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올 때 미리 나갈 준비를 한다. 직진하지 않고 꽁무니부터 슬며시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밖을 바라보며 서있다. 자동차 후면 주차 이야기다. 후진하여 뒤쪽을 붙여 세우는 주차 방법, 전면 주차의 반대말.
지난 주말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를 찾았다. 절 주차장에는 전면 주차를 해달라는 표지가 붙어있었는데 후면 주차된 차들이 꽤 많았다. 담벼락이나 화단을 배기가스에서 보호하려는 조치이지만 운전자들에게 자주 무시되는 전면 주차, 절을 찾는 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전면으로 차를 대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기도 한단다. 주차 공간이 널찍한 그곳은 그게 가능하겠지만 주차 공간 좁고 차는 많은 우리나라는 후면 주차가 기본이 되어간다.
후면 주차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후면 주차는 나올 때 수월하도록 들어갈 때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수고를 기꺼이 부담하는 세태의 반영이라 했다. 무엇이든 넉넉하지 않다 느끼면 훗날에 대한 염려로 당장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희생하게 된다. 앞에 보이는 대로 넣어 주차하는 전면 주차와 달리 후면 주차는 백미러, 후방 경보기나 후방 카메라의 도움이 필요하다. 준비한다는 것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는 뜻이고, 그렇게 관리하다 보면 현재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사치로 느껴진다.
좁고 적은 주차 공간이 그렇듯, 기회가 좁고 적어보이는 미래는 근심 걱정을 부여한다. 그래서 불확실한 것이 당연한데도 그것을 줄이려고 좋은 시간을 소비한다. 다들 핸들을 돌려 가지런히 줄 맞춰 서서히 후진해 들어간다. 주차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다는 말은 좋은 뜻이지만 가끔 답답하고 아픈 말이기도 하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한다. 풀 해자에 근심 우자를 써서 배변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길상사 해우소는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갈아 신고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갈아 신는데, 슬리퍼들이 근심 풀고 나간 이들이 벗어놓은 방향으로 전면 주차되어 있다. 내가 신으려면 몸을 뒤로 돌리거나 슬리퍼를 잡아서 바로 놓고 신어야 했다. 근심 덜은 사람들은 자기가 다시 신을 일이 없으니 그냥 전면으로 벗어 놓고 나가기 바쁘다. 차와는 달리,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해 슬리퍼를 후면 주차해 놓은 분은 없었다.
슬리퍼를 돌려놓으며 돌진과 배려에 대해 생각했다. 어떨 때는 대상에 훅 들어가 박힐 각오를 하고 전면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것이 필요하고, 어떨 때는 담벼락과 화단의 식물들, 나중에 올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주차할 때 가끔 생각해 보자.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지나치게 재고 있는 것이 아닌지, 혹시 그러느라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배려할 것들이 뒷편에 있지는 않은지, 마음의 주차 라인을 넓혀 전면으로 들어오는 것들을 마음껏 맞이할 수는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