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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을 Jan 31. 2020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안전한 세계의 시작

유독 나에게만 가혹하다 느껴졌던 사회생활 속에서 길고 긴 방황을 끝내고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나의 어린 시절을 되짚어본 적이 있다.


교육운동 후 해직 및 복직을 거치면서 어린 나의 마음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맞벌이 부모님이 집을 비운 동안 두 동생들을 돌봤었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퇴근한 부모님 눈 앞에 놓인 세 어린아이 중에서는 그나마 사랑을 독차지한 기간이 가장 길었던, 어른스러운 큰 딸이었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할머니가 혼자 사는 아파트에 놀러 갔다. 복도까지 들리는 큰 소리로 테레비를 보던 나의 할머니. 두 동생과 부모님이 건넛방에서 잘 때 나를 꼭 안방으로 초대했던 나의 할머니.


세 어린아이 중에서 내가 비로소 특별한 존재가 되었던 그 밤, 할머니는


 “이번 주에는 비밀 이야기 없었어?”


하며 내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할머니는 나를 통해 당신의 막내딸이 먹고사는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어린 나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의 근황(에 숨겨진 엄마의 근황)을 남김없이 할머니께 고해드리고 나면, 나와 할머니 사이에 쌓인 추억 이야기를 사골처럼 우려내기 시작한다.




손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할머니 댁에 종종 맡겨졌던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가 사는 거성빌라 주민들을 모두 알은체 하고 다녔다.


“ 103호 할머니는 아직도 병원에 다니는 거야?”


“헤보 아줌마(아줌마는 헤헤 웃고 다니는 나를 헤보라고 불렀고 서로의 애칭이 되었다)는 오늘 왜 안보이지?”


한 번은 빌라의 조그만 놀이터에 있는 유일한 놀이기구였던 그네를 타러 갔는데, 나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더 큰 오빠들이 한참을 비켜주지 않았다. 한쪽에서 모래를 뒤적이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데, 이를 창문으로 지켜보던 나의 할머니가 달려 나왔다.


“얘, 너희 거성빌라 사니?”


“아니요”


“여기 친구는 거성빌라 사는데. 여기 거성빌라 놀이터니까 너희 다른 데 가서 놀아. 할머니가 너희 아까부터 계속 탄 거 다 봤어”


그 순간 할머니 아니 나의 잔다르크 뒤로 부서지는 빛이란. 나는 비록 일주일 뒤에 우리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일주일) 사는 건 사는 거니까!


나의 안전한 세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가장 안전하고 따뜻했던 할머니를 떠나보낸 다음 해에 나는 불안전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젊은 여자에게 유난히 모질었던 지난 몇 년의 사회.


나는 할머니를 다시 한번 만나는 꿈을 꾸기를 매일 바랐다. 어딘가에 나있는 창문으로 나를 지켜보다가 달려 나와 줄 거라고. 아까부터 봤는데 너희 정말 너무 한다고. 나 대신 외쳐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도망치듯 찾아간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동안, 어릴 적 할머니가 주신 무조건적이고 주저 없는 사랑이 나의 뿌리를 얼마나 단단하게 했는지 알아가게 되었다.


그 뿌리 덕분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고, 더 나은 곳을 찾아갈 수 있었고, 마음의 안정과 줄어든 월급을 맞바꿀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든 달려 나와 따져줄 할머니가 살고 있다.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이라는 제목은 동명의 책에서 인용했다. 전 세계 첫째 딸들의 성향을 분석한 심리학 책. 첫째 딸뿐만 아니라 둘째, 막내의 심리도 같이 언급하고 유기적으로 설명한 책이라 더 좋았다.


나의 엄마는 이 책을 읽고 당신의 세 아이에게 각자의 이유로 세심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는 소감을 남겼고, 그 말이 다시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제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그땐 이런 책이 없어 잘 몰랐다는 귀여운 변명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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