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는 못할 듯싶다. 사회생활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겪어보니 또 서글프고 아직 단단해지지 못했는지, 무던하지 못한 성격 탓인지 어느 날은 지쳐서 소파에 누워있다 몇 시간이 흐르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던 것은 내가 혼자 있었음에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해 준 내 사람들 덕분이었다. 주말마다 날 보러 와 준 친구들이나 무뚝뚝하게 챙기던 가족들의 안부 전화나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그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았던 것일 뿐. 사실 난 혼자가 좋은 게 아니라 내 자유는 누리면서 누군가의 걱정과 관심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 상황이 좋았던 것이었으리라.
졸업이 인생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를 마무리 짓는 축제와 같은 것이었다면 첫 독립은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탄생과도 같아서 외로움을 느낄 만한 시간이 없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원체 주변에 사람이 많지도 않았던 내가 요즘 유난히도 허전하게 느끼는 게 아닐는지.
하지만 언젠가는 혼자 있고 싶어 안달을 내던 때도 있었다. 내 인생도 그렇게 넉넉지 않거늘(마음이 넓지 못해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길 들어주길 원했고 그러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하길 원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미움받기도, 일에 얽히는 것도 싫어 한쪽 귀로는 흘리고 방관적인 자세를 취했다. (응 넌 그렇구나~)
하지만 뻔뻔하게도 이제와서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들어서 결코 좋지도 않을 이야기들. 내 삶이 넉넉지 않으니 누군가의 인생도 여유롭지는 않겠거늘 이 우울한 심정을 내가 꺼내긴 염치없으니 누구라도 지금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더 염치없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알고 있다. 사람들이 결코 내가 필요한 때에 곁에 있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래서 또 생각한다. 그 언젠가 본인의 이야기에 능숙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익숙하고 그래서 누군가가 힘들 때 가장 큰 힘이 되지만 자신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오늘 그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