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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Apr 29. 2024

유효기간 6개월

작년 9월 어느 밤, 집 근처 은행 인출기에서 돈을 찾고 있었다. 화면을 누르다가 인출기 위에 무엇인가 얹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돈이다! 그것도 5만 원권. 모른 척 건드리지 말까 하다가 일단 주워 들고 세어보았다. 6장이다. 어떡하지? 슬쩍 집어갈까... 생각은 0.01초쯤 바로 사라졌는데,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가기에도 좀 그랬다. '경찰에 일단 신고를 해봐야겠다.' 결심하고 핸드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112에 전화하는 일은 난생처음이어서, 문득 나는 지금껏 참 무사히 살아왔구나 생각하던 중에 전화가 연결되었다.


"예. 무슨 일이시죠?" "여기 현금인출기 위에 누가 돈을 놓고 가신 것 같아요." 위치 추적에 동의해 달라고 하더니 곧바로 출동한단다. 10분 내로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신고를 마쳤으니 갈까 하다가, 그 사이 주인이 오거나 누가 집어가면 어쩌나 싶어 일단 기다렸다. 경광등을 번쩍이며 경찰차가 나타났다. 경찰 두 명이 내려서 사진 찍고 돈을 세어보며 한참 분주하다. "수고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단다. 진술서인가, 조서인가를 써야 한다며 주섬주섬 양식을 찾더니, 안 가져왔으니 주민번호와 연락처를 적어달라며 빈 종이를 내밀었다. 주인이 사례할 수도 있고, 한참 못 찾으면 습득자에게 소유권이 넘어온다고 했다. 아, 그 생각은 못했었다.

조회해 보니 유실물법 상 습득자는 주인에게서 5~20%를 보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유실물은 공고 후 6개월  내 주인이 안 나타나면 습득자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이번 경우는 CCTV 돌려보면 금방 주인을 찾겠지 싶어서, 찾았다는 연락이 바로 오려나 했는데(사례는 필요 없어요.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라고 해야지 생각하면서.) 연락 없이 1주일이 지나고는 습득물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이관되었다는 메시지만 도착했다.

'어라. 아직 못 찾았나.' 하고 그 이후로 한참 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3월 말에 경찰청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그 현금의 소유권이 나한테 왔다는 내용이었다. 아, 벌써 6개월이 지났구나. 신분증과 통장사본 가지고 경찰서로 오면 22% 세금 공제 후 입금해 준다고 했다. 마침 집에 있던 딸에게 전화해서 용돈 좀 줄 테니 대리인 역할 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후다닥 다녀왔고, 일주일 후 23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들어왔다. 세상에, 이런 합법적인 공돈이라니... 기분이 묘했다.

주변 몇 명에게 이번 일에 대해 얘기했다. "오오. 그래서 밥은 언제 살 거야?"라는 반응이 제일 많았고, 누군가는 그런 거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고, 일부러 갖다 놓고 손 대면 나타나서 신고하겠다 협박하는 일도 있다 했다. 어쨌든 이번에는 그런 경우는 아니니 다행인 셈이었다.

6개월이라는 기간에 대해 생각했다. 왜 6개월인지는 모르지만, 법이 정하는, 무심하거나 포기하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생각보다 짧은 6개월의 기간. 보통 정신없이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런데 그러다 영혼마저 놓쳐버린 지 6개월이 넘어 내 것이 아니게 된다면. 혹시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 지는… 6개월을 헤아리며 돌아보면 좋겠다. 어떤 유실된 마음은 유실된 물건을 찾는 일보다 쉽다. 마음속 유실물센터가 있다면 6개월 되기 전에 찾아가면 좋겠다. 혹시 그곳에 이별로 아픈 마음이 있다면 그것들은 6개월만 가지고 떠나보내자. 법으로도 그리하는데 뭘, 유효기간 6개월,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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