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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r 10. 2023

통증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

5년 전, 통증이 걷잡을 수 없이 온몸으로 번져나가고 병원의 검사에서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을 때, 유 원장님은 이 통증이 비로소 정신과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확신하신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통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통증의 의미? 통증이 내게 하려는 말? 통증이 나로 하여금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것? 그런 건 다 모르겠고 그냥 안 아프고 싶었다. 내 인생에 무슨 메시지를 전하러 왔건 그딴 폭력적인 방식으로 찾아온 통증과 대화를 시도하고 싶진 않았다.

  수많은 가정, 추측을 하고 가설을 세웠다. 유 원장님을 만나고 온 날이면 통증을 해독하기 위해 일기장 예닐곱 페이지를 빼곡히 채웠다. 상담을 복기하며 그것의 정체를 밝혀내려 했다. 지금 나에게 통증이 나타난 건, 너무 열심히 살지 말라는 건가? 그냥 얇고 길게 교사 생활을 하라는 건가? 근데 이런 몸 상태로 대체 어떻게 교사 일을 하라는 거지? 통증 이 놈은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제 멋대로 추측하고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증이 처음 나타난 2018년, 나는 ‘이제 좀 학교에 적응해서 다녀보려는데 왜 하필 이럴 때 아프지?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긴 방황을 끝내고 학교에 마음을 정착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제 좀 적응했다는 말은 말 그대로 10년이 넘어 이 일에 적응이 됐다는 말이지 이 일이 적성에 맞아간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다른 것이 되기를 포기했을 뿐 기쁘게 여생을 교사로 살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제 괜찮다는 말, 이제 좀 할 만하다는 말은 다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 내가 다른 능력이 없어 여기 주저앉아야 하니 그런 나를 주저앉히려고 지어낸 말이었다.


수년간의 이유 찾기는 모두 헛수고였다. 내가 나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왜 그렇게 멀리서 답을 찾으려고 했지? 모든 시간을 내가 이미 겪었으면서 왜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지?

  책장에서 우연히 2015년의 일기장을 발견했다. 이유 없는 두통이 오래갔다. 2016년, 학교에서 과호흡으로 쓰러졌다. 숨이 안 쉬어져 죽을 것 같다고 느낀 첫 기억이었다. 2017년, 1학기를 우울증으로 휴직했다. 일주일에 한 번 번역아카데미에 다녔는데 버스, 지하철, 기차로 이동하며 뇌에 피가 통하지 않는 탈진감을 처음 느꼈다. 2017년 여름, 목통증이 시작되었다. 가을,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2018년 2월, 통증이 온몸으로 번졌다.


일기장 속의 나는 꽤 오랫동안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걸 버텨낸 것은 오직 나의 처절함뿐인 것 같았다. 나는 다 무너져가는 집 천장을 두 팔로 겨우 지탱하듯 내 삶을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제대로 살고 있다기 보단 버티고 있었다.

  온갖 추측, 해석은 다 필요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명확했다. 통증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명확했다.


'네가 하기 싫은 걸 그만해.'

단 한 마디였다. 그 어떤 우울과 불안에도 시달리지 말라고, 어떤 공격과 비난에도 맞서지 말라고. 수년간 내가 원했던 것은 그 한 가지였고, 난 이제 이 일이 할 만하다며 내 입이 거짓을 말하기 시작하자 통증은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만해. 제발 멈춰.'

통증이 말하는 바는 단순하고 명징했다. 지금 그것을 멈추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는 것 하나를 하지 못해 기어이 내 몸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 난 일을 하고 싶어

- 아니 넌 일을 하고 싶지 않아


2018년의 발병의 장면에 몇 번이고 되돌아가봤다. 십여 년 간의 경험으로 학교는 나에게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인식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점점 무너지는 몸을 보며 개학이 코앞인데 어떻게 하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개학이 코앞이라 무너지고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난 또다시 나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할 수도 있었다.

    통증은 어쩌면 나를 살리기 위해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내 삶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고, 아픈 몸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알려왔다. 그래서 변화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학교를 의원면직했다.


나는 통증을 미워한다. ‘너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 하지만 통증 덕에 별 잡음 없이 학교를 그만둘 수 있었다. 나를 아프게 했으니 밉지만 나의 오랜 고민거리에선 해방시켜 줬으니 이젠 통증의 신호에도 귀를 기울여본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아마 살아가는 내내 통증과 완전히 작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몸은 언제고 다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낼 테니까.

  부디 몇 년 전 그때처럼 어마 무시한 통증은 다시없길 바란다. 그 정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아도 내가 내 삶의 문제를 알아채며 살길 바란다.

  나는 매일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통증이 느껴지면, 멈춘다. 이 단순한 원리를 평생 기억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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