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하루 4
오랜만에 여성주의 모임을 하나 하게 되었다. 동화를 가지고 이것저것 기타 등등해보는 모임인데 소재로 쓰일 동화중에 작년에 쓰인 동화가 하나 있었다. 크로스드레서에 대한 이야기여서 인상 깊게 읽다가 문득 왜 '남성의 외모를 지닌 크로스드레서'는 더더욱 환영받지 못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
나는 일단 '남자 옷으로 규정된 의상'을 참으로 좋아하고 특히 대학을 갓 입학했을 때 즈음엔 너무 남자옷만 입고 다닌 나머지 나중엔 치마를 입어도 멋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지금은 취향도 바뀌고 으른여성이 되는 것에 좀 심취해 있어서 소위 여자옷이라고 불리는 걸 많이 입지만. 하여튼 요는, 여성들이 남자옷을 입는 것에는 사회적인 거부감이 적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남성의 경우는 어떠한가. 14~15년도 즈음에 딸기우유색이 히트를 친 이후로 남자가 핑크를 입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남자가 레이스 달린 블라우스를, 뷔스티에를, 치마를 입는 모습은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없다. 그러니까 그러한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숨어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여성의 옷'이 가지는 특수성에서 찾아보고 싶다. 여성의 옷은 일단 남성의 옷보다 확대된 의미를 가진다. 아마 두 가지의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 그것은 '요구되는 불편함'과 '섹스어필'이다.
1) 스타킹은 불편하고 보온에 취약하지만 치마를 입기 위해서는 필요한 도구 중 하나다. 브래지어는 가슴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대다수의 여성들의 상체에 적용되지만 그것이 악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각 일정한 양의 불편함이 요구된다.
2) 돌핀바지, 뷔스티에, 오프숄더 블라우스, 미니스커트, 스키니진은 [일부] 남성들에 의해 곧잘 섹스어필로 이해된다. 와이드팬츠, 롱스커트, 래쉬가드는 섹시하지 않다느니 속이 보이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들로 폄하된다. 그들의 눈에는 여성은 섹스어필의 도구로만 존재하겠지.
-
그래서 이러한 옷들을 입어야 하는 여성들은 몸매가 예뻐야 하며 조신해야 한다. 사회가 그렇게 요구한다. 브래지어를 차지 않으면 욕을 먹게 되고 속바지를 입지 않으면 매를 맞게 된다. 일을 할 때조차 남성보다 과중한 외모적 책임이 요구된다. 남성들보다 덜하다지만 남자옷을 입었을 때의 면박을 감당해야만 한다.
-
이렇게 옷에서조차 확연히 드러나는 코르셋의 사회에서 남성들은 여자옷을 아무리 좋아해도 입기가 힘들다. 남성 크로스드레서는 사회에서 '여자옷을 입은 남성'이 아니라 '여자옷이나 입는 못난 놈', '더럽고 이상한 놈', '남자 구실 못하는 놈'으로 비하된다. 그러니까 여성의 옷이 가지는 의미 중 첫 번째에 부합되기에는 좀 이상하고 두 번째에 부합되기에는 더럽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성 역시 가부장제 사회의 그물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것의 밑바닥에는 역시 여성혐오적 시선이 있다.
-
여성의 옷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궁무진하게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고자 한다. 사소한 혐오 지점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 멈춰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