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로스 아킨무시리 내한공연(feat. 본 투비 블루)
재즈를 좋아하지만 재즈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재즈 라디오 어플에서 음악을 듣다가 좋아하는 소리가 나오면 누가 연주했는지 한 번씩 들여다보는 정도다. 신기하게도 이름을 확인할 때마다 같은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게리 멀리건, 스탄 게츠, 덱스터 고든, 스캇 해밀턴. 그저 소리가 좋아서 찾아본 이름들이 알고 보니 재즈의 역사와 함께 하는 분들이었던 걸 보면 나름 으쓱한 기분이다. 귀도 좋은 걸 아는구먼!
재즈 트럼펫은 따로 많이 찾아 듣지는 않았다. 그러다 쳇 베이커의 곡을 접하게 된 후로는 그의 트럼펫과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색소폰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몽글몽글한 기분을 트럼펫에서는 느낄 수 있다. 색소폰처럼 많은 버튼으로 이뤄진 악기의 입장에서 3개의 피스톤으로 이뤄진 트럼펫은 참 간결하고 그만큼 더 어렵게 느껴진다. 버튼은 세 개에 음악이 좋으면 사람이 궁금해져서 찾아보는데 쳇 베이커는 알게 될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그에게 트럼펫만큼이나 뗄 수 없는 다른 한 가지 마약과 평생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재즈란 생명을 대가로 음악을 키워온 느낌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느끼기에 완벽한 소리를 내기 위해, 긴장을 풀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약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까? 의구심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엠브로스 아킨무시리를 첫 내한공연에서 만나는 것은 역시 설레는 일이었다. 말로는 재즈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신기한 느낌이었다.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왠지 주변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2층을 가득 채운 사람들 모두가 재즈 트럼펫을 듣기 위해 모였다는 것도, 일반적인 트럼펫 소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 넓고 포근한 소리를 귀에 담은 것도, 트럼펫(앰브로스 아킨 무시리), 피아노(샘 해리스), 베이스(하리시 라가반), 드럼(저스틴 브라운)이 서로, 각자 빛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도.
이날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는 무대에서 따로 언급해 주지 않았지만, 몇 개 곡은 멜로디나 소리가 인상 깊어서 유투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귀로 들어서 기억한 것이니 틀릴 수도 있지만 최대한 듣고 추려보았다.
자신 있게 그날 들은 곡으로 고를 수 있는 <Owl Song>. 트럼펫의 멜로디는 단순하지만, 포근하면서도 쓸쓸한 밤 분위기가 난다. 공연에서는 기타가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의 앨범에는 기타와 함께 한 곡이 꽤 많기도 했다. Owl song은 1,2로 나뉘는데 1에서는 트럼펫의 멜로디가 주가 된다면 2에서는 그보다 퍼커션 리듬이 강조되어 있다.
두 번째 곡이었던 <Yessss>. 기억하는 이유는 공연에서 가장 잔잔한 곡이었기 때문이다. 발라드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만큼 가장 트럼펫 소리를 많이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했다. 그는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트럼펫만을 위한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가 만들고 싶은 음악을 트럼펫으로, 그리고 다른 악기를 포함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 그는 "저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일 뿐이고 트럼펫을 연주할 뿐입니다"라고 말한 바도 있다. (Jazzwise, 2024년 2월 16일, Ambrose Akinmusire interview: "I've never been comfortable with the jazz trumpt soloist vibe) 트럼펫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싶기도 해서 아쉬운 느낌도 있었지만 그의 구상에 다 계획이 있었겠지 싶다. 제목의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단 초반부 몇 마디만 들어도 이건 YES가 맞다.
<Mr. Frisell>은 기타를 맡아준 Bill Frisell의 이름에서 나온 듯하다. 여기서는 트럼펫으로 기타의 줄을 튕기는 것처럼 도로롱, 드르륵 디리링 하는 느낌으로 연주를 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A song to exhale>과 <Blues> 곡에는 신기하게 숨을 빨아들이는 소리를 구현하는 곡이다. 생각해 보니 트럼펫이라는 악기는 우리 일상에 많이 들어가 있다. 누구나 그리 달가워하진 않았을 기상나팔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대기음도. 늘 팡파레처럼 시원하거나 부드러운 소리만 내야만 하는 느낌이지만 마치 타악기나 현악기처럼 효과음을 내듯이 트럼펫에서도 어떤 이미지나 상황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꼭 트럼펫이 아닌 어떤 악기더라도 이런 생각으로 연주한다면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각자 악기들이 빛날 차례다. 특히 이 곡 <Maurice & Michael>에서는 피아노와 트럼펫, 베이스는 잘 어우러지고 드럼이 빛나는 느낌이었다. 드럼이 팡팡 시원하게 솔로를 하다가도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게 돌아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후 곡들에서도 드럼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부분이 많아서 그 뒤론 베이스와 피아노는 언제 차례가 돌아올까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각 악기들을 위한 시간이 있었다.
베이스만의 솔로곡도 있었다. 베이스는 참 신기하면서도 고마운 악기다. 한 번 소리를 인식하게 되면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러 악기와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 다른 악기들 사이에서 저음으로 연주를 해주면 음악이 균형 있으면서도 감칠맛이 느껴진다. 다른 음악에도 베이스 리프가 매력적인 곡들이 많으니 한 번쯤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피아노는 드럼처럼 소리로 압도하거나, 베이스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는 좀 슴슴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렇게 트리오나 퀄텟이 보여주는 음악은 솔로로 하는 음악과는 결이 다르다. 한 명씩 늘어날수록 합주는 지극히 어려워진다. 함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에도 노력과 공이 많이 들어간다. 때로는 베이스와 함께 리듬이 되고, 때로는 트럼펫과 함께 하나같은 멜로디가 되어서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자연스럽고 쉬워 보인다면 그게 얼마나 실력이 깊은 것인지 잊지 말라는 생각이 마침 들었다.
뮤지션이나 아티스트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나만의 색이다. 종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진정성이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심사평이 나올 때가 있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애초에 개성이나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속 안에는 다 다른 빛이 있고 다른 알맹이가 들어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사람과 그의 음악은 또 다른 영역이기는 하다. 음악이 마치 자기소개서와 닮은 구석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얼마나 재능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는 셈이다. 이렇게 개성 있는 우리가 어딘가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거절당할 때도 있고, 다른 사람에 비해 평범하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앰브로스 아킨무시리는 자기만의 색을 찾으려고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열대 우림같이 통통 튀는 리듬과 트럼펫이 함께 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힙합과 접목시킨 곡도 많았다. 이전에 재즈 트럼펫의 계보를 만들어온 연주자들도 그랬다. 루이 암스트롱,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클리포드 브라운, 리 모건, 쳇 베이커, 윈튼 마살리스... 스윙, 비밥, 쿨 재즈와 하드밥, 보사노바 등 재즈 내에서도 다양한 색깔의 장르를 만들어내 온 것처럼 말이다. 이 소위 말하는 '계보' 그 자체보다는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만들고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했다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의 평생이 역사의 일부가 되는 일이라니 고되면서도 낭만적이다.
쳇 베이커를 로맨틱하게 다룬 영화 <본 투 비 블루>로 다시 돌아오면, 그가 앞니를 잃고 나서 음악은 더 이상 하기 어려울 거라고 다른 사람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트럼펫을 입에서 놓지 않았고 전과는 다르지만 다시 트럼펫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는 그런 그의 연주를 보고 '정교함은 떨어졌지만 소리에 개성이 생겼다. 예전보다 더 깊다'라는 평의 대사가 나온다. 약을 끊고 다시 매주 일요일 술집에서 공연을 하고, 아마추어 같은 음악에도 꿋꿋이 참여하면서, 결국 블루노트까지 돌아오는 쳇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다른 것들엔 모든 이가 성하게 자리하고 있는 내게 더더욱 음악과 함께하기 어렵다는 이유는 아무래도 찾기 힘들겠다고. 지금은 더듬더듬 멜로디를 만들어가지만 즉흥연주도 할 수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나가 보기로 했다.
재즈가 누군가에게는 중년이 되어 위스키를 마시며 듣는 음악의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몸이 들썩거리기도 하고 우리의 7080-8090 같은 느낌을 주는 장르이기도 하다. 글렌 밀러와 베니 굿맨이 보여주는 스윙재즈는 흥겨웠고, 부드럽고 때로 차분한 쿨재즈 곡을 즐겨 듣고 있다. 언젠간 LP로 이 곡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좋다.
재즈는 마이너한 음악일까? 19세기말 정도에 생긴 음악인 걸 생각하면 아직은 단정 짓기는 이르다. 가끔은 상상해 본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엄청난 티켓팅이 몰리는 요즘처럼, 언젠가 쳇이 그리워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재즈를 들으러 오고 열광하는 모습처럼, 앞으로 재즈의 역사 중 어느 순간에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재즈의 전성기가 다시 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재즈 안에는 현란한 기술도, 즉흥연주로 나아가는 치열함도, 왠지 모를 슬픔과 여운, 몸이 들썩이는 즐거움이 공존한다.
앰브로스 아킨무시리가 가지고 있는 폭넓고 부드러운 트럼펫 소리가 그만의 색깔이라면, 그가 만드는 음악은 그 색깔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12년간 머물던 블루노트를 떠나서 그 역시 새로운 여정을 하고 있다. 이제 그는 나무가 되려고 한다. 전통과 미래를 잇는 줄기가 되어 열매를 맺고자 한다. 좋은 소리를 들으면, 나 역시 좋은 소리를 내고 싶어지는 기운을 받는다. 무대를 색깔 있는 조명 위주로만 꾸민 것은 시각적으로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무대 배경을 그가 표현하려는 음악과 어울리게 이미지 등을 띄워놓는 방식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두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었을 때만큼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까.
-이 리뷰는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