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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Jan 28. 2024

결혼 이렇게 대충 시작해도 되나요?


오빠 친구한테 들어보니깐
결혼식장은 일 년 전부터 잡아야 된대.
우리도 나중에 하고 싶어질 때 하려고 하면
늦을 거 같으니깐,
이제 식장 잡아야겠는데?



이 대화가 결혼 시작을 알리는 대화였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결혼 준비의 시작과는 많이 달랐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다가 뭔가 딱딱한 게 느껴져서 뱉어보니 다이아 반지였다던가,

눈이 펑펑 오는 날 데이트를 할 때 "나랑 결혼해 줘"를 외치는 장면 말이다.


문득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연말 친구와 밥을 먹다가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3년 전에 결혼을 한 신혼부부였는데,

자연스럽게 요즘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 근황 이야기를 하게 됐다.


"요즘은 결혼 준비하려면  일 년 전부터 식장을 잡아야 한대.  그래서 이번에 00 이는  저기 인기 많은 곳으로 계약했대"

"아 그래? 아무리 그래도 6개월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었어?"

"코로나 끝나고 사람들이 엄청 결혼하기 시작하면서  인기 많은 식장은 일 년 전도 빠듯하다고 하더라고"


평소 결혼을 할 거냐는 질문에는 "언젠가는 하겠죠?"라고 대답하며 별생각 없는 나였기에

친구랑은 가볍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바로 지나가곤 했다.

근데 그날따라 집에 돌아왔는데,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제는 슬슬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야. 내가 일 년 후에 결혼을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그 때로부터 또 일 년이 지나야 할 수 있다니'


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일 년 후에는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으로 끝내 닿고야 말았다.



갑자기 식장을 알아보자고? 당황스러운데!


나의 이런 말에 남자 친구는 몹시 당황했다.

5년을 넘게 만났지만 결혼에 대해 물으면

 난 항상 "준비가 되면 하고 싶어"라는 말로

 거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도 잘하고 싶고, 돈도 모으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항상 많은 나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20대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채 종결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남자 친구도 결혼을 하자고 조르지 않았다. 아니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랬던 그에게 갑자기 어느 날 카톡으로 식장을 알아보자는 나의 말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무슨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영문도 모르는 그에게

 나는 결혼식장 후보를 찾아서 보내기까지 했다.


5년을 넘게 만나서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였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이야기한 건 어느 정도 마음이 준비와 생각 정리가 끝난 상태라는 걸

그도 짐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도 바로 "그래 준비하자"라고 대답했다.



이제는 함께 하는 내일이 두렵지 않아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가  정말 즉흥적으로 결혼을 계획한 것처럼 보일 것 같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연애를 하면서 나의 마음이 의심에서 안정으로,

그리고 이제는 확신으로 변했던 것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확신이 가득 차니 이제는 연애가 아닌 결혼으로써의 나의 모습이 두렵지 않았다.


그의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나에 대한 믿음이었다.

20대처럼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요소가 사라졌던 것이다.


20대의 나는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 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IT라는 직종 안에서도 내가 잘하는 걸 찾고 싶어서 독학해서 직무를 옮겼다.

나만의 취미를 찾겠다며 운동과 블로그, 유튜브를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싶어서 자취를 했다.


그렇게 20대를 치열하게 보내고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아니다. 결과로만 봤을 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9시부터 6시에 회사에 있는 직장인이다.


하지만 마음은 달라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았고, 그걸로 작지만 돈을 아끼고 버는 방법을 찾았다.

이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내 일상을 사랑하고, 내 가족을 아끼며, 내가 하는 일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 '여유'가 생길 때쯤 자연스럽게 이제는 결혼을 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다.



이제야 마음의 안정이 생긴 나에게 결혼이라는 것이 어떻게 내 인생을 바꿀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고민이 많고 항상 불안했던 나의 20대의 방황 속에 항상 함께 해주고

같이 고민해 주던 그와 함께였기에 다가올 미래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작은 확신이 이렇게 나를 결혼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와의 결혼 준비는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자 그래 결혼하자. 근데 뭐부터 시작해야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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