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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Aug 04. 2024

방황하는 분노를 멈추려면, 연극 <까마귀 클럽>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화를 잘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 이제 더는 참고 살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믿고 함께 분노할 사람을 찾습니다. 당신을 노력형 분노 스터디 <까마귀 클럽>에 초대합니다. '

더운 여름날 만난 연극 <까마귀 클럽>. 소설이 원작이고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골자는 그대로 따라간다. 이 세 가지 유형 중에 하나쯤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렴, 화 잘 내는 건 내가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궁금하고. 내 경우는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반드시 해당된다. 할 말을 하고 살자고 생각하지만 어떤 것을 화를 내야 할지 한 번쯤 돌이켜보게 된다. 격정적인 분노까지는 내고 싶지 않다. 이를테면 책상을 쓸어버린다거나 물건을 던진다든가 하는 것. 그 순간은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다시 그걸 주섬주섬 정리할 생각을 하니 귀찮아서 그렇다. 물건은 무슨 죄람. 어릴 적 한번 그런 상상을 하고 나니 어지럽히기로 화를 내겠다는 생각은 싹 사라졌다.


그렇다고 욕이 난무하는 화도 내고 싶지 않다. 욕도 쓰라고 있는 것이지 암만.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감탄사에 가까운 것 아닌가 싶다. 너무 화가 났을 때 얼씨구라고 할 순 없으니까. 욕을 하는 이유가 불쾌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면 욕을 하지 않고도 그걸 드러낼 방법은 충분하고, 상대방에게 위협적으로 보이고 싶어서라면, 글쎄다. 욕을 한다고 그 사람이 나를 무서워할까? 그다지 효과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장점일지도 모르지만 사소한 것들엔 잠시 화가 났다가도 금방 잊어버린다. 소액을 빌려줬다가 갚으면 빌려줬나? 하고 기억을 돌이키는 것처럼. 그리고 할 말을 하기로, 화를 내기로 결심할 때는 완전히 승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니 감정보다는 사실에 기반해야 하고, 감성만큼 논리도 있어야 하고, 상대방이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전달하고 싶다. 잠깐의 분노가 아니라 내게 훨씬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 수 있게.


<까마귀 클럽>에 등장한 지원초이와 별, 워리, 프로틴 모두 내 안에 있는 모습들이다. 지원초이처럼 친구를 만드는 게 두렵지만 사람을 믿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별처럼 차분하게 화를 내고 싶지만 가끔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분노에 휩싸이기도 한다. 워리처럼 말이 많기도 하지만, 프로틴처럼 부끄럽거나 민망해하고, 억울하면 눈물이 차올라서 그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말하고 보니 이건 나를 위한 인사이드 아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우연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간절한 사람에게 간절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함부로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의 만남을 우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피차일반이다. 이 공연의 만남 역시 우연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신기하게도 지원초이는 정말로 상처를 받은 적은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저 친구를 만들고 싶었고 그게 잘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처럼 트위터로 사귄 오래되지 않은 친구에게 손절당하는 것과 아주 오래 지낸 친구에게 배신이나 손절당하는 것은 다른 느낌일 테니까. 그는 사람을 사랑하지만 사람에게 정말로 사랑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면 이렇게 순수한 상태로 말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의 단단한 멘탈을 칭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까마귀 클럽에 걱정스럽게 발을 들였지만 별, 워리, 프로틴이라는 별명의 사람들은 나쁘지 않았다. 원래 일로 만나지 않으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누군가를 파악하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원초이의 패착이라면 그건 너무 빠르게 사람들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트위터에서 손절을 당하고도 그는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 사람들도 사실 트위터에서 만난 것과 다름없는데.


소설과의 약간의 차이점은 여기서 나타난다. 스터디를 시작할 때 연극에서는 박카스를, 소설에서는 초코칩 쿠키와 오렌지주스를 나눠준다. 이 박카스는 별에게 트라우마를 준 일명 '크리스마스이브 민원인'이 나중에 사과의 의미라면서 준 것이다. 뺨을 때리고 욕을 하며 화를 내고선 병주고 약주는 것이다. 그 이후로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지원초이는 텔레마케터, 별은 지방직 공무원, 프로틴은 선생님으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별의 직업이 운전학원 강사라서 다르다. 지원초이도 학습지 텔레마케터, 워리도 중고등학생 대상 소규모 공부방 선생님, 프로틴은 유치원 교사라서  모두 교육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설정을 바꾼 건 아마도  운전학원에서 수강생이 화를 낸 것보다는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우기면서 화를 낸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슬프게도 공무원에 대한 민원은 이미지 상으로는 낯설지 않다. 레퍼토리야 뻔하지 않나. 행정이란 게 국민이 편하게 원하는 걸 해주는 거 아니냐고 '행정이란 무엇인가'를 늘어놓는 자, '너희가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는다고' 고용주처럼 유세를 부리는 자, 내가 누군 줄 아냐고 자기 위세를 펼치는 자, 윗사람을 데려오라거나 국민신문고를 올리겠다는 일파만파형도 있을 것이다. 자세한 건 충주시 홍보맨의 영상을 참고하자.


