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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Mar 18. 2024

오래오래

덕후친구들을 덕질하기

나는 집요한 사람을 부러워한다. 다른 재능들은 어떻게 대충 눈속임으로 넘길 수 있는데 도저히 내 선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게 저 집요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덕후 친구들을 존경한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사회에서 덕후들을 너무 특정 캐릭터화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일이 아니다. 무언가를 이유 없이 오랫동안 깊이 좋아하는 마음 자체로 이미 너무 대단하고, 그 집요함이 결국 각자의 방향성 아래 일가를 이루어내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또는 아이돌을 파다가 그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언어의 장벽을 스스로 넘어버린 친구들이 그 사례다. 어지간한 마음과 학습의지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바탕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좀처럼 식지 않고 지속된다? 요즘 같은 단타, 숏폼의 시대에 거의 뭐 기적 같은 일이 아닌가.


무언가를 계속 좋아하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나의 기질적으로 안 맞는 것도 있고, 나는 그냥 새로운 것들이 계속 궁금해서 뭘 하나를 팔 수가 없다. 거기다 지루함에 취약한 관계로 흥미를 잃으면 좀처럼 다시 불이 붙질 않는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대충 맥락만 아는 잡덕이 된다. 내 입장에서 더 신기한 것은 아이돌이나 배우 같이 사람을 좋아하는 덕후라면 그 대상에 대한 실망도 있고 위기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럼에도 다시 사랑하는 그 근성… 존경한다. 이건 아마 예수님에 버금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 아닐까. 엄청 사교적인 듯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은 나는 그래서 오히려 덕후친구들을 덕질하게 된다. 그들이 보여주는 근성과 결국 이루어내는 엉뚱한 성취들이 너무 흥미롭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자막을 기다리다 못해 얼렁뚱땅 번역하다가 언어를 습득해 버리는 이런 성취들 말이다.


내가 나의 취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나 같이 지식도 사랑도 얄팍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집요함이 없는 게 아쉽다. 세상에서 마주하는 일들이 그렇게 무 자르듯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 가볍자고 매번 손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 버텨온 만큼 성과를 볼 때까지 꾸역꾸역 버티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고만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으니 말이다. 사실 솔루션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다. 오래 하면 된다. 덕후들의 밀도 있는 집요함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서 기나긴 시간에 축 걸쳐놓는 거다. 물론 오래 집요하게 하는 사람은 당해낼 수가 없지만 나 같은 불나방(?)들은 이렇게라도 해서 버텨야 한다. 지루해서 불나방 때려치우고 이번 생은 조졌다며 하루살이로 그냥 인생 마감하고 싶을 때마다 눈속임으로 즐거움을 조금씩 흘려 넣어 하루씩 더 살아보는 거다.


2년짜리 단타성 직장생활을 하던 내가 그걸 15년을 해버리니 마치 무언가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일덕후(?)처럼 보이는 것도 다 이 일을 오래 했기 때문이다. 7-8년쯤 하고 때려치웠으면 정말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텐데 그래도 꾸역꾸역 이 세월을 버텨서 아직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스스로도 좀 코쓱머쓱하다. 사실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카드값 내고 맛있는 거 사 먹고 놀러 다니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그래서 주변의 어린 불나방들이 하루살이 코스를 타려고 하면 손을 꼭 잡고 마치 전도하는 교회 집사님처럼 “자매님, 자매님 같은 스타일은 일을 오래 해야 해요. 힘들면 뭐 가방이라도 하나 얼른 사… 그걸로 나를 묶어놔야 돼. 막 그냥 때려치우면 안돼.“라는 얘기를 종종 하게 된다. 요즘 친구들의 직장생활은 나보다도 훨씬 더 힘들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인생 이 새끼가 만만치가 않은 게 항상 내 선택의 결과를 한참 나중에 알려주는 바람에 모든 게 내 손을 떠난 뒤에 알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적이 많았다. 나도 후회는 없지만 그때 좀 버텨볼 걸 하는 순간들도 꽤 있다. 성격이 더러워서 일단 꾹 참고 이해해 보다가 한계에 이르면 최선을 다했다고 손을 털었으니까. 그때는 되게 떳떳하고 후련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최선의 뒤에 숨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선이 늘 최고, 최상은 아니니까. 최선은 언제나 나의 입장이다. 한 마디로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내 꼴리는 대로 살았단 얘기다. 그런데 이제는 최선보다는 조금 더 집요하게 잘 버텨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보고 싶다.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온전한 성공, 성취의 한 사이클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짜증 나고 지겨워죽겠지만 그래도 쌀알을 하나하나 줍는 마음으로, 틈틈이 SM노동요 플레이리스트도 들어가면서, 이렇게 친구랑 가끔 일본에 놀러도 가고, 화이트와인도 사 먹고, 봄에 입을 코트도 하나 사면서 말이다. 덕후들은 최애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데 나는 일단 그게 안되니까 무언가를 오래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막 너무 뜨겁진 않아도 대충 좋아하고, 오래오래 하다 보면 일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덧 나의 일부가 될 것이고 결국 그 깊어지고 넓어진 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아직 그게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일 말고도 하나쯤은 더 있으면 좋겠다.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것인데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좋은 시절에, 좋은 일로 뿅-하고 알게 되길 바란다.


사족)

실컷 쓰고 보니 초등학교 1학년 성적표에 담임 선생님이 써준 글이 갑자기 퍼뜩 생각났다.

“귀여우나 다소 끈기가 부족함”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운동장 조회 시간에 혼자 성적표 열어보고 ‘나보고 귀엽대’하고 낄낄 웃다가 혼나서 정확하게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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