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지내며 생각한다. 좋은 것은 중간 어디쯤에 있다. 여름, 겨울보다 그 사이 어중간한 계절이 좋다. 따뜻하다가 시원한 햇살과 바람이 부드럽고 달큰하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그랬다. 3부작 영화는 2부가 가장 재미있다고. 판을 깔아야 하는 1부와 마무리 부담이 있는 3부 사이에서, 2부는 자유롭게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했다. 그래서 봄날씨가 이렇게 추웠다 더웠다 입체적으로 변덕스러운 건가. 그래도 난 어중간한 계절, 봄이 좋다.
주위에서 봄이 짧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만히 보면 날씨가 조금 더워질 때마다 봄 다 갔네, 봄이 짧네 그런다. 서늘해지면 잠잠하다가 다시 더워지면 또 짧은 봄타령이다. 아니다. 봄은 아직 그대로다. 벚꽃 진 지 이제야 보름 남짓인데, 벚나무 열매 정도는 열어줘야 여름이지, 아직 멀었다. 봄은 봄을 사랑하는 만큼 길다. 이문재 시인은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에서, 나무는 실뿌리나 잔가지, 꽃 같이 끝에서 시작하기에 맨 끝인 동시에 맨 앞이라고 했다. 꽃과 잎을 가지 끝에서 힘차게 밀어내는 봄은, 어중간하기 위하여 치고 나가는 계절이다.
아주 힘든 상사에게 마음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벗어난 후에는 힘든 일에도 뭐 그래 이 정도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을 치고 나면 중간이 넓어진다. 예민하지만 까다롭지 않은 것, 분주해도 바쁘지 않은 것, 소란스럽지만 시끄럽지 않은 것이 보였다. 맨 끝을 지나면 많은 일은 일상의 중간쯤에 자리 잡는다. 좋은 일이 지나면 기분은 서서히 하락하고, 안 좋은 일 이후에는 다시 올라간다. 같다고 여기면 점차 다른 점을 발견하고, 많이 다르네 하다 보면 같은 점이 보인다. 삶은 대부분 중간쯤 어딘가에 있고 그래서 살만하다.
우리 모두는 중간쯤을 산다. 영화로 보면 길고 긴 2부라고 할까. 이미 삶의 판은 깔려있고, 마무리는 다음 편에 하면 된다. 중간쯤이라서 어둡기도, 비밀에 차 있기도 하며, 자주 입체적이고 변덕스럽다. 그것을 영화에서는 재미라고 부른다. 우리는 영화 같은 삶의 과정을 살고, 좋은 것은 중간 어디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