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넓은 어른의 위로, "아무것도 아니야"
술잔이 몇 번 돌고 긴장이 풀리면, 평소 꾹꾹 눌러 담아뒀던 말들이 둑 터지듯 쏟아져 나오곤 한다. 그럴 땐 꼭 탈이 난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식은땀과 함께 이불을 걷어차며 잠에서 깬다. 지난밤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내가 어제 무슨 실수를 했나' 머리를 싸매게 되는 것이다. 복잡해진 마음을 안고 조심스레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을 때, "별일 아니었어, 아무것도 아냐."라며 씩 웃어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을 살게 하는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은 바로 그 구원의 문장을 건넬 줄 아는 어른이다. 그는 건축 구조기술자다. 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내력(버티는 힘)보다 외력(가해지는 힘)이 클 때라고 말하는 사람. 그는 인생이라는 건물에 금이 가고 흔들리는 순간들을 수없이 목격한다. 아내의 외도를 알았을 때도, 회사에서 뇌물 누명을 쓰고 감사실에 끌려갔을 때도, 그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위태로운 건물 같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버티는 방식은 외면이나 회피가 아니라, 상처를 직시하고 "이쯤은 별거 아니다"라고 규정해 버리는 단단한 내력에 있다.
특히 살인이라는 무거운 과거를 들키고 공포에 떠는 지안에게 그가 보인 반응은 압권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만한 과거 앞에서도 그는 동요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는 나라도 죽여."라고 말하며, 사건의 끔찍함보다 그 일을 겪어내야 했던 한 인간의 고통을 먼저 끌어안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낙인이 아니라, 지금 숨 쉬고 있는 사람의 안위다.
"아무것도 아니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은 종종 우리의 작은 실수 하나를 꼬투리 잡아 거대하게 부풀리곤 한다. 네가 문제라고,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아냐고 다그치기 바쁘다. 하지만 박동훈은 말한다.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이 말은 책임을 피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일의 무게에 짓눌려 너 자신을 잃지 말라는, 무엇보다 '네가 먼저'라는 묵직한 보호의 선언이다. 건물에 금 좀 갔다고 당장 무너지는 게 아니듯, 실수 좀 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오늘 밤, 혹 순간의 판단 착오나 실수로 자책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면 박동훈의 목소리를 빌려 전하고 싶다. 당신을 그토록 괴롭히는 그 일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만 괜찮다면, 정말로 모든 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