"그런데 혹시 왜 까마귀 클럽인가요?"
"까마귀 좋잖아요. 크게 소리 지르고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다 피하고."
"아......"
"그리고 화를 못 내는 게 참 그렇잖아요. 누구는 성격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성격이 참 이상하다고도 하고. 까마귀도 그래요. 어디서는 길조고 어디서는 흉조고."
"그러네요. 그냥 가만히 사는 건데도 까마귀가 참 그렇죠."
p. 71 소설 까마귀클럽


신입답게 왜 까마귀 클럽인지 물어보는 지원초이에게 별 회장님은 이렇게 답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면 지원초이는 도망칠 수 있었을까? 그에게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까마귀 클럽에 대한 이상한 설명을 들을 때 쎄한 촉이 왔어야 한다. 까마귀가 크게 소리 지르면 사람들이 다 피해서 그게 좋다고? 그리고 그다음은 어떻게 자신이 멤버가 되게 되었는가를 들었을 때. 그의 바로 전 사람이 화를 잘 낼 수 있게 되어서 나가게 됐다는 것이었다. 무슨 화를 냈는지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게 첫 모임 때 알 수 있는 신호였다.


정말로 확실한 신호는 워리가 술에 취해 해준 얘기를 듣고서였다.  회장님이 우리가 화를 잘 내게 되면 칭찬을 해줄 거라고 하니 그 말 많은 워리가 한 글자로 말했다. '퍽이나.' 워리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드물게도 짧고 간결한 말. 그리고 전에 그만둔 사람은 별에게 화를 내고, 욕을 욕을 쌍욕을 퍼붓고 그러고서 잘렸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얼른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지원초이가 처음에 느낀 까마귀는 길조였다. 흥미롭지 않은가. 분노에 방해가 되니까 '죄송해요. 감사해요, 괜찮으세요?'를 쓰면 5만 원 벌금낸다니. 묵언수행하면 늘 승자는 따놓은 당상이다. 영혼없는 사과와 감사로부터 해방이다. 게다가 정과 믿음에 목말랐던 그에게 '우리'라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우리끼리 믿는다고. 아무도 우리를 안 믿어주니까. 우리끼리는 티가 난다고. '우리'라는 게 이렇게 위험한 단어다.


정말로 화를 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우리일 수 없다.

정말로 화를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우리의 모임은 대성공이었다.


역시 단체 생활이니 모두의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모임은 늘 별의 집에서 이뤄졌고, 원년 멤버인 워리와 프로틴도 별이에 대해, 그녀의 운영방식에 대해 불만이 있다. 지원초이는 별과 제일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어쨌든 부지런하게 모임이 운영되고 있는데 어떻게 결말로 나아갈까? 사달이 나려면 갈등이나 빌런이 나타나야 한다.


처음부터 맑은 눈의 광인처럼 보였던, 제일 좋은 사람처럼 보였던, 화를 낼 때 늘 설명하는 것 같이 영혼이 없던 별이가 한 역할을 하리라곤 생각했다. 내적 친밀감이 생겨 버린 우리의 주인공 지원초이가 더듬거리던 걸 벗어나 멋지게 할 말을 다하며 화를 낼 수 있게 됐을 때만 해도 장하고 기특하기까지 했다. 글은 원래 잘 썼고 글 쓰는 것처럼 말로 하니까 잘하는구먼.



많은 것이 조금 더 익숙해졌다고. 그래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나도 잘은 모르지만 화라는 게 보통 그런 것이 아니냐고. 이제는 당신들이 편해졌다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괜찮으세요? 아니, 제가 진짜로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죄송해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모두가 박수를 쳤고 비법이 뭐냐고 물었을 때 '당신들이 편해졌다고' 하는 것이 설마 별의 지뢰일 줄이야. 지뢰일 수는 있지만 그렇게 갑자기 욕을 쏟아낼 일인가 싶다. 무표정의 별을 무너뜨리는 것이 '편하다'라는 단어 하나일 줄이야. 의도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공감할 수 없는 분노, 아니 인신공격이었다.


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100% 그대로의 진심은 보여줄 수 없다. 어떤 날은 당신이 미치도록 좋다가도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내가 그럼에도 상대와 함께이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상대 역시 나의 모든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넘어가고 버텨주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적당히 모르는 게, 무소식인 게 희소식인 부분도 있다.


내게도 마음대로 화를 내고선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저렇게 미안하다고 하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 그 사람을 관찰했기에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자신의 잘못은 없고 나의 탓이라며 몰아간 것은 정말로 내가 어렵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잘 보여야 할 대상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게는 화를 내기는커녕 좋은 말만 할 줄 알았다. 전화를 받다간 화가 나면 전화기를 집어던지곤 했다. 놀랍게도 아무도 그를 혼내지 않았다. 윗사람은 오히려 무슨 일이 있냐며 위로하고 다독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와 엮이기가 싫어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전화기가 참 고생이 많았다.


우리가 화를 내는 건 나보다 약하고 만만한 대상이거나 혹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대상이라 주도권을 얻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만약 별의 이 불같은 화가 요즘의 세태를 보여주고 있는 거라면 어안이 벙벙한 채로 볼 수는 있다. 가까웠던 친구, 연인, 가족,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자신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난다는 이유로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니까. 때로는 세상이 멸망한다면 점점 우리가 잘못된 방식으로 분노하고 싸우게 되어서는 아닐까 예상할 때도 있다.   


원작 소설가는 '분노란 세상에서 가장 정확해야 할 감정'이라고 말했다. 정확하지 않은 분노가 얼마나 상처를 주고 전이와 변이로 이어지는지 목격했다고. 까마귀 클럽은 방황하는 분노의 모임이자, 각자의 인생에서 뺨 맞고 녹번동에서 서로에게 어설프게 화내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좋은 시도임은 분명하다. 감정 표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안 될 수는 있지만 애정표현은 노력할 수 있는 것처럼.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에 피드백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면 펑펑 울어볼까, 샌드백을 사서 쳐볼까, 정신없이 달려볼까, 명상을 할까, 글을 쓰거나 말을 해서 풀어볼까 싶다. 내게는 분명 혼자 삭히는 것이 화를 내는 것보다 평생에 더 익숙한 일이다.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절망스럽지는 않다. 다만 그건 고스란히 몸이 견뎌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남일이 아니다. 당사자한테 하면 될 말을 못 하고 다른 사람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거나, 혼자 열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까마귀 클럽에 언제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연극을 본 것이 우연이 아니다.


지원초이는 제대로 된 화를 내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그만두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한 번 화를 내게 됐다고 목표를 이룬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별이가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어떻고? 얼마 후 다시 트위터에는 까마귀 클럽 멤버를 모집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정말로 우연이 아니라면 지원초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서 지원초이가 당시에 별에게 아무 말하지 않고 모임을 나온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다가 다시 한번 정보를 숨겨서 지원했으면 좋겠다.  별이는 멤버의 정보는 검증하지 않고 '믿으니까'. 그것이야말로 까마귀 클럽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화가 나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화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전의 기회이니까.


제대로 화를 내는 건 그다음부터다. 우리 모두가 아는 그날의 일에 대해. 편해졌다는 게 어떻게 쉽고, 우습고, 호구 같다는 말이 되는지, 본인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휩싸여 말을 오해해 놓고 욕을 하는 게 제대로 된 분노인지, 함께 믿고 제대로 분노하자고 만든 클럽 회원을 '화 하나 제대로 못 내는 등신'이라고 한다면, 회장이 제일 문제인 것이 아닌지, 진짜로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면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정말로 이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다시 누군가를 상처주고 말건지.


어쩌면 해맑은 그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지치지 않았다면, 별을 두고 지켜보는 일을. 깊은 관계로, 정확한 분노가 가능해질 순간까지, 이 모두가 서로 정말로 우리가 되어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상상해 보자. 지원초이가 다시 등장했을 때. 놀랄 별의 표정. 그리고 덤으로 워리와 프로틴도 흥미로움으로 반짝거리는 표정까지.



-이 리뷰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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