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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 내가 되고 Mar 27. 2017

딸 이름은 '단비'로 지을까?

오랫동안 비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전에 대학 동기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불쑥 딸을 낳으면 '단비'라고 이름 짓고 싶다고 했다. 한글 발음이 밝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영어 이름으로 바로 쓴다고 해도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쉬울 듯했다. 또한 요즘처럼 비가 안 오는 시기에, 미래의 내 딸이 가뭄에 '단비'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단비'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동기는 '아따아따 (만화)'야? 아들은 그럼 '영웅 (만화 속 단비의 오빠)'이냐고 물었다. 옛 기억 속에서 '시져 시져!!'하면서 때를 썼던 단비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우린 낄낄대며 웃었다. 며칠 후 여자 친구에게 딸 이름 이야기를 꺼냈는데, 여자 친구는 '아따아따'를 알지 못했다. 핸드폰으로 급하게 '단비'를 찾아서 여자 친구에게 보여줬다. 우리는 오랜만에 볼이 통통하면서도 핑크빛으로 물든 '단비'를 보면서 그 귀여움에 푹 빠지게 되었다.


딸 이름을 '단비'라고 지어야 하나 하고 고민할 만큼 나는 기후변화에 따른 강우량 변화를 혼자 고심하고 있었다. 대학 때 환경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리라. 나는 버스를 타고 지나며 보는 중랑천과 성북천을 보면서도 매번 하천의 수량이 부족한 것 아닌가 고민했었다. 이런 일은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을... 여하튼 오늘 비가 조금이나마 내려서 정말 기분이 들떴다. 헬스장을 가려고 나오는데 하늘이 희무룩했다. 그래서 우산을 들고 갈까 말까 하다가. 비가 내리면 좀 맞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하러 나섰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는 순간 하늘에선 가늘게 한두 방울 비가 내렸다. 오랜 기간 말랐던 이 땅을 충분히 적실 수 있는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가 내린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오냐! 내리기만 해라! 내가 마음껏 맞아줄 테니'. 비에 흠뻑 젖더라도 비가 좀 내려서 농촌의 어르신들의 마음이 풀리고, 낙동강에 녹조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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