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는 것만이 힘이다.
나의 지난 1년은 화려한 시작과 초라한 마침표들로 점철되어 있다. 피아노 학원은 등록 한 달 만에 발길을 끊었고, 테니스 라켓은 3개월 만에 창고 신세가 되었다. 야심 차게 시작한 달리기조차 20일을 넘기지 못했으니, 이제 와 등산화를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퍽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불쏘시개 같은 사람이다. 불은 잘 붙이지만, 그 불꽃을 은근하게 오래 지켜낼 재간이 없다. 추진력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해 보지만, 실상은 끈기 부족이라는 뼈아픈 진실만이 남는다.
그런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는 일종의 거대한 벽이자, 동시에 해답처럼 다가왔다.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책상 머리에서 영감을 기다리는 고상한 두뇌 게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원고지 20매를 채우고, 10km를 달리고, 수영을 하는 가혹한 육체노동이자 엄격한 규율이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을 '지속하는 힘'과 동일선상에 놓았다.
소설, 에세이, 번역까지. 그가 수십 년간 지치지 않고 방대한 작업물을 쏟아낼 수 있었던 동력은 머리가 아닌 다리 근육에 있었다. 재능은 불티처럼 튀어 오르지만, 그것을 태워 없애지 않고 긴 온기로 남기는 건 오직 체력이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했고, 그 단단해진 몸으로 문장을 지탱해 왔다. 꾸준함이 비범함을 만든다는 말은 흔하지만, 그것을 몸소 증명해 낸 노장의 등 뒤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간을 규정하는 단어는 '계속'이다. 그는 변덕스러운 영감에 기대지 않고, 아스팔트를 박차는 자신의 두 다리를 믿었다. 쓰는 일과 달리는 일은 그에게 있어 리듬을 잃지 않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동일한 행위였을 테다. 인간의 자격이란 어쩌면 화려한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정직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묵묵히 호흡을 고르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러너(Runner)의 뒷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가 확인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장 정확한